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을 읽으면 늘 마음이 아프다 효성이 지극한 딸의 전형으로 전래되어 효심을 기르는 표본으로 쓰였지만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동화, 우러나는 효가 아니라 강요당하는 효를 주제로 삼은 글을 자녀들에게 읽히고 싶지 않다
옛날 사람들은 과연 심청과 같은 자녀를 진심으로 원했을까 원했다면 그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참 궁금하다 사람의 마음이 층층만층 구만층이니 나와 다르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겠으니 솔직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없지 않다
인당수에 팔려가는 심청의 마음을 어땠을까 딸을 팔아서라도 눈을 뜨고 싶은 아비의 심정은 또 어떤 심정일까 요즘 세상에는 이 내용이 비현실적이라 어떻게 아이들에게 비치고 와닿을까 자꾸만 이런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심청이 답지 않게 살았던 사람들은 불효막심한 자식이 되고 그러한 집단 사회 속에서 살아내기는 쉽지 않았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옛날에 살았다면 나도 심청이 보다는 심청이 스럽지 않게 살아남으려 했을지 모른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밥그릇에 대한 투쟁은 치열하다 그렇다고 우리는 아예 밥 먹기 힘들었던 과거의 가난했던 세상을 각박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먹고 살만하니까 더 가지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고 나누기를 잊으면서 세상은 각박해졌다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고 내 것이 남의 것보다 큰지 작은지에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고 비교를 한다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참 살아가기 힘들다
나보다 나은지 못한 지 끝없이 저울질하고 끝없이 비교하고 삶의 본질이 아니라 물질에 혈안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쩌면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삭막하여 곧 바스러질지는 한치 앞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주머니와 타인의 통장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살아간다
지금 껏 나는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재산이나 잘살고 못사는 것에 무관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철없이 살아왔는지 알 것 같다 눈에 불을 켜고 기회를 잡으려고 하지 않아 주변을 둘러봐도 못 사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물질적 부족에 시달린다 정말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부족하게 살고 있는 걸까
난 어떤 때는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더 가지기 위해서 오직 더 가지기 위해서 머릿속에는 오직 더 가지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면서 허기진 저들의 영혼과 만족을 모르는 욕심은 너무 충만한데 본인이 아니면 그 누가 그 허기를 채울 수 있을까 겁이 난다
노후의 빈곤이 가장 심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1인으로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크게 없는 세상에서 야단 법석을 떨면서 더 가지려고 머리를 굴리고 떼를 쓰고 남의 기회를 빼앗는 그렇게 미래 세대의 밥그릇을 송두리째 빼앗아 내 눈을 밝히는 심봉사처럼 욕심을 내면서 살다가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