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은퇴를 꿈꾸는 중소기업 인간의 생존일지

1화 - 검증 안된 인간들의 집합소에서 살아남기

by JJ

지방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이게 회사인지, 무슨 인간실험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도 그 안에 들어 있으니 남 얘기하듯 말할 순 없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여긴 진짜 '검증 안 된 인간들의 집합소'다.

채용공고를 올려도 지원자가 없다.
그러다 누가 그냥 오기라도 하면 HR팀은 거의 절 받듯 “감사합니다” 하고 모셔온다.
그게 능력이 있든 없든, 경력이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사람이면 뽑고 본다.

다양한 인간 유형들

1. 여자 밝히는 40대 늙다리 유부남

40대 중반. 유부남. 자칭 딸바보
하지만 대화 주제의 80%는 여성 관련.
회사카드로 룸살롱 가는 건 기본이고, 회사에서는 여자 직원 이름 부르며
“오늘따라 좀 꾸몄네?” , "요즘 살찐 것 같은데 관리 안 해?" 같은 멘트를 거리낌 없이 날린다.

회식 자리에서 마지막 순서는 꼭 노래방이고,
술만 들어가면 자꾸 여자직원 허리를 감싸려고 한다.

2. 1시간씩 늦는 막내

출근시간 9시. 이 친구의 출근시간은 항상 9시 57분.
하지만 지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왜냐고?
"지각 안 찍히게 조심히 와요"가 우리 회사의 슬로건이기 때문이다.

변명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버스 놓쳤어요."
"택시가 안 잡혀요."
"몸이 좀 안 좋아서요."

3. 담배 피우고 욕하는 이사
인사팀 공포의 대상.
담배를 하루 2갑 피고, 욕은 마치 마침표처럼 붙인다.

“이거 왜 이따위로 했냐, 씨 X.”
“그 XX 말 들으면 회사 망해.”
“아 XX 담배 피우고 오자.” (회의 중단 선언)


중간에 의견을 내면 대화가 이렇게 흘러간다.
“그건 아니지, 어? 너 일몇 년 했냐?”
(그게 틀렸다는 말인지, 그냥 화난 건지 모름)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표는 이 사람 말을 젤 잘 듣는다.
네, 이게 우리 회사의 의사결정 시스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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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과 하루 9시간, 일주일에 5일, 한 달에 20일을 함께하는 나는
진심으로 조기은퇴를 꿈꿀 수밖에 없다.
이 회사는 내게 월급을 주지만, 동시에 정신력도 깎아먹는다.

그들을 보며 한숨 쉬다가도,
“나도 이 회사에서 10년쯤 있으면 진상 유형 중 하나가 되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거울을 보면, 나도 그들과 비슷해질까 두려움이 올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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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바깥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여기 안은 여전히 90년대 말.
이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조기은퇴만이 유일한 출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길도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여긴 인생의 정답은 없고,
그냥 각자 ‘버티는 방식’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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