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엔지니어, 직업, 항공
새로운 오퍼가 도착했다.
이메일은 새벽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한참 뒤에야 제목을 열었다. 몇 년째 반복되는 이름, 낯설지 않은 나라. 하지만 이번에는 숫자가 달랐다. 무심코 넘기기엔, 다시 보게 만드는 숫자였다. 손끝이 잠시 멈췄다. 숫자가 주는 무게와, 그 뒤에 숨어 있는 삶의 가능성이 동시에 느껴졌다.
요즘 항공 엔지니어를 찾는 공고는 끊임없이 올라온다. 중동의 항공사들은 늘어나는 항공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사람보다 먼저 항공기를 확보하고 지금은 항공엔지니어를 찾아 선세계를 누빈다. 항공기를 날릴 수 없다면, 아무리 많은 비행기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 한때는 항공 엔지니어의 이직을 제한하는 계약 조항이 당연하게 여겨졌었다. 같은 지역의 다른 항공사로 옮기지 못하도록 묶어 두는 조건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조항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으로 사람들은 이동한다. 사람을 붙잡는 방식이 통제에서 설득으로 바뀌었고, 그 변화는 고스란히 아시아 지역으로 흘러간다.
우수 정비 인력이 빠져나간 항공사들은 점점 버거워진다. 어떤 항공사는 한 달이 멀다 하고 호주에서 항공기가 그라운드 된다. 인건비가 비싼 이곳으로 본사 AOG 구조팀이 급히 날아와 정비를 하고 돌아가지만, 뒤에 남는 손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항공기 한 대가 지상에 멈추는 순간, 손실은 연쇄적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수백 명의 승객이 호텔로 이동하고, 부품과 정비 인력, 장비와 공간이 동시에 필요해진다.
얼마 전, 내가 근무하는 항공사에서도 비행 중 발생한 엔진 결함으로 항공기가 그라운드 됐다. 마지막까지 출발 지연을 막기 위해 여러 부서가 동시에 움직였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밤 1시, 시드니 전역의 호텔을 수배하고, 승객들을 투숙시켰다. 항공기는 공항에 하루를 더 머물렀다. 견인 비용, 주기장 사용료, 장비 사용료, 연료 비용…. 항공기가 서 있는 동안 비용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쌓였다. 그 순간, 나는 정비 현장에서 흘린 땀과 고민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삶의 속도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항공 정비에서 시간은 돈과 같고, 판단의 무게는 곧 책임의 무게와 같다.
그래서 항공 엔지니어의 선택은 늘 무겁다. 결함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그 결정 하나가 항공사의 손실 규모를 바꾸고, 동시에 수백 명의 일정과 연결된다. 기술이면서도,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이번 오퍼는 그 선택을 다시 내 앞에 놓았다. 몇 년 동안 오퍼는 꾸준히 도착했지만, 연봉과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 거절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 내가 제시했던 조건들이 거의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숫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지금 연봉에서 세금을 제외해도, 한국 돈으로 연간 최소 1억 5천만 원은 더 저축할 수 있었다. 5년만 근무하면 노후를 지탱할 연금 하나가 생긴다. 한국에서 일하던 시절, 내 희망 연봉은 ‘억대 연봉’이었다. 한국을 떠나면서 그 목표는 이미 이루었고, 이번 오퍼의 기본 연봉은 그때의 몇 배였다.
그 사이 나는 더 많은 항공기를 돌보았고, 더 많은 밤을 공항에서 보냈다. 공항 아래에서 보낸 시간만큼, 삶의 속도도 함께 빨라졌다. 이제 연봉보다 시간이 먼저 계산된다. 선택의 무게, 결정의 책임, 그리고 남은 삶의 속도까지.
선택의 공은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사막의 나라로 돌아가 바쁜 시간들을 다시 쌓을 것인가, 퇴직 시기를 앞당길 것인가.
아니면 이곳에 남아 가늘고 길게 살며, 낚싯대를 벗 삼아 하루를 흘려보낼 것인가. 그곳에 가면 인생은 분주해질 것이고, 이곳에 남으면 삶은 조금 느려질 것이다.
나는 아직 어느 쪽에도 서 있지 않다.
이메일은 닫았지만,
사막과 바다는 아직도 내 손에서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