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비가 내린다. 나는 빗소리와 박자를 맞추며 타자를 친다. 아이들 앞에서 투명 인간처럼 앉아 있다. 이 아이들에게는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에 대해 생각했을 때 여러 가지 기억이 떠올랐었다.
아빠를 원망하며 많이 울었던 날,
정전이 된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줬던 첫 학교에서의 여름날,
텐트 안에서 들었던 자장가 같던 빗소리,
영화 클래식을 어설프게 따라 했던 대학생 때의 기억.
그런데 막상 빈 종이를 꺼내니 그 어떤 날의 기억도 활자로 옮겨지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내리는 이 비가 지금 내게 너무나 선명해서
다른 기억들을 추억할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의 무기력한 압력이 나를 짓누르고만 있었다.
1학년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했다.
한 아이가 이런 시를 썼다.
“아가미가 있으면 좋겠다/깊은 바다에 잠겨도/숨을 쉴 수 있는/아가미가 있으면 좋겠다”
그 아이에게 물었다.
“니가 쉴 때 하는 것들을 떠올려봐. 뭐가 있어?”
그 아이가 답했다.
“저는 쉬지 않아요.”
순간 가슴이 콱 막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화가 났다.
나는 그 아이에게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나 같았다.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자기 자신을 몰라서
얄팍한 책임감에 휘둘리고 있는 내가 답답했다.
지금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아가미를 원했던 그 아이는 사실, 나보다 나았다.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는 회초리처럼 나를 때린다.
정신 차리라고.
타닥타닥 마음이 불탄다.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