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심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승객들을 깨우며 이리저리 다니는 승무원들의 모습이 차분하지만 부산해 보였다.
그날따라 탑승과 동시에 기내에 울리는 아기 울음소리가 불길했다. 아닐 거야 하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려 애써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틀어놓고 잠을 청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어폰에서 선명하게 들리는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 'Emergency!' 나는 빈 옆자리에 걸 터 새우잠을 자다 순식간에 일어나 안전벨트를 매고 의자 등을 세우고 창문 덮개를 열고 옆에 널브러진 짐들을 의자 밑으로 집어넣었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내 몸은 망설임이 없었다. 약 5초 뒤 Emergency! Please be seated. Fasten your seat belt quickly. Emergency!라는 기장의 젠틀하지만 거친 말투가 다시 심장에 꽂혔다.
비행기 추락 당시 떨어진 산소마스크
올 것이 왔구나! 현재 위치를 확인하려고 모니터 채널을 돌리는 순간 모든 화면들이 꺼졌다. 천장에서 산소마스크가 떨어지더니 빨리 착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살면서 가스통 같은 산소통을 비행기에서 사람(승무원)이 메고 다닐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당황한 나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일단 앞에 놓인 마스크 사용 설명서를 읽고 산소마스크를 쓰고 나니 되려 호흡이 안되고 숨이 가빠 왔다. 고장이 났나? 산소가 나오지 않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쌓여 있었고, 몇몇 여성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울어야 할까, 편지를 써야 할까, 기도를 해야 할까 생각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고도 15000 피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기는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하고 있었다. 고통 없이 빨리 죽게 도와주세요. 기도했다. 얼마간의 정적이 지나고 승무원들이 다시 나타났다. 한시간 쯤 흘렀을까? 승객들에게 마스크를 벗으라고 했다. 끝났구나. 알고보니 산소마스크는 한시간이 지나면 더이상 산소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걸 몰랐던 나는 위험한 순간이 끝나서 마스크를 벗으라는 걸로 착각했다. 하강은 멈추었다.
그렇게 악몽 같은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해가 뜨기 시작했다. 에티하드 항공은 새벽 1시 아부다비 공항에서 출발해 오후 2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하는데, 천천히 아주 낮은 고도로 날고 있으니 대략 베트남이나 대만 어디쯤이 아닐까 추측했다. 밖이 흐릿하게 보였다. 어두운 바다가 내 발바닥 바로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항공기는 인명 피해를 줄이고, 응급 보트를 띄울 목적으로 사고 직전 바다로 향한다고 한다. 내 발밑은 중국 산둥반도에 인접한 '황해(Yellow Sea)' 였던 것이다. 그 이름 만큼이나 바다 색깔은 둔탁했다.
얼마 후 베이징 공항.
어디서부터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중국에 있다는 사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야 하는데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 베이징 공항이야."
"인천 아니고 중국이라고? 중국 일정은 없었잖아?"
"응, 기체 결함으로 불시착했어. 오늘 못 갈 수도 있을 거 같아. 다시 전화할게."
별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가슴은 너무 답답하고 무섭고 그제야 슬픈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 두 발이 땅을 딛고 있다는 게 영화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뉴스를 보면, 죽는 순간에 음성 메시지도 보내고 가족들에게 편지도 쓰는 것 같던데, 내가 탔던 비행기에는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패닉 상태가 너무 길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순간에 모두는 침묵만 지켰다. 누구 하나 큰소리로 말하지 않았고, 영원처럼 길었다. 이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고 당시 내 산소마스크는 고장 난 게 아니라, 긴장과 두려움으로 내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나는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들이 혼자 살아가야 할 앞날을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 남은 가족들이 나에 대한 그리움으로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아야 할지 염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바다에 빠져 저체온증으로 서서히 죽어가야 할 내 모습이 걱정되었다. 당장 기절이라도 해서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눈을 뜨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있어야 할 곳에 있기를 바랐다. 불확실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빨리 죽느냐, 잘 살아남느냐 하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읽었던 ‘90초 규칙’이 떠올랐고. 만약 땅으로 추락한다면 플래시오버가 되기전(90초 이내)에 먼저 뛰어나갈 것인가 아니면 순서에 따라 차분하게 기다릴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 후 일 년간 출장을 가지 않았다. 트라우마로 비행기를 못 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1년 뒤 8시간 거리의 모스크바로 떠났다. 바퀴가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온몸에 땀이 나고 긴장으로 근육이 아파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고도 15000 피트'쯤 올랐을 때 그날의 상념들이 떠올라 지금 내 삶의 바로미터가 되었다.
1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2 당장 죽어도 후회 없을 일부터 하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1순위다.
3 여행과 여가는 공중을 날지 않는 쪽을 우선으로 한다.
4 추억을 기록하자. 글로 사진으로
5 주변을 정리하며 살자. 책상, 서랍, 옷
6 고도 15,000ft는 안전하다. 아무리 엄청난 turbulence 에도.
지금도 중앙아시아 지역은 비행기가 착륙을 하면 손뼉을 치는 풍습이 있다.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한 기쁨과 승무원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뜻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 문화를 낯설어하기도 하는데, 나는 누구보다 열렬히 박수를 친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을 때를 기억하면 그들의 박수가 마치 살아남은 나에게 보내는 박수처럼 느껴진다.
"Fasten your seat belt!"는 '벨트를 매세요.'라는 뜻도 있지만, 이게 좀 복잡하면서도 정신없이 진행될 수도 있으니까 '정신 차리고 잘 따라오세요.'라는 뜻도 있다. 그날 내가 기내에서 들은 건 전자일까 후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