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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

항공기, 항공 엔지니어, 소통

by 미스터 엔지니어

새파랗던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졌다. 여덟 시간을 날아온 항공기가 사뿐히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나는 동료와 함께 게이트에서 거센 엔진 소리를 견디며 항공기를 맞이했다. 지상 직원이 헤드셋을 내게 건네며 손짓했다.

“굿 이브닝, 엔지니어. 착륙할 때 측풍 때문에 오른쪽으로 기울었어요. 우측 엔진 쪽을 살펴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우측 엔진 하부와 카울링을 살펴봤다. 다행히 긁힘이나 충돌 흔적은 없었다. 걱정하던 캡틴에게 “정상입니다”라고 전하자, 캡틴은 환한 얼굴로 로그북에 ‘NIL DEFECT!’를 적고 호텔로 향했다.


메카닉이 기내를 점검하는 동안, 나는 조종석 상태와 서류, 그리고 이전 정비 기록을 꼼꼼히 살폈다. 몇 가지 경미한 결함이 이월되어 있었고, ECAM Status 페이지에 낯선 메시지가 떠 있었다.

‘COND BULK ISOL FAULT’


전에도 몇 번 본 메시지였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바람으로 서킷 브레이커를 리셋하고 시스템 테스트를 진행했지만, 몇 분 지나자 ‘FAULT LIGHT’가 다시 켜졌다.


나는 즉시 상황을 Maintenance Operation Center에 알리고, 디스패처에게도 보고했다. 이 결함이 해결되지 않으면 벌크 화물칸에 식품이나 동물을 실을 수 없기 때문이다.

휴대폰으로 상황을 찍어 채팅 앱으로 전송하며, 필요한 매뉴얼도 요청했다. 오래된 항공기는 매뉴얼 접근이 쉽지 않다. 출발 시간이 임박하면 더욱 그렇다.


MEL을 확인한 후, MOC에서 BULK CARGO ISOLATION VALVE를 CLOSE 상태로 정비 절차 매뉴얼을 채팅 앱으로 전송받아 메카닉에게 전달했다. 정비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다시 한번 정비 위치, FIN 번호, 절차를 꼼꼼히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정비 상태를 최종 점검하고, 로그북에 기록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연료 보충까지 마친 뒤, 로그북에 최종 릴리스 서명을 했다. 시계를 보니 출발 5분 전이었다. 나는 로그북 사본을 떼고 탑승구를 나섰다. 마지막 문이 닫히는 순간, 오늘도 무사히 임무를 마쳤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겨울이라 쌀쌀했지만, 내 등줄기에는 아직도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라운드에서는 모든 출발 준비가 끝나 있었고, 내가 브리지에서 내려오자마자 항공기는 힘차게 이륙했다.


세상이 참 빠르게 발전한다. 전에는 상황이 발생하면 팩스나 이메일로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로 상세한 설명을 하던 것들이 이제는 채팅 앱 하나로로 동시에 해결을 할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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