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엔지니어, 비행, 이란
저녁 해가 천천히 공항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활주로 끝을 스치다 사라질 무렵, 짙고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덮기 시작했다. 공기는 눅눅했고, 바람은 방향을 잃은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곧 스톰이 몰려오겠다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굵은 빗방울이 활주로를 때리기 시작했고, 번개가 하늘을 찢듯 내려쳤다. 천둥은 지면을 울리며 몸 안까지 파고들었다. 여섯 시 도착 예정이던 항공기는 캔버라 상공을 몇 차례 선회한 끝에야 접근 허가를 받았다. 레이더 화면 속 점 하나가 천천히 활주로를 향해 다가왔다.
게이트 상단에는 백색 경고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공항에는 두 가지 번개 경고 체계가 있다. 백색은 ‘주의’. 작업은 가능하지만 항상 하늘을 살펴야 한다는 신호다. 청색은 ‘중단’. 모든 작업자가 즉시 대피해야 하는 단계다.
그날은 백색이었다.
멈출 수는 없지만 안심할 수도 없는 상태.
어쩌면 우리의 일과 가장 닮은 신호였다.
항공기는 굉음을 내며 게이트에 멈춰 섰다. 빗물이 동체를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팀과 함께 기내로 올라갔다. 도착 전 이미 본사 운영센터로부터 긴급 메일이 와 있었다. 비행 중 발생한 결함. 상황이 심각할 수 있어 도하에서 출발한 화물기에 예비 부품까지 실어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조종석 디스플레이에 메시지가 떠 있었다.
'WXR SYS FAULT'
기상 레이더 시스템 오류.
폭풍 속에서 레이더가 고장 난 항공기라니. 상황은 아이러니했고, 그래서 더 무거웠다.
“운영센터 지시에 따라 조치했지만 그대로입니다.”
기장이 말했다.
나는 OIT에 접속해 PFR 메시지를 확인하고, 해당 TSM을 열었다. 매뉴얼은 언제나 침착하다. 증상, 원인, 조치 절차. 감정은 없다. 그 점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감정이 개입되면 판단이 흐려지니까.
MOCC에 현재 상황을 알리고, 조종석의 관련 C/B를 리셋했다. 전자장비실을 오르내리며 레이더 트랜시버와 프로세싱 유닛 전원을 순차적으로 차단하고 다시 파워를 켰다. 전원을 끄는 순간은 항상 묘하다. 마치 숨을 잠시 멈추는 것 같다.
‘살아나라.’
몇 차례 반복 끝에 WXR 시스템 테스트를 수행했다.
조종석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빗소리만이 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메시지가 사라졌다.
테스트 오케이.
나는 로그북에 조치 사항을 기록했다. MOCC에 복구 결과를 통보했다. 항공기는 다시 비행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적어도 내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잠시 후 조종사들과 캐빈 승무원들이 도착했다.
“미스터 엔지니어, 문제는? 출발 가능합니까?”
“네. 방금 정상으로 회복이 됐습니다.”
“역시 항공기가 엔지니어를 무서워하네요.”
짧은 웃음이 흘렀다. 긴장은 조금 풀렸다.
밖에서는 여전히 번개가 번쩍였지만, 우리는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속보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조종실 안 공기가 단숨에 확 바뀌었다.
각자의 화면 속에서 다른 하늘이 번쩍이고 있었다. 이곳은 자연의 번개였지만, 그곳은 인간의 인공 번개였다.
출발은 즉시 보류되었다.
연료는 채워진 상태로 유지. 승객은 터미널에서 대기. 우리는 본사의 지시를 기다렸다.
조종실 한쪽에서 이란 출신 부기장이 가족과 아랍어로 통화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길게 이어졌다.
가끔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모른 척했지만 모두가 듣고 있었다.
그에게 그 뉴스는 국제 정세가 아니었다. 가족의 안부였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났을 무렵 최종 취소 통보가 내려왔다.
승무원들은 호텔로 이동했다.
우리는 항공기를 리모트 주기장으로 이동시켰다. 언제든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친 채로.
비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번개도 멀어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늘은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오래도록 생각했다.
나는 결함을 해결했다. 시스템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매뉴얼에 따라 점검했고, 기록했고, 보고했다.
기술적으로 그 비행기는 완벽했다. 그런데도 날지 못했다.
우리는 종종 모든 문제를 고장이라고 생각한다. 고치면 해결될 거라고 믿는다. 리셋하고, 교체하고, 점검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세상에는 매뉴얼에 없는 변수들이 있다.
리셋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엔지니어는 항공기를 결함을 확인하고 해결한다.
그러나 시대의 균열까지 메울 수는 없다.
다음 날도 항공기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비를 맞으며, 바람을 맞으며.
날 준비를 모두 마친 채로.
어쩌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모든 준비를 끝냈는데도, 출발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 시간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결정들 앞에서 멈춰 서야 하는 순간들. 그날 멈춘 것은 비행기 한 대가 아니었다.
잠시, 우리의 시간도 그 자리에 주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고장 난 것은 레이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