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심에 둘러싸여 보지 못했던 것
모르는 사람이 부탁을 하거나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면 우리는 대부분 경계부터 한다. 어린 시절에는 보호자가 필요한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경계심을 배우지만, 어른이 되면서 경계해야 할 대상은 더 많아진다.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건 아닐까 생각될 때도 있지만, 팍팍한 삶 속에서 불필요한 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돼지고기를 사줄 순 있어도 소고기를 사주면 의심해야 한다.”라는 말도 있듯, 괜한 호의는 일단 의심하자는 경향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나 또한 경계하지 않아 피해를 본 적이 있었다. 상대방의 호의가 사심에서 비롯된 적도 있었고, 대가를 바라고 베푼 호의였던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난 누군가 나에게 불분명한 친절을 베풀면 경계부터 하게 되었다.
09월 02일
순례길 첫날부터 우려했던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비장하게 출발했던 새벽 공기는 상쾌했지만,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를 이루는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는 상상 이상으로 비가 쏟아졌다. 우비로 몸과 큰 가방을 가까스로 덮었지만, 고어텍스라던 등산화는 비에 젖어 버렸다. 또, 나의 걱정과 욕심으로 가득 찬 가방은 어떤가? 11킬로의 무게를 당당하게 드러내며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우비 속은 이미 땀으로 젖었고, 밖에는 거센 비와 안개가 자욱했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은 겉으로는 묵묵히 걷고 있었지만, 마주칠 때마다 다들 너무 힘들고 온몸이 젖었다고 한뜻으로 말했다.
그중 내 앞에 스패츠까지 착용한 한 중년의 남성이 걸어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스패츠를 챙길 정도로 비가 오겠냐고 생각해 가져오지 않았는데, 스패츠 덕분에 바지 밑단과 신발 안이 젖지 않는 그분을 보며 스패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걸음도 빨라, 나보다 빠르게 걸어가는 그를 보며 곧 나와 멀어지겠구나 생각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었지만, 비는 계속 내려 멈출 수 없던 때였다. 그 남성이 또 보였다. 힘들었던 탓일까? 평소와 다르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스패츠를 가리키며 엄지를 세웠다. 그는 억센 비 속에서도 미소를 띠며 무언가 말했다. 사실 스페인어라 알아듣기 어려웠다. 해외에 나가면 영어가 곧 모국어가 된다고 하던데, 정말 영어가 아니고서야 도통 알아듣기 어려운 스페인어였다.
그러나 우리는 손짓 눈짓으로 짧게 짧게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내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였고, 나와 또래의 딸이 있다고 했다. 나이를 물어보며 귀가 빠지는 제스처를 보였던 그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짓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귀 빠지는 날이 태어난 날이라는 것도 세계 공용어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비와 안개로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 그는 이 길이 좋다며 계속 나를 안내했다. 같이 걷지 않더라도 뒤를 돌아보며 내가 따라오는지 확인했고, 종종 다른 순례자들에게 말을 건네며 걷기도 하였다. 도착지인 론세스바예스에 가까워졌지만, 숙소가 보이지 않을 때 그는 나에게 조금만 더 힘내라며 응원해 주었다. 그가 계속해서 나를 챙기는 것이 느껴졌지만, 마음 한편에는 부담과 경계심이 일기도 했다.
그래서 길 끝에서는 그와 거리를 두게 됐다. 마지막 즈음에는 그와 멀리 떨어져 걸었고, 가까스로 도착한 숙소는 혼잡했다. 순례자들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보였고, 침대를 배정받기 위해 물을 뚝뚝 흘리며 줄을 선 모양은 마치 재난에 휩싸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전쟁 같은 첫날이 지나고, 뜨거운 물로 몸을 씻은 뒤 폭풍 같았던 하루를 정리했다.
며칠 뒤 나는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멀리서 내 이름을 외치며 서툴게 써 내려간 번역기를 보여주었다. 글자가 빼곡하게 쓰여있던 화면에는 내게 다음 날 어디까지 갔냐고 물으며 많이 걱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119, 112 번호와 같이 스페인에서 응급 구조를 받을 수 있는 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을 물으면, 정말 부끄러웠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딸처럼 걱정해 주었는데, 나는 경계심에 그를 의심하고 부담스러워했던 것이 미안했다. 팍팍한 삶 속에서 잊고 있던 진정한 '배려'와 '친절'을 그를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풀어 준 이들이 많았다. 학교를 가는 길에 본인의 딸과 같은 학교라며 차에 태워주셨던 어른, 휴대폰이 없던 시절 모르는 분의 전화를 빌려 썼던 기억들.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그 친절들이 떠올랐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다시금 타인의 선량함을 느끼며, 불필요한 경계를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팍팍한 일상에 지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진심 어린 배려와 따스함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왔다.
길 위에서 다시 만난 친절은 내 마음속 불필요한 경계의 먼지를 조금씩 지워내며, 타인의 따뜻한 손길을 생생히 느끼게 했다. 그렇게 나는 경계심을 넘어,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믿음을 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