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가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는 용기
나를 세상 밖으로 다시 드러내기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예전에는 "저 어디 다녀요"라는 이 한마디면 모든 설명이 끝났다. 소속이 곧 나를 증명하던 시절, 나는 그 울타리 안에서 편안했고 안전했다. 하지만 그 울타리를 벗어난 후, 나는 매번 내가 누구인지 구구절절 설명해야만 했다. 그마저도 버거운 날에는 그저 "애 키워요"라며 서둘러 말을 끝맺기도 했다.
나를 드러내는 데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내 '용기'의 첫걸음은 브런치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여태 엄마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글자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을 쓸수록 나는 조금씩 대범해졌고,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마음의 상처들도 하나둘 꺼내어 마주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내 명함을 새로 파기로 했다.
가장 먼저 LinkedIn(링크드인)에 흩어져 있던 나의 경력을 다시 정리했다. 멈춰있던 프로필의 상태를 'Open to Work'로 새로고침했다. 단순히 과거를 복구한다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한 줄씩 채워나가기 위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Substack(서브스택)에 내 이름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나만의 관점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온라인 플랫폼에 '한국어 튜터'로 등록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와 즐거움의 크기,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도전할 만한 것인지 직접 부딪쳐 보기로 했다.
동시에 배움의 시간을 갖는다. 비어있는 칸이 더 많은 이력서이기에, 그 공란을 채우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쓴다. 이미 AI 입문 인증(Certificate) 하나를 완료했다. 교육비가 부담되는 시기인 만큼 무료 강의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새로운 배움이 절실한 경단녀에게 '경기도 지식(G-SEEK)'은 꽤 유용한 선택지다.
여기에 내 경력단절 기간의 절반을 차지했던 독일 생활을 돌아보며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다. 이방인으로 살며 단단해진 시간은 이미 내 마음속에 선명한 주제로 자리 잡았다.
남편은 머지않아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며, 일터에서의 생명 연장을 위한 공부를 한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도, 누군가에게 나를 과시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이 세상에서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 오더라도, 결코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다. 사실, 난 이미 몇 번은 코를 베었을 것이다. 그저 '내 자리'에서 '나'로 있고 싶어서다.
그 건강한 절박함이 오늘도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내 명함에 나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하지만 이 고민이야말로 내가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가장 뜨거운 선언이자 응원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