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부터 사람이 아닌 숫자였다
39명 중 31등...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처음 시험을 치르고 받은 반 석차 등수였다.
그 성적표가 우리집 우편으로 와 어머니의 손에 들려 있던 그 때가 나는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반에 있는 애들끼리 서로 비교하고 등수를 매기고 시험성적표에 적혀 우리집 우편으로 보낸다고?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성적이 낮으면 모멸감을 느끼라는 것일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이 시스템에 대한 근원적 의문감, 왜 나는 이걸 따르며 평가 받아야 하는지 나는 그때부터 깊은 고민에 잠겼다.
"왜 그래야 하지?"
"왜 서로를 비교해야 하지?"
"왜 나는 동의하지도 나한테 묻지도 않았는데 성적표가 집으로 오고 그것이 엄마 손에 들려야 하지?"
그것은 단순한 의문이 아니었다.
“내가 이 구조 안에서 살아야 하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이었다.
학교에 가니 누가 반에서 1등을 했고 누가 꼴등을 했는지 수근거리며 서로 다 아는 눈치이고 같은 학원 다니던 어머니 친구 딸은 전교 1등을 했다며 학원생들끼리 웅성거리고 있었고 각자의 성적표는 마치 공개된 비밀처럼 떠돌았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휩싸인 나는 어디에도 끼지 않고 관망하며 그저 그 순간이 지나갔으면 바라며 웅크리고 있었다.
그날, 내가 받은 ‘31등’이라는 숫자는 내 안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수치는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내 자존감의 어딘가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날 이후, "비교"는 내 마음 한가운데에 깊이 박혀버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나를 먼저 비교하고, 내가 나를 먼저 깎아내리는 사람이 되는 나를 보고 있었으니...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도,
“내가 해도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나는 또 남들보다 뒤처지겠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학업 성적이 좋았던 애들에 대한 동경과 질투의 혼재 그 사이 어딘가에 빠져 버리고..
그러면서 누구는 학업 상위권, 누구는 중상위권, 누구는 하위권... 비교와 숫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를 휘감아버리고 있었다.
내가 학업 성적이 좋고 적응력이 좋은 아이였다면 이런 고민이 없었을까?
어쩌면 또 다른 비교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비교의 늪에 빠져버렸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숫자로 줄을 세우는 세상 속에서, 나는 나만의 질문을 시작했다.
아직도 비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의 나를 기억하며 매번 되묻는다.
“정말 중요한 건, 등수인가? 아니면 나만의 속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