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기차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중국은 달랐다.
땅이 넓은 만큼 열차는 가장 보편적인 이동 수단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 모를 소도시에도 정차했고, 값은 비행기보다 훨씬 저렴했고 버스보다 훨씬 넓었다.
무엇보다 버스와 기차에 ‘침대’가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나에게 꽤 신기한 풍경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고속철도도 들어오지 않던 난양이라는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가려면 기본 다섯 시간은 각오해야 했다. 한국에서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들어온 뒤 야간 침대기차를 타고 학교까지 가면 13~14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인간이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차 안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기차 안에는 음식 카트가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승객들은 각자 싸 온 음식을 꺼내 먹으며 수다를 떨었고, 밤이 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침대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흔들림은 멈추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환경에 이미 익숙해 보였다. 그들 역시 지루하지는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 같은 사실들을 이야기해 주면
“중국에서 장거리 열차를 타봤다니, 풍경 보느라 즐거웠겠네?”
“낭만이었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곤 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직접 타보면 알 일이라고 생각했다.
창밖의 풍경은 대개 비슷했다.
시속 50~6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 창문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농가와 평원들.
가끔 “저곳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상상해 보지만, 그 호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졸음이 몰려왔고, 몸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침대에 누워도 편안하지는 않았다. 집과는 전혀 다른 진동과 소음.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더해졌다.
그 시절의 나는 낯선 중국인들을 경계했다.
혹여라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들은 높은 확률로 다가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왜 중국에 왔는지, 한국 드라마는 어떤지, 화장품은 무엇을 쓰는지, 연예인은 누구를 좋아하는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나는 앵무새처럼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러다 문득,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곤 했다.
유튜버라면 즐거워했을 장면일지 몰라도, 그때의 나는 아니었다.
다만 그들의 삶에서 내가 유일한 한국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미소는 유지하려 애썼다.
그날들은 지루했고, 긴장되었고, 종종 외로웠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배웠다.
"인내"였다...
나는 초능력자가 아니었다.
내가 짜증을 낸다고, 시계를 몇 번이나 들여다본다고 해서 기차가 갑자기 더 빨리 달리지는 않았다.
기차가 연착한다고 속도를 못 높인다고 화를 내도, 답답함을 토해내도, 선로 위의 속도는 변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정해진 시간 동안 그 안에서 버티는 것뿐이었다.
최종 목적지에 시간이 오래 걸리든 도착은 결국 온다.
다만, 내가 성질을 낸다고 해서 앞당겨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