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무늬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어서와 봄날』


물방울무늬


사는 일은

연잎 위의 물방울 같아서

언제 어디서 반짝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살다 보면

더 부풀거나 커지거나

생각나거나 생각 말거나

새기거나 튀어 오르거나

사라지거나

하지만 누구의 생도 연잎 위를 구르는

작은 물방울이어서

그 한 방울의 물이 온 생이라 것도

마침내 굳어가는 둥근 마침표라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연꽃이 필 무렵이면 언제나 연꽃 놀이를 간다 연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별히 없다 연꽃을 좋아한다고 하자 그림 그리는 한 친구는 대뜸 꽃대가 큰 꽃은 가분수 같아서 싫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저라고 그리 생기고 싶었을까 연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가분수는 아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내 전생의 꽃이 연이요 난이라는 것이 이런 감정으로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꽃을 키워봤지만 여태껏 나는 난꽃이나 연꽃을 키운 적은 한번도 없다 나는 나 자신을 키우느라 매우 바빴기 때문일까 요즘은 나는 마당 넓은 집에서 한가로이 난이나 연을 키우는 꿈을 꾼다

7-월경 진흙을 뚫고 긴 꽃대를 인내처럼 올리고 피어나는 꽃, 흙탕물을 정화하는 연꽃의 생을 안다면 마음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내 전생에 인연이 있는 꽃들 중 하나인 것처럼 연꽃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

이곳에 와서도 연꽃밭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하시동 3리 풍호마을 이미 꽃들은 반쯤 졌다 대신 연씨를 품은 연들이 더 곧게 서 있다. 대도시와는 달리 관객도 많지 않다

연잎 위를 구르는 물방울은 연잎 위에 모였다가 연잎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그 물방울들은 땅 위에 떨어지고 사라진다 뒤끝없이 흔적없이 깔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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