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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에 부는 바람, 그날의 긴장

바람, 항공기, 공항

by 미스터 엔지니어


공항에서 항공기를 핸들링하는 엔지니어에게 바람은 언제나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강한 바람은 조종사가 착륙을 시도조차 못 하게 만들 수도 있고, 지상에서는 항공기를 밀어버릴 정도의 힘을 가지기도 한다.


시드니에서 날아오는 B747-400F 화물기를 맞이하기 위해 화물 터미널로 향하던 중, 나는 바람의 세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했다. 곧이어 유도로를 따라 베이로 들어오는 항공기의 동체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서둘러 도착 베이 주변을 살펴보니, 다행히 배치된 화물들이 항공기에서 충분히 떨어진 안전한 거리였다. 항공기가 베이에 멈추고, 메인 랜딩기어에 차륜지를 고정한 뒤 조종석과 통신을 시작했다.


“카픽 투 그라운드! 쵸크는 고였습니다. 브레이크 풀지 마시고 타워를 연결해서 풍속을 확인해 주세요. 바람이 많이 붑니다.”
“타워에 확인 했는데, 풍속이 35노트라고 합니다.”
“절대 브레이크 풀지 마시고, 안전을 위해서 노즈기어의 스티어링 핀은 제거합니다. 출발 전에 다시 꽂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곧바로 화물 하역을 준비하기 위해 항공기 후방 동체에 있는 재키 포인트에 테일잭을 설치해야 했다. 강풍 속에서의 작업은 언제나 긴장감이 높다. 테일잭을 핸들링하는 지상 조업직원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며, 마침내 잭이 안전하게 고정되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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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 최대 한계치를 다시 확인했다. 현재 풍속은 35노트. 한계치인 40노트에 거의 근접한 수치였다. 상황을 지켜보며, 메인데크 화물칸 도어를 열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몸으로 바람을 이기며 걷기도 쉽지 않아서 항공기를 한 바퀴를 간신히 돌아보고, 조종석에 올라 대기하던 중 — 항공기는 마치 풍랑 속 배처럼 좌우로 출렁이고 있었다. 타워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실시간 풍속을 체크하고, 결국 무사히 하역과 적재를 마칠 수 있었다. 화물을 가득 실은 B747은 다시 이륙해 오클랜드로 향했다.


그날의 바람은 유독 날카로웠다.

문득 오래전 A380 항공기의 기억이 떠올랐다. 무려 60톤의 예비 연료가 실린 채 게이트에서 대기 중이던 그 거대한 항공기가, 갑작스러운 강풍에 의해 브리지에서 3미터나 밀려나는 사고가 있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충돌하는 듯한 그 순간, 나는 바람의 위력을 몸으로 경험을 했다.


보이지 않기에 더 무서운 존재.
항공기에 부는 바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방심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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