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공포증이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릴 때면 통화버튼을 누르기까지 몇 초가 필요했다.
그날도 벨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퇴사한 CS담당자의 전화기가 내 책상 위로 옮겨져 온 것은 전 날이었다.
만질 일도 없었던 유선전화가,
하루아침에 내 책상 왼쪽에 자리 잡았다.
입사 6개월 차, 나는 디자이너였다.
전화기의 위치가 바뀌는 순간
고객센터의 공백을 내가 메우게 되었다는 사실이 조용히 이해됐다.
나는 전화공포증이 있다.
벨소리가 울리면 심장의 두근거림이 먼저 들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작은 회사에서는 선택지가 없었다.
누구라도 그 공백을 맡아야 했고, 그게 나였다.
당시 회사는 '원룸 입주청소'가 주력이었다.
입주를 하루 앞둔 고객들의 전화는 급했고, 불안했고, 때로는 날카로웠다.
'지금 어디세요?'
'왜 아직도 안 오시나요?'
'벽지 얼룩은 왜 그대로인가요?'
전화 한 통이 나의 하루를 흔드는 일은 빈번했다.
두려움은 전화 때문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더 커졌다.
작업 동선, 예상 시간, 자주 나오는 민원 등
그 모든 것이 머릿속에 없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매 순간이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잘 받기'보다
'모르는 걸 줄이는 방법'을 먼저 찾기로 했다.
퇴사자가 남긴 매뉴얼이나 스크립트 같은 건 없었다.
그날부터 일주일 정도,
모든 통화 녹음을 다시 들으며 그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질문을 적고, 반복되는 문장을 묶고,
답하지 못한 부분은 퇴근 시간을 넘기며 직접 찾아 적었다.
시트의 스크롤이 길어지면서
나는 그것을 회사 최초의 CS 스크립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나 새로 들어온 CS 팀원에게 스크립트를 건네자,
"이 스크립트 덕분에 수월하게 익혔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내 두려움을 줄이려고 만든 작은 시스템이
누군가의 불안도 덜어주었다.
작은 회사의 구조는 거창한 시스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어떤 한 사람의 불안, 결핍,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여전히 전화공포증이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 있다.
작은 회사의 구조는,
버티기 위해 적어둔 한 줄의 기록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 기록이 쌓이면 누군가에게는 매뉴얼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구조가
사람을 지키고, 회사를 지탱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