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봄봄 봄봄』





까치밥




우주에서도 보일까

까치밥으로 남은 저 주홍빛

초롱 켜는 밤


겨울 밤하늘이 밝다

추억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고

그 집 마당이 보인다

한적한 밤길 따뜻하라고

외딴집 길옆의 초롱감은

앞마당과도 연락이 닿았는지

한 번에 불을 켠다


기억 속에서

초롱초롱 날선 음계들이

길을 재촉하는 밤



까치밥으로 남은 감에 대한 몇 가지 기억들이다

거제도에 사는 이모네 간 적이 있다 그때도 아마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감나무가 마당에 여러 그루 있었고 작은 감들이 익은 그대로 달려 있었다 감나무가 높아서인지 아무도 감을 따지 않았다 한밤중인데 유난히 달이 밝아 감나무의 주홍빛이 더 반짝거렸다 정말 예뻤다

오래전에 경주의 어느 식당에 갔었다 식당 옆 감나무는 잎을 다 떨군 채 감만 조롱조롱 달고 있었다 아마도 따뜻한 곳이라 가능했나 보다 까치밥으로 남겨둔 초롱감이 마치 불을 켜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인에게 물었다 왜 감을 다 따지 않냐고. 주인은 까치랑 나눠먹으려고 남겨뒀다고 말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어디서 왔는지 해거름이 되니 까치가 하나둘 모여들어 감나무에서 감을 먹었다 정말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을 까치가 파먹었다

어릴 적 커다란 정원에 있는 집에 살았다 아버지께서는 집에서 키운 대부분의 나무 열매를 다 따지 않고 항상 식구 수만큼은 늘 남겨두셨다 특히 감나무의 감은 까치에게 남겨두는 밥이라 절대로 다 따지 않으셨다 언제나 식구수보다 훨씬 많이 일곱여덟개는 항상 남겨 두셨다 그래야 배고픈 새들이 먹는다면서 뭐든 나눠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어릴 적에는 감나무의 감을 까치가 먹는 것을 본 적이 없고 감들이 다 익어 떨어지는 것을 봐 와서 그냥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인줄 알았다

강원도는 대체로 대봉감이 열린다 달려 있을 여가가 없이 사람들이 다 가 따버린다 새들이 와서는 다 쪼아 먹는 경우는 주인이 없는 감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주인이 관리하는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감을 두는 경우는 본적이 없다 새에게 돌아갈 여분의 감은 없다 겨울이 되기도 전에 감나무는 발갛게 익은 감을 모두 사람들에게 주고 잎마저 떠나보내고 추위에 오돌오돌 떨고 있다 이런 감나무를 보고 추억을 생각할 겨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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