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자에 대한 편견은 아마도 힘든 시절 우리네 엄마의 삶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편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편견은 속해있는 문화와 환경과 배경에서 비롯되는 한쪽으로 치우친 고정관념으로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제주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타지 출신인 나도 제주여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나는 이곳 제주지역사람들이 말하는 '육지 것'이다. 2010년 잠시 머물다 떠날 것을 계획하고 제주에 왔다가 여러 이유로 지금껏 머무르며 생활하고 있다. 직업상 여자들로 이루어진 팀에서 근무하다 보니 토박이들과도 어울려 일을 하게 된다. 지금은 나이가 어느 정도 되고 경험도 있다 보니 나름 정착을 한 상태이지만 첫 일 년의 적응은 만만치 않았다.
"제주도"하면 저 마다 떠오르는 것이 다르겠지만, 아마 내 또래들은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으로 시작하는 노래와 함께 가수 혜은이를 떠올릴 듯하다. 그 시절, 그 노래는 혜은이의 정체성과 제주에 대한 환상을 심어놓기에 충분했다. 그 영향이었을까? 젊은이들의 신혼여행지가 경주에서 제주로 바뀌게 되었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제주로 신혼여행을 다녀와 돌하르방 한쌍씩 신혼집에 장식해 두고 있었다.
격동의 시대인 1990년대가 끝나갈 무렵, 여행자유화가 시작되면서 젊은이들은 신혼여행을 위해 여권을 발급받고 해외로 향하기 시작했다. 많은 커플들이 호주에서 캥거루를 보고 필리핀의 휴양지와 인도네시아의 해변에서 신혼여행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꾸민 신혼집에는 여행지에서 사 온 기념품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1980년대의 신혼여행지와 1990년대의 신혼여행지가 달라졌다.
제주에서 육지로 유학(?) 온 친구들에게 제주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극심한 생활고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제주에서도 나름 '있는 집 아이'였던 그들은 육지에 정착하고 싶어 했다. 육지에서 공부 마치고, 육지에서 직장을 구해 육지 사람과 결혼하여 육지에서 살기를 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떠나 육지로 향하던 시절에 제주에는 관광객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제주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1990년대 중반, 나는 국적이 다른 친구 둘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왔었다. 친구는 여행가이드북이 추천하는 한국에서 가볼 만한 곳에 제주도가 있다며 가고 싶어 했다. 그렇게 세명의 제주도 여행에서 내가 제일 외국인 같아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까무잡잡한 피부톤에 곱슬거리는 파마머리, 오똑한 콧날을 가진 내 외모에 호텔 프론터맨의 '한국말을 제일 잘하십니다.'라는 말에 우린 많이도 웃었다. 그 시절의 제주는 관광업이 대세가 되었다.
제주는 나에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지나가는 도시가 될 뻔했었다. 다른 곳으로의 이주를 위해 잠깐 다녀가는 정도로 머물기 위해 건너온 제주에서 15년가량을 살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제주 사람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대학원 논문 준비를 위해 제주의 풍습과 지리를 공부하면서 제주 사람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던 것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첫 일 년의 직장생활은 열등감과 우울을 안겨주었다. 타지인이기에 배척당하는 느낌과 육지로 떠난 엄마와 동일시하여 투사하는 젊은 동료의 등살에 결국 다른 직장으로 옮겨 적응해야 했던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당시 나에게 그렇게 투사하던 그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수만큼 많은 인생이 존재한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듯 각자가 하나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 한 어머니에서 태어나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자매도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어느 것이 옳은 인생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세계관이 다른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 사회이듯이 제주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인생이 특별하지도 않고, 육지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제주사람이 아니지 않다. 나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부산에서 보냈다. 내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제주에서 보냈다. 그래서 나의 고향은 부산이지만 아이들의 고향은 제주시이다.
각자의 인생이 다르듯이 어느 환경에서 살아왔느냐에 따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역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그 지역적 편견을 가진 사람중의 하나이다. 흔히 말하는 '강원도 사람은 어떻고, 충청도 사람은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로 시작하는 편견이 여기에 포함된다.
제주여자에 대한 편견은 아마도 힘든 시절 우리네 엄마의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제주에 와서 부산여자들의 편견을 마주하였다. 제주여자보다 억센 부산, 특히 영도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전쟁이 끝난 부산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척스럽게 일해야 했던 부산여자들과 척박한 제주의 자연환경 속에서 4.3이라는 전쟁을 치르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던 제주여자들의 일생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우리나라 여자들이 삶을 지탱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했던 무던한 노력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스럽기를 원하는 남성들에 의해 씌워진 프레임이 '억센여자'라고 생각을 한다. 생활력이라고는 쥐뿔도 없이 양반이라는 신분속에 숨어 차려주는 밥상에 불만을 토하던 아버지들이 억센여자, 여성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할머니도 여자입니다."라는 말이 있다. 나이 불문하고 여자는 여성성을 가진다. 생활력과 상관없이 여자는 여성성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처한 환경이 여성성보다는 모성이 중요해지면, 여자는 여성성을 버리고 자식을 위한 모성을 발휘하게 된다. 우리가 가진 제주여자에 대한 편견은 이런 여성에 대한 편견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성이 높으면 생활력이 높아지고 자식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성을 표현하는 방법은 개개인이 가진 성격과 직결된다. 그런 억척스러운 성격을 끌어내어 유지하는 모성의 한 표현으로 억센여자, 제주여자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나는 지지 정당에 대한 지역적인 특색이 있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 중 하나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DK-PK는 붉은색 정당'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개표방송을 지켜보았다. 개표가 진행될수록 나의 편견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도 내가 가진 편견을 깨지 못하는 걸까?
나는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일명 PK출신이다. 그러나 나는 파란색에 가깝다. 자칭 중도진보이다. 진보라 하기에는 약간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산-경남이라는 지역을 좋아한다. 내 추억과 내 삶의 30년이 있는 곳이라 무시할 수 없는 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에서 생활하며 지내기 불편하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독특한 아이'로 분류되어야 했던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인지 부산이 가지고 있는 환경적이고 지역적인 부분은 좋아하지만 부산 출신의 사람들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다. 어쩌면 제주사람들도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라는 지역을 고향으로 좋아하지만, 제주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생활이 다르듯 각자의 인생도 다르다. 인생에는 해답이 없다. 각자가 살아온 인생이 각자가 가지는 해답이 될 것이다. 나의 삶이 나의 인생이듯이, 나의 인생이 나의 삶의 해답일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만의 삶과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에 무슨 답이 필요할 것인가. 인생에는 꼭 답이 있어야 할까? 그 답을 꼭 알아야만 할까? 사는 게, 살아가는 게 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 2025년 대통령선거는 나의 편견과 인생의 해답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작년,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에 찾아온 새로운 인물에 대해서는 편견 없이 바라보게 되길 기대해 본다. 그런데 해답이 없는 인생에서 꼭 답을 알아야만 할까?
대문사진) 작가가 playgraound에서 만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