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삶이 참 가볍다
큰 흐름에서 보면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고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르지 않은 변화가 없는 삶 같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치 장롱 서랍을 정리 수납하듯 삶의 일상들이 점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정리정돈이 되어간다
마치 진흙탕이 된 시냇물이 꽤 긴 흐름으로 흘러내리면 자연 정화가 되는 냇물 원리처럼 이곳의 삶이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서 삶이 단조롭다
하지만 반면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늘어난다 식사 준비 외출 준비 등 생활일반에 관한 시간들의 단축이 무한 가능하다 그래서 나의 생활에 온전히 시간을 투자할 수 있고 집중하게 되니 좋은 일이다
예를 들자면 최근 체중이 늘어 소식으로 식생활을 조절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해결된다 내 식단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불시에 불려 나가 식사할 일도 없고 그렇게 입에 당기는 음식도 쉽게 사거나 선물 받는 일도 쉽지 않다 물론 택배는 가능하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단식이든 절식이든 소식이든 가능하다. 의지를 흩트리는 환경이 훨씬 덜하다는 점이다
입는 옷조차도 그렇다 이곳에서는 늘 입게 되는 옷만 입는다 이런저런 옷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 긴 원피스 밝은 색의 외투 등등 몇 개의 캐리어에 가득가득 채워져 있지만 이곳에서 입을 일이 없다는 점은 이곳에 온 지 한 달 안에 알게 되었다
외출은 청바지 티셔츠 한 장 등산복 한두 벌이면 쉽게 해결된다 예의를 차려 만날 사람들도 거의 없으니 집에서는 한없이 편한 원피스 두 장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의 삶에 과연 그렇게 많은 옷이 필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이곳은 조금 넓은 거실 겸 부엌 조금 넓은 방 하나 조금 넓은 앞뒤 베란다 조금 넓은 화장실 꽤 넓고 커다란 텅 빈 다락방이 전부이다 다락방은 아주 넓지만 딱 한번 올라가 봤다 아무 물건도 두지 않았다 이렇게만 해도 사는데 불편함은 없다 물론 일정 기간 살 거라는 생각에 마음을 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넓은 집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왜 넓은 집이 필요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지인 중에서 직은 집을 선호하는 이가 있다 넓은 집이 귀찮다고 했다 치우기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것도 그렇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리고 버려야 할 많은 물건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굳이 이유를 생각하자면 이곳은 창밖이 온통 푸른 녹음이라 굳이 답답함을 못 느낀다는 이유가 클 것 같고 모든 것은 집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집이 커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이해는 간다.
수없이 울리던 전화벨 소리가 이곳에 온 후로는 하루에 한 번도 울리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전화기를 종종 놓고 다녀도 별반 불편함이 없다. 통신요금도 단순화했다 간혹 스팸이나 여론조사 보험 권유 등의 전화는 심심찮게 오기도 한다 수많은 전화번호가 들어있는 내 전화기가 간혹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나 지인 가족들을 제하니 이렇게 조용하다니 참 신기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더니 내 마음도 그들의 마음도 흐르는 물처럼 어느 틈엔가 조용히 정리되어 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