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하기 위한 멈춤의 순간들
나는 말이지
멈추고 싶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계속할 수 있다는 건 쉼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소극적인 말꼬리를 다시 덧붙인 건, 혹여나 저 한 마디를 단언할 때,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누군가의 앞을 가로 막고 싶지는 않아서이다.
지속을 위한 지속, 소리글자인 한글로 담기엔 무척이나 역설적인 세 개의 어간은 예전에 에디터로 지원해 보려던 지속가능을 추구하는 매거진 LETS에서 가져온 말이다. 1년째 저 단어에 꽂혀서 별 이상한 것들을 다 끼워 맞춰 보고는 했는데,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사람이라 역시나 또 나의 이야기를 해본다.
나는 유치하고 어리숙한 사람이라 겪어 보지 않은 것에서 오는 농밀한 낯설음의 장막에서 헤매는 일이 잦다. 그럴 때의 나는 어떻게 행동했지를 생각해 보면, 그저 앞으로 오로지 가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채로 뭔가를 향해 달려 나갔는데, 때로는 아니 어쩌면 항상, 주위의 것들에 시선을 돌린 채로 잠시 멈춰 서 있는 게 답이 되었다. 나는 너무나도 산만한 아이라서 주변의 것들을 둘러보지 못하기에, 그 정도의 멈춤이 필요하다.
나의 지속에 대한 갈망은 멈추는 여유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감정과 관계와 희망과 성장을 오래하고 싶어서, 멈춰 버리고싶다.
오랫동안 잘 지내고 싶어서
멈추는 건 어떤 걸까나
적막의 공간에서 요란의 순간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결핍과 갈망 사이 소속된 무언의 여유.
뭐 대충 그런 게 아닐까
이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일하겠다는 나에게 왜요? 라는 질문을 한다.
가만히 서서 귓볼을 스치는 공기에 집중하는 것
어쩌면 하찮지만 커다란 소음에 귀 기울이는 것
누군가가 그려낸 아름다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
아름다운 것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는 것
바라보는 것 만으로 벅차는 아름다움을 접하는 설렘이란,
역설적인 모든 것들로 가득찬 여유의 순간에 나를 멍하니 빠뜨리고 있기란 어찌 보면 하등 재미라곤 없어 보일테다.
그치만,
모르는 이가 표현해 낸 아름다움에 몰입한 어떤 순간이 오면, 나는 인체를 잘 모르지만 목젖 뒤의 어느 심연 속에서 뜨거운 것이 훅 하고 올라오는 신비감을 주곤 한다.
이건 당신이 말하는 감동일 수도, 그가 이야기하는 영감일지도 모르지
이 소스라치게 수상한 체험 덕에 나는 이상하게 편안해진다.
그래서 누군가 내 삶의 止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단순의 고민 없이 동적인 마음으로 정적인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무도 모르게 늘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정말 우리를 "스칠" 뿐이라
나와 너와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에서 보이지 않는 어느 만큼을 얼마만이나 차지하고 있을 지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쩌면 우리가 어떤 것들을 스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여타의 것들이 나를 스치는 게 아니고, 지속하는 내가 멈춘 그들을 스쳐 가는 것이겠지
순간에 그대로 집중한다는 건 스치는 작은 것들을 사랑해보자는 거고, 그래서 나의 止는, 멈춘 것들을 사랑하자는 거다.
제법 커다란 일이 되겠지만
,
4분 33초의 의도적인 고요를 통해 존 케이지가 전하려 했던 것처럼,
멈춤의 순간에 집중해 지나치는 작은 것들을 가득한 무언가로 남겨보려 한다.
모르고 잊혀진 것들에 읽혀진 후회를 두지 않도록
오늘도 나는 오랫동안이 되기 위하여
잠시의 순간을 두었다.
순간들을 아끼자
멈춰서 바라보자
오랫동안 계속하자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