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꽃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 『어서와 봄날』


탱자꽃


4월의 탱자꽃은

제 가시 비켜 하늘 가까이

다가간다


하늘을 보겠다는 욕망 하나로

지나는 바람도 없이

저 혼자

절로 순결한 물이 자꾸 오른다



탱자라는 이름이 참 예쁘다 왠지 꽃 이름에 '자'자가 붙으면 정감이 더한다 '자'가 붙는 나무 이름에는 구기자 호자나무 오미자 치자나무 복분자 감자나무 비자나무 등이 있다 하지만 탱자만큼 이름이 당돌하지는 않다

어느 해인가 아이들이 어릴 때이다 들길을 걸으며 울타리로 쳐진 탱자꽃을 만났다 아토피에 좋다고 하여 탱자수를 만들 마음에 탱자를 찾아 이곳저곳 길을 나섰던 기억이 있다 아토피가 심한 아이를 반드시 고쳐줘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지금은 양산의 물금 신도시가 되어 아파트가 생겨 오래된 집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군데군데 남아있다 그때만 해도 옛집들의 울타리에서 탱자나무를 찾기는 쉬웠다 그곳을 지나다가 담장 역할을 하는 탱자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고 지난해에 생긴 탱자도 간혹 달려 있거나 담장 아래 우스스 떨어져 있곤 했다

그때 처음 본 탱자꽃은 참 예뻤다 어떤 꽃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도 용케 가시를 피해 피는 순결한 색을 지닌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다. 후에 열매가 열었을 때 즈음 다시 찾아가도 탱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열매를 찌르지 않고 용케 키워냈다 탱자의 가시는 꽃이나 탱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자기 방어책이었다


이곳 정동진에도 오가는 길에 할머니 홀로 사는 집 대문이 꼭 닫힌 길가에 하얗고 살짝 도톰한 탱자꽃이 올봄에도 피었다 사거리 조금 지나면 큰길 들머리 첫 집에 시멘트 바닥으로 뿌리를 감춘 탱자나무 한 그루가 잘 자란다 한 때는 울창한 탱자 울타리에 둘러싸였을 성싶은 집의 한 귀퉁이를 자라지도 못하게 위도 옆도 잘린 채 조그맣게 지키고 섰다 아마도 도로를 내어주는 통에 울타리가 잘려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봄에 하얗게 꽃이 피어 오가며 자주 눈길을 보냈다 올해도 거기서 햇빛을 잘 받아 예쁜 꽃도 피고 예쁜 열매도 맺었다 했는데, 어느 틈엔가 진초록 열매를 달았더니 오늘 아침에 보니 황금색으로 바뀌어간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달린 열매 그대로 익어간다

탱자니까 그래 탱자니까 그나마 푸른색이었을 때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귤이나 오렌지 같았으면 손이 타서 벌써 다 사라지고 없을 텐데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 만든 풍경이다 가을이 속살을 드러낸 채 거기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채 익기도 전에 몽땅 사라져 버렸다 주인 할머니는 거의 나타나지 않아 집안의 대봉감이 툭툭 떨어져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을 보면 탱자를 땄을 것 같지는 않다 가시 틈 사이에 잘 자라는 남의 집 탱자를 제 것인 양 하나도 남김없이 다 따가버린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탱자가 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 섭섭하다 볼거리 하나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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