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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인 작가 Aug 12. 2024

명품백 아니여도 괜찮아

물건을 비우고 마음을 채운다

남자에게 자동차가 자신의 자존심과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거라면 

여자에게 가방이란 그런 존재이다. 

강남역에 가보면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샤넬 가방을 하나씩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벌어서 명품 백을 산 건지

금수저로 태어나 어렵지 않게 메고 다니는 건지 알 수는 없다. 

인스타에는 자신의 명품 백을 하나의 배경 사진처럼 은근히 자랑하는 것은 

이제는 놀랍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여자에게 명품 가방은 남들 앞에서 과시하고 우쭐하고 싶은 

어느 정도 허영심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허영심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명품을 사고 싶어 하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욕구이다. 


하지만 나이가 먹으니 이제 마음의 변화가 찾아온다. 

무거운 명품 백은 외출할 때 어깨 결림과 허리 통증을 유발하고 

지하철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섞여 내 가방에 스크래치라도 날까 봐 신경이 예민해지며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서로 메고 온 가방을 빠르게 스캔하며 평가하는 그런 기싸움에

기가 빨려 점점 명품 백은 내 몸과 마음에서 멀어진다.

너무 무거워 더 이상 메지 않는 명품 가방은 얼마 전 지인에게 무료로 드림했다. 


요즘은 명품 가방 대신 에코백을 멘다.

에코백은 가죽 가방보다 훨씬 가볍고 다양한 기능에 활용도가 높다. 

장을 보러 가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릴 때, 운동하러 갈 때,

여행 갈 때, 수영장 갈 때, 편한 곳 외출할 때, 

정말 휫두루맛두루 아무 데나 메고 나가기 편하다.

예전엔 가방 하나에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였지만

나이가 먹으니 어떤 가방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예전에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나의 수고로움에 대한 보답으로

고민 없이 물건을 사곤 했다. 주로 그 물건은 옷이었다. 

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학부모 상대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나는 화장과 액세서리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했다. 

매일 화장을 하고 세미 정장 옷을 착장하고 나갈 때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부케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일을 쉬고 있는 지금은 화장을 해야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너무 강한 색조 화장품이나 이제는 바르면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 붉은 립스틱은 정리했다 

밖에 나갈 때는 자외선 차단제나 가볍게 커버 팩트만 바르고 나간다. 


조용한 집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려고 앉아 있으면 

집안 곳곳 숨어있는 공간들은 쉴 틈 없이 빼곡하게 물건들로 채워져 있어

그 물건들로 내가 질식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그 물건들은 나에게 숨 좀 쉬게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거 같다.

고민 끝에 물건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기로 했다. 


우선 빼곡하게 채워있는 옷장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채우고자 세탁소에서 받은 옷걸이로 

빈틈없이 공간이 메꾸어져 있는 나의 옷장을 보면 숨이 막힌다. 

매해 내년에는 입을 일이 있을 거라며 버리지 못하고 옷장을 차지했던 옷들은

올해도 내 손길 한번 닿지 못하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제는 촌스러운 디자인과 빛바랜 색으로 입기 어려운 옷들도 

나의 젊은 날 추억이 깃든 옷이어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옷들도 

다이어트하면 입을 거라며 고이 모셔 놓았던 작은 사이즈 옷들도 

모조리 다 버렸다. 

낡아진 속옷과 짝을 잃은 양말, 스타킹도 같이 정리했다. 


가장 정리가 어려운 것은 단연 책이었다. 

책만큼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단을 내려야 했다. 

책장은 진작에 책을 수용할 수 없게 된 상태였고

갈 곳을 잃은 책들은 바닥에 켜켜이 먼지와 함께 쌓여 있어야 했다. 

우선 여러 번 읽어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책, 첫 장만 읽고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는 책

진부한 스토리로 더 이상 감흥이 없는 책등은 알라딘 중고책에 팔거나 가까운 지인에게

무료 드림을 했다. 


내가 죽을 때 남겨진 책을 보며 나의 딸들이 나를 추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의 인생 책들 몇 권은 소장하기로 했다. 

서울에 살다 보니 책을 보관하는 공간에 대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읽고 싶은 새로운 책이 생기면 보관 가치가 있는지 면밀히 따져본 후

구매를 했고 아닐 경우 전자책으로 읽고 중요한 부분은 노트에 필사를 했다.     

    


"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 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 법정 스님 '무소유'-         

 


젊었을 때는 뭘 더 가질 수 있을까?

뭘 더 채울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다. 

남들과 비교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연연하며 그것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살았다. 

이제는 뭘 덜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너무 많은 물건들이 이제는 나에게는 버거운 짐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비워내면 내 마음이 맑아지고 비로소 꾸밈없는 날것의 나 인체로 살아갈 수 있으며 

비워낸 공간만큼 내 마음이 그곳을 채워간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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