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여는 학생들의 마음으로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 경로는 무수히 많다. 나는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걷는 프랑스길을 선택하였다. 이름에도 그 의미가 있듯이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향하는 길이다. 프랑스 파리는 이전에도 두어 번 여행을 한 적이 있어 익숙하지만, 순례길을 시작하는 생장(Saint jean pied de port)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생소했다.
지역이 먼 것도 큰 난관이지만, 사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파업의 나라답게 대중교통이 번번이 운행을 중지한다는 것이다. 나는 생장으로 향하는 환승지에서 그 파업의 굴레에 빠져들게 되었고, 한국에서 미리 발권한 기차가 아니라 생뚱맞은 버스에 몸을 싣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크게 동요되지 않고 오히려 편안했다. 기차든 버스든 생장으로만 향하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정해진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했던 내가 이 길 위에서 첫 번째로 마음을 여유롭게 가졌던 사건이었다.
09월 01일
9월의 첫 날, 무사히 생장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그동안 후기로만 봐왔던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여권을 발권받았고, 순례길이 끝나고 필요한 캐리어를 최종 도착지 산티아고로 보냈다. 32리터 백팩과 29인치 캐리어를 끌고 프랑스의 남쪽 끝으로 향했기에 꽤나 고단했다.
수많은 영상과 사진들을 통해 봤던 그 생장이라는 지역을 내 두 발로 서있으니 꿈만 같았다. 어찌 보면 동화 속에 있을법하게 생긴 이 거리가 마음에 들었다. 비록 내일이면 마을을 떠나야 했지만, 쌀쌀했던 파리와는 다르게 아직은 여름의 기운이 한껏 남은 쨍한 햇빛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이 좋았다. 그리고 학교 입학 전 설렘에 가득 찬 학생들처럼, 사람들의 떨림이 묻어나는 대화 소리가 좋았다.
순례자 사무소에서는 앞으로의 길이 걱정되어 여러 질문을 늘어놓는 사람도 존재하였고, 자신의 가방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위해 무게를 재보는 사람도 있었다. 난 당장 내일 큰 산을 넘고 국경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27번 알베르게(*Albergue: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숙박업소)에 짐을 풀고 까르푸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봐왔다.
그리고 알베르게에서 만난 같은 방 친구와 이른 저녁 식사를 하였다. 우리는 왜 이곳까지 왔는지, 앞으로 어떨지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사실 한국에서 말하는 '친구'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20살가량 많았고, 아주 선하고 밝은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알베르게에서 만난 다른 친구도 소개해 주었는데, 그분은 은퇴 후 남은 노년생활을 보내고 계신 분이셨다.
각기 다른 세대를 살아오고 모두 다른 나라에서 출발하였지만, 한 곳에서 만난 우리는 그동안 순례길에 대해 찾아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나는 내일 비가 온다는 소식도 접하게 되었다. 이런 게 신고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부터 비가 온다니 걱정스러웠지만, 나에게 우비가 있으니 별 일 있겠어?라는 생각이 곧 뒤따라 왔다.
평소의 나라면 비가 온다는 소식에 시작일을 하루 더 미루거나 시작하기에 앞서 큰 걱정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따뜻한 햇살의 기운이 달콤하게 불어오던 그날의 나는, 아무 걱정도 생기지 않았다. 아직 순례의 길을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전 날이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한 발자국씩 걷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장으로 향하던 길에서부터.
8살, 14살, 17살의 나는 그랬다. 새 학기를 앞두고 떨리면서도 설레어하고, 뭐든 다 괜찮을 같고. 그 오랜만의 감정이 이곳에서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나 역시 새 학기를 기다리는 학생들 마음 같았다. 내 안에 꼭 꼭 숨어있던 어린 시절의 맑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