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앞만 보고 갔을까
등산을 시작한 뒤, 정상을 누구보다 빠르게 오르는 것이 좋았던 때가 있었다. 앞에 가던 사람을 앞지르고 올라설 때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이유를 찾아보자면, 묘한 성취감과 더불어 역시 내 몸은 강하구나!라는 감각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자서가 아니라 같이 시작한 등산에서 앞만 보고 간 행동은 탈이 나기 마련이었다. 인생을 논할 때와 비슷하다. 앞만 보고 올라갔기에 내가 놓치는 것이 참 많았다.
한 여름, 친구와 등산버스를 타고서 계곡이 어우러진 국립공원으로 가는 날이었다. 더운 여름바람이 불고 있던 그 계절에 타보는 산이란, 참으로 두근거리면서도 정해진 버스 시간 내에 하산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이킹에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내 마음가짐이 모든 것을 어렵고 힘들게 했다.
나는 등산을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날 무렵이었고, 북한산과 소백산을 이어 3번째 국립공원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제대로 된 국립공원을 완등한 경험이 없는 운동 초보였다. 나 또한 등산에 제대로 된 경험이 없는 초보였지만, 친구보다 꾸준히 운동을 해와서 인지 걷는 속도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이때 친구가 나에게 배려의 말을 던졌다.
"너 먼저 가. 뒤 따라갈게."
나는 이런 친구의 배려를 덥석 받아들였고 정말로 혼자 빨리 가버렸다. 그 결과로 체력이 따라주지 않던 친구와 거리의 격차가 크게 나버렸고, 더 이상 뒤돌아봐도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파가 통하지 않는 구간이 있던 산행에서 나는 친구를 잃어버렸다.
그 탈로 친구는 화가 났고, 난 조금 머쓱하게 친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친구의 감정 변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 의미를 헤아리지 못했기에 참으로 서투른 등산이었다고 말하고싶다.
난 친구를 잃어버린 것 뿐만 아니라 같이 길을 오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잃었고, 지루하고 가파른 하산 길에서 서로 의지되는 '같이'의 기쁨을 잃었다. 뿐만 일까? 나 스스로도 앞만 바라보고 갔기에 산의 형태를 오롯이 느끼지 못했고, 한없이 마음만 조급해진 등산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난 자주 그랬던 것 같다. 뭐에 그리 쫓기는 것인지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나날이 많았다.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빨리 가고 싶고, 뒤처지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여유가 없다.라는 말은 어찌 보면 내가 스스로 만든 마음가짐이었던 것이다.
산은 늘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정상석 돌멩이만을 향해 빠르게 오르는 것보다, 함께 오르는 사람을 돌아보고 내가 지나온 길과 주변의 풍경을 살피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앞만 보고 걷던 나는 산을 통해 비로소 멈추어 서서 주변을 돌아볼 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