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고향처럼
삶, 죽음
인간으로서의 삶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조각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면 각기 다른 모습이 드러나듯, 우리의 삶도 어떤 면에서는 희극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비극이다. 그렇다면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우리의 삶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어떤 이들은 죽음을 인간 모두에게 내려진 저주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을,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좋다. 어떤 종교든,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 아래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떠나면 된다.
그러나 만약 죽음 이후, 신이란 존재가 인간의 두려움과 바람 속에서 만들어낸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 순간, 인간이 살아온 삶의 신념이 한순간에 깨진다면, 우리는 과연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소멸하게 될까?
나 또한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니며 신을 믿었지만,
죽음을 자각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가까웠던 친구가 생을 마감하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죽음’이 멀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가끔 죽음을 떠올리면, 내 존재가 사라진다는 두려움이 밀려오고, 그 뒤로는 생각 자체가 멈춰버린다. 이는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써, 삶이라는 선물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소멸을 거부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재가 소멸한다는 생각을 깊게 이어가다 보면,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내 존재 깊숙이 깃든다. 그 공포는 인간 사회가 쌓아 올린 모든 문명, 사회인으로서 우리가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마저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이미 그 공포를 느꼈고, 지금도 가끔씩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 순간 관점이 달라지고
죽음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無)
먼저,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기 이전, 어떤 상태에 있었을까? 말 그대로 ‘무(無)’,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
그러나 우리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서, 삶이라는 자유를 얻었고, 그로 인해 인간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여러 문화적, 종교적 해석을 배제하고 바라본다면, 죽음은 결국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무(無)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태어나기 이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기억조차 없는 상태를, 우리는 무(無)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은 다시 그 무(無)로 돌아가는 길이다.
나는 이 무(無)라는 상태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으로서 태어나기 전, 우리는 정말 아무런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인간으로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 상태를, 그저 아무것도 없는 상태, 즉 ’ 무(無)’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 이후, 다시 그 무(無)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죽음을 내 고향처럼
우리는 무(無)라는 거대한 절대적 존재의 파편이며, 그 존재는 우리에게 자유를 만끽하라고 삶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허락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얻은 감정일 뿐, 결국 우리는 ’ 무(無)’라는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우리는 이 인간 세계에서 자유를 충분히 누린 뒤, 다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죽음을, 나의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