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길」
회백색의 휘어진 선이 거리를 품는 중이다
그 길은 늘 빗물이 번들거리거나
잔설에 발자국이 얼어붙어 있다
창으로 보이는 길
소리 내지 못한 울음이
사생아를 넣은 길
징크 화이트를 뒤꿈치에 찍어 발라 찐득찐득하게
저항하는 길을 물고
엉덩이가 큰 여자가 정오의 해를 흔들며 걸어 들어간다
뒷골목이 몸을 틀어
고여 있는 길을 쏟아낸다
오후 다서시 반에 멈춘
교회종탑시게
파문당한 사제복에 남아있는 향내 같은
위트릴로 그림 밖으로
걸어 나와 그늘이 되는 여자
피를 쏟아내는 백색의 꽃이 자라는 그 곳
건너갈 수 없는, 거기
흐르는 길은 또 다른 이름을 갖기 시작한다.
환상이란 시선視線에 의해 유발되는 물질과 정신의 한계를 중심으로 주체와 객체 사이의 경계 소멸 시간과 공간의 변형이 유래한다 (토도로프 1972) 시「흐르는 길」에서는 루이 박스의 말처럼 미결정 상태에 머무른 이상적 환상성이 나타난다 어떤 상황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경계에 있는 상황을 품는 중 소리 내지 못하는 울음 저항하는 길 등으로 표현된다
이는 다음 단계로 차마 이행되지 못하는 상황에 머물러 있으면서 환상성을 유발한다 실재의 공간인지 무의식의 공간인지 시의 거리는 회백색의 휘어진 선으로 길은 빗물 잔설로 뒤덮여 있다 이 공간은 눅눅하고 어두운 내면적 공간을 의미하지만 실은 이도 저도 아닌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물기와 바닥에 쏟아지는 피로 바닥은 끊임없이 공상적이고 몽환적이 되어가는 점을 상기하는 축축한 길의 잔상만 남는다 하지만 엉덩이가 큰 여자는 더 이상 길을 갈 수 없고 길의 끊어짐에서 불러들이는 다른 이름을 갖는 흐르는 길이 된다
과거와 현재 의식과 무의식 그림 안과 그림 밖을 오가는 동안 살아 움직이는 여자는 혼돈과 환각 불확실과 확실 사이에서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혼란함과 더불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서서 몽환과 환상을 극대화시킨다 엉덩이 큰 여자 파문당한 사제복에 남아있는 향내 그늘이 되는 여자 피를 쏟아내는 백색의 꽃 등에서 유추되는 이 불길한 관능성은 어두운 삶을 확장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제도화된 삶의 허구를 도피시키는 과정에서 성적 에너지를 방출하고 이로써 자유로움을 얻는 해방감을 표현한다
따라서 시에 나타나는 성적 표현들은 금기된 원초적 쾌락을 벗겨내어 무의식의 원형을 밝히는 한편 가식적으로 정직한 관습적 사회의 가면에 대한 횡포를 파괴력 있게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