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공항, 항공엔지니어
중동의 항공사에 근무하던 시절, 나는 종종 세상의 가장 낯선 구석들을 비행하며 마주하곤 했다. 그중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의 기억은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탈레반이 도시를 점령하기 불과 이틀 전까지도, 카불은 그저 평범한 공항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활주로 옆, 먼지 낀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 아래서 웃던 사람들. 항공기가 착륙하면 늘 제일 먼저 마주하는 이는 공항 안전요원이었고, 그는 늘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아직은 어리고 꿈이 많던 청년이었다. 언젠가는 두바이에서 일하고 싶다고, 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말하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연료를 공급하던 압둘라. 건장한 체격에 땀을 훔치며 내게 손을 흔들던 그의 밝은 미소가 떠오른다. 이름은 잊었지만, 그 따뜻함만은 잊을 수가 없다.
공항 맞은편에는 UN 마크가 새겨진 하얀 헬리콥터가 자주 하늘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교전으로 부상당한 군인을 태우고 응급 수송을 하던 헬기였다. 전쟁은 늘 가까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카불 공항의 보안은 특별했다. 비행기가 도착하면 승객을 하기하면 보딩 브리지는 즉시 분리되고, 단 하나의 문만 열어 놓았다. 공항 안전 요원과 별개로 두바이에서 동행한 특수부대 출신 보안요원들이 문 앞을 지키며, 항공기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우리 승무원들은 늘 기내에서 대기하며, 언제든 출발할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곳에서는 어느 항공사도 오래 머무는 비행기가 없었다. 그만큼, 머무는 것은 안전 보장이 안 되는 위험 지대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누군가 말해주었다. 며칠 전, 공항 뒤편에서 날아온 총알 하나가 대기 중이던 항공기의 날개를 뚫고 지나갔다고.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탈레반이 공항을 점령하던 날.
TV 화면에서 탈출을 위해 브리지에 매달린 사람들, 절박하게 이륙하는 항공기를 쫓던 사람들, 하늘에서 떨어지던 사람들. 눈을 뗄 수 없었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내 동료 엔지니어는 그날 카불 상공을 몇 차례 선회하다가 결국 회항을 해야만 했다. 돌아올 수 없었던, 그 마지막 비행.
그렇게 카불은 더 이상 우리가 가볼 수 없는, 뉴스에서도 자취를 감춘 미지의 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을 기억한다. 환하게 웃던 그들, 이름 모를 인연들, 그 따뜻했던 순간들을.
부디, 모두 무사하길.
그 누구도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평범한 하루를 맞이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