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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디램 설계 엔지니어가 소개하는 디램 제작 과정

by 류디

디램(DRAM) 설계는 사실 아주 작은 블록들을 정교하게 쌓아 올리는 작업과 비슷해요. 다만 그 크기가 정말 작아서,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예요. 우리가 다루는 건 나노미터라는, 아주 작은 세계거든요.

블록 쌓아 올리듯 설계하는 디램


예를 들어볼까요? 요즘 나오는 DDR5라는 컴퓨터용 메모리는 10 나노미터대 공정으로 만들어져요. 우리 머리카락 한 가닥의 두께가 약 100,000 나노미터라고 하니, 얼마나 작은지 상상이 되시나요?


우리가 실제로 이 작은 부품들을 손으로 만지는 건 아니에요. 대신 아주 정밀한 장비와 첨단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요.

디램 설계 엔지니어의 역할은 이 '디지털 레고'를 어떻게 만들고, 배치하고, 연결할지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지금부터 디램에 대한 간단한 추가 설명과 함께, 삼성전자 디램 설계팀에서 어떻게 디램을 설계하고 검증하는지 소개해드릴게요.


디램의 초간단 핵심 설명

이전 글에서 책상 위에 올려놓은 물건들을 우리가 바로바로 사용할 수 있듯이, 디램도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저장하고 쓸 수 있다고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드린 비유지만 사실 추가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실제로 디램 내부에서 정보를 저장하는 공간은 캐패시터라는 전기 저장장치입니다. 캐패시터는 전류를 통해 0과 1 둘 중 하나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상자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디램에는 이 캐패시터라는 작은 상자가 무려 수백억 개나 있어요. 디램은 컴퓨터나 핸드폰의 명령에 따라 캐패시터라는 상자 안에 정보를 0과 1의 형태로 저장하거나, 저장된 0과 1의 정보를 읽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캐패시터는 0과 1을 저장하는 작은 상자예요.

디램은 정보를 직접 저장하는 캐패시터 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명령에 따라 맞춰 디램을 동작시킬 회로들이 필요해요. 우리 엔지니어가 하는 주역할은 이 회로들을 설계하고 검증하는 일이랍니다.

이제 이 디램을 도대체 어떻게 설계하는지 그 과정을 정말 쉽게 설명드릴게요.


레고를 쌓을 줄 아는 당신, 이미 디램 설계 마스터

디램은 아주 작은 전자 부품인 트랜지스터라는 블록을 쌓아 올린 제품이에요. 트랜지스터는 전기를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 같은 거예요. 설계 엔지니어는 이 트랜지스터를 이리저리 조립하여 회로를 설계합니다. 마치 레고의 완성도면을 보면서 블록을 쌓아 올리듯 말이죠.


사실 실제로는 삼성전자 내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디지털 회로를 설계해요. 정보를 저장할 때 동작하는 회로, 정보를 읽어 내보내기 위해 동작하는 회로 등 다양한 동작을 수행하는 회로를 각각 만들어요. 블록으로 쌓아 올리는 건물의 모양이 다를 수도 있고, 크기도 다양할 수 있듯, 회로도 그 용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이에요.

우리 엔지니어는 회로가 의도한 대로 잘 동작하는지, 얼마나 전류를 소모하는지 등등을 판단하면서 최적의 회로를 설계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요.

건물의 모양과 크기가 각양각색이듯, 디램 내 회로도 마찬가지랍니다.


다양한 동작에 맞는 회로들을 각각 설계하였다면, 이제 디램 내부에 배치를 해야 해요. 회로 배치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요. 회로들은 기본적으로 디램 내부에서 금속 연결선을 통해 서로 신호를 주고받아요.

만약 멀리 떨어뜨려 배치하게 된다면, 금속 연결선을 길게 사용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동작을 하는 회로들은 가까이 모아놓아 불필요한 금속 연결선을 최소화해요. 회로적인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최적의 배치를 찾는 것도 엔지니어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레고로 멋진 성을 쌓은 후에는 그 성이 튼튼한지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 디램 설계에도 중요한 다음 단계가 있어요.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다: 까다로운 검증

자, 이제 우리의 멋진 디지털 레고 성을 다 지었다고 생각해 볼까요?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사실 진짜 중요한 부분은 지금부터예요.


디램 설계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검증 과정이에요. 이 과정은 정말 꼼꼼하고 신중하게 이뤄져요. 마치 레고 성을 지은 후 모든 블록이 제대로 연결되었는지, 무너지지는 않을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죠.

왜 이렇게 꼼꼼히 확인해야 할까요? 디램은 컴퓨터의 중요한 기억장치로, 전체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아주 작은 실수 하나도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 그리고 고객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디램의 신뢰성이 우수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이유도 있어요.


검증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눠져요.


시뮬레이션

컴퓨터 안에서 우리의 설계를 테스트해요.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모의 비행을 하는 것처럼요. 우리 설계 엔지니어들은 디램 칩 1개에 대해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수행해요. 정보를 디램 외부로 잘 내보내는지, 또는 디램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캐패시터에 잘 저장하는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만약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면 설계 엔지니어들은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며 해결책을 찾아내요.

모바일용 디램 LPDDR5의 실제 시뮬레이션 동작 파형

저도 설계 엔지니어로서 제품 설계하면서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수행했어요. 그중에 한 번이라도 동작 오류가 발생하면 바로 회로를 수정하죠. 가장 골치 아픈 점은, 회로를 수정할 때에도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 오류를 수정했더니 다른 오류가 새로 발생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회로를 설계할 때보다도 회로를 수정할 때 더 신중을 기하고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려고 해요.


신뢰성 검증

디램은 칩 하나로 고객에게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패키지라는 큰 포장지에 싸인 채로 고객들에게 판매돼요. 패키지에는 디램 칩 여러 개가 한꺼번에 들어가 있어 용량이 적은 디램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죠. 패키지가 판매되기 위해서는 실제 사용 환경과 비슷한 조건은 물론이고 고온 고압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해요.

여러 패키징 기술로 칩 여러개를 하나의 패키지를 만드는 모습

제 부서는 사실 신뢰성 검증을 직접 수행하는 부서는 아니에요. 검증 부서는 삼성전자 설계팀 내/외 수많은 부서에서 진행을 해요. 그 검증 결과를 종합하여 피드백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에요. 부담과 책임이 큰 자리이지만 우리가 설계한 제품이 판매된다는 뉴스를 접할 때의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크답니다.


결론: 작은 세계의 큰 영향력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디램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 컴퓨터, 게임기 등 거의 모든 전자기기에 디램이 들어있죠.


우리가 레고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즐겁게,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정밀하고 책임감 있게 만들어낸 이 작은 칩들이 현대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디램 설계는 꼼꼼함과 끈기, 그리고 새로운 생각이 필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만든 것으로 세상이 더 좋아지는 걸 볼 때면, 모든 힘든 과정이 보람차게 느껴져요. 레고로 만든 성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처럼, 우리가 설계한 디램은 세상을 더 편리하고 스마트하게 만들어주니까요. 앞으로 어떤 디램을 설계해 나갈지 스스로도 몹시 궁금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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