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갔던 사람의 속도

이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by Jin

처음에는 기뻤다. 누구보다 빨랐고, 노력의 결과가 눈앞에 보였으며,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승진이라는 제도를 통해 동료들보다 한 계단 먼저 올라섰다는 사실은 분명 성취였다.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이었고, 그것은 정당한 결과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쁨은 조용히 다른 감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시선, 말로 드러나지 않는 거리감, 그리고 주변에서 하나둘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올라오는 알 수 없는 불안.

‘내가 이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하나?’ ‘혹시라도 뒤처지면 더 초라해지는 건 아닐까?’

앞서 나갔다는 사실은 언제부터인가 축복이 아니라 부담이 되었다.


이 불안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교 속에서 나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조직은 언제나 순위를 만든다. 계급과 연차, 시험과 평정은 사람을 줄 세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줄의 앞이 아니다. 문제는, 그 줄이 내 삶의 기준이 되어버릴 때다.

앞서 있는 사람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선다. 더 빨리 달리며 계속 증명하려 하거나, 아니면 잠시 숨을 고르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동료들의 질문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된다.

“이번에 또 승진 준비해야지?” “승진 준비 하고 있어?”

이 말들은 단순한 안부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각자의 불안과 비교가 섞여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성실히 답하려 할수록, 마음은 더 많이 닳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정답 같은 대답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거리'다.

“아직은 맡은 일부터 하려고요.” “지금은 제 페이스 좀 보려고요.” “상황 보면서 생각 중이에요.”

이 말들은 회피가 아니다. 나의 속도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모든 동료들과 같은 밀도로 지낼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편안하고, 누군가는 불편하다. 누군가는 나를 사람으로 보지만, 누군가는 계급으로 본다.

거리 두기는 무례가 아니다. 자기 보호다.

친절은 유지하되, 모든 생각을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 잘 지내되,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관계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증명 욕구’다.

더 잘해야 인정받을 것 같고, 실수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고, 그래서 스스로를 끝없이 채찍질하게 된다.

그러나 동료들에게 인정받아서 편해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반대로, 스스로를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바로 가벼워진다.

“나는 이미 한 번 내 능력을 증명했다.” “모든 레이스를 이길 필요는 없다.” “지금의 나는 충분히 잘 가고 있다.”

이 문장들은 남을 설득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흔들릴 때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다.


앞서 가는 사람은 외롭다. 그 외로움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전 통과의례다.

이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누가 더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느냐다.

편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은 도망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기준으로 살고 싶다는 용기다.

앞서 가되, 쫓기지 않는 사람. 성취하되,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 사람.

그것이 내가 앞으로 가야 할 다음 계단이다.

그리고 그 속도는, 내가 정해도 충분하다.


이 글은 시간이 지나도 흔들릴 때마다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

2025. 12. 17.(수) -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