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신선 지는 장미꽃 앞에서
반쯤 무너진 성터에 크고 작은 돌들이 굴러 있다
어느 것은 허리에 이끼를 묶고 앉아 있고
어느 것은 깨진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누웠다
그렇게 서로 몸을 포개거나 상반신을 허공에 묻은 채
시간만 질겅거리며 씹고 있는 폐석(廢石)들
남 늦게 겨우살이 챙기는 입동 철
꽃잎들이 반나마 허물린
내 뜰의 장미 송이는 폐허 직전의 저 소슬한 성곽이다
-홍신선 지는 장미꽃 앞에서 전문
그리스어로 알레고리는 ‘다르게 말하기’라는 알레고리아allegoria에서 유래된다 벤야민(W. Benjamin)에 따르면 알레고리란 화해하지 않는 대립항 속에서 생겨나며 다른 사물을 들여와 어떤 사물에 빗대어 표현되는 것이다
건설과 파괴 미몽과 각성 실재와 허구가 이에 해당되며 우리는 흔히 잃어버린 것에 대한 반성과 잃어버린 이후 비로소 무엇인가를 찾아나서는 것으로 현실적 알레고리를 자각하기도 한다 작품 내에서는 전반적으로 중요하고 주된 상징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표면적 의미와 이면적 의미를 모두 가지며 의미의 많은 요소들로 구성되지만 각 요소들이 오직 하나의 의미만을 가지므로 요소와 의미관계가 1:1로 등가된다
이는 시에서는 성벽과 장미라는 두 요소로 구성되며 이들은 각각 생명의 덧없음이라는 공통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들은 유사한 의미 관계를 지니며 한편 추상적인 의미들이 구체화된다 시에서 입동의 장미꽃은 반쯤 무너진 소슬한 옛 성터와 비유된다
단순하듯 하지만 언어를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이미지를 반복 재현하는 과정에서 길고 충만한 의미를 담아낸다 이성이나 논리에 호소하기보다는 상상과 이미지에 호소하는 명확하고 짧은 예를 통해 훨씬 큰 범주를 개념화한다
장미꽃과 성터라는 이 낡고 생명성을 다한 두 이미지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 위치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의미를 표상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공간을 초월한 두 가지 표상이 화자의 내면에서 뒤섞이는 과정에서 성터나 장미꽃은 이미 기다림에 초연한 채 공간 속에 존재한다. 화자가 전하고자 하는 또렷한 메시지인 생성소멸이라는 알레고리는 더욱 강하게 부각되고 이 과정에서 유사성끼리의 만남은 극대화되고 부질없고 헛된 생명성에 대하여는 보다 뚜렷한 의미적 상징성을 대조적으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