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 우리는 자유에 도달할 수 있을까

by jin h

※ 『진격의 거인』 감상 후 스토리를 기반으로 쓴 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격의 거인』은 사방이 벽으로 막힌 섬에서 시작된다. 3개의 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그곳에서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거인들로부터 몸을 지키며 평생을 살아간다.
벽 안에서 태어난 에렌과 아르민은 책 속 그림으로 바깥세상을 상상한다.
그들의 “밖의 세계를 보고 싶다”는 외침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존의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들은 끝내 벽을 넘어 그림으로만 보던 바다를 마주한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는 정말 벽을 넘기만 하면 얻어지는 단순한 것이었을까?


『진격의 거인』은 자유를 추구하는 여정을 따라가지만, 그 과정에서 자유는 점점 선명한 형태에서 멀어진다. 자유는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마주해야 할 질문으로 남는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가, 그 감각을 붙들고 자유를 상상할 뿐이다.


나에게 『진격의 거인』을 보며 던져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자유는 단지 벗어남이 아니라, 그 이후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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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넘는 것이 곧 자유라 꿈꾸었던 시간


에렌에게 자유란 벽을 넘는 것이었다. 벽 바깥세상은 미지의 희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가 바다를 마주한 순간, 현실은 달라져있지 않았다.
그 바다 건너에도 적이 있었고, 또 다른 억압과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를 본 에렌은 말했다. “저 너머에 있는 적들을 전부 죽여버리면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 말은 자유가 단순히 장애물을 넘는 행위로 보장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종종 자유를 외부의 억압에서 벗어난 상태로 상상하지만, 현실의 자유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에렌이 상상한 자유의 모습은 벽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벽 안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벽을 넘는 것은 곧 해방이었다. 하지만 억압 속에서 꿈꾼 해방은, 그 밖에서 더 깊은 책임과 갈등으로 변해있었다.

하나의 장애물을 넘고 해방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
또 다른 자유를 위한 선택이 필요했고, 그 선택에 끝이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에렌은 다시 한번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 단순한 해방감이 아닌, 에렌이 그 바다에 서서 갈구하던 진정한 자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상상한 자유란 때로는 감옥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상상일 수도 있다.

자유는 도달하는 목표가 아니라, 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책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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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는 해방을 보장하는가


벽이라는 물리적 억압을 벗어난 에렌은 더 큰 진실과 마주한다. 세계가 자신의 민족을 탄압하고 멸시한다는, 자유를 옥죄는 진짜 문제를 발견한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깨닫는다. 자유를 향한 여정은 끝이 없는 싸움이겠구나.


나를 억압하는 무형의 폭력들까지 우리가 진정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우리도 수많은 고정관념과 사회적 잣대, 결국 우리가 만든 줄 세우기와 보이지 않는 기준들에 억압받는다. 『진격의 거인』에서는 그것이 한 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로 극단적으로 표현되었지만, 우리도 일상에서 크고 작게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유는 결국 도달할 수 없지만, 인간이기에 그저 갈망하게 되는 개념일 뿐일까?

에렌은 작품 속에서 “내가 자유를 원하는 건 내가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자유를 향한 욕망이 본능처럼 뿌리 깊은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작품 속 또 다른 인물, 케니 아커만은 이렇게 말한다.

“다들 무언가에 취하지 않고선 버틸 수 없었던 거야. 모두 무언가의 노예였어.”

우리는 무언가를 크게 원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 자유와도 같은 기분을 느낀다.
에렌이 원하던 것은 곧 ‘자유’였기에 그런 우리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에렌도, 우리도 원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어느 순간 그 욕망 자체가 또 다른 속박이 되기도 한다.

자유는 도달하는 목표가 아니라 나아갈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 어느샌가 속박이 된 욕망으로부터는 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당을 요구하는 짐이 되기도 한다.

벽으로부터의 해방 이후 에렌의 삶은 더 많은 책임과 선택의 무게를 요구한다.

자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감내하며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뀌어 버린다.

에렌은 자유를 위해 싸우지만, 그 과정은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가 원했던 것은 자유였지만, 그가 택한 것은 파괴였고, 그 끝에서 남은 것은 고립이었다. 그는 벽을 넘었지만, 어떤 삶을 살 것인지까지는 결정하지 못한 채, 선택의 무게에 짓눌렸다.


그런 에렌의 모습을 보면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의 자유는 곧 ‘무엇을 자유로 여기느냐’는 정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롭다’는 어딘가에 갇히고 속박당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자유일지도 모른다고 앞에서 언급했다. 그 상황에서 정의하는 자유는 단순히 벽을 넘어가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벽을 넘어가면 우리는 또 새로운 자유를 정의해야 한다.

자유를 얻으려면 그 자유를 우리가 정의해야 한다.

어쩌면 자유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르트르가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라고 말한 것도, 인간은 자유가 무엇인지 조차 정의되어있지 않은 세상에서 매 순간 그 의미를 만들고 행동하고, 선택하며 또 그것을 책임져야 한다.

에렌이 벽을 너머 한 선택에는 본인이 정의한 자유가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그는 결국 모든 선택을 감내하며 나아간다. 자유는 그에게 목적지가 아니라, 부딪혀야 할 질문이며, 고독 속에서 지켜야 할 태도였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그가 바라던 자유였는지는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에렌이 도달했던 그 바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자유는 스스로 정의할 때만 형태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자유를 상태로 상상하지만, 『진격의 거인』은 말한다.

자유란 그저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를 살아내는 방식이라고.

진정한 자유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 정의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는 형태를 가진다. 완전한 해방이 없을지라도, 그 정의 자체가 우리 자유의지의 증거일 것이다.


『진격의 거인』은 자유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다시 물어야 하는 상태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방되었을 때가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질문할 때 비로소 자유에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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