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한 선각자
2021년 11월 29일 오전 3시 30분경을 기억한다. 시대를 풍미한 패션 디자이너자 기업가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그는 향년 41세로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나도 젊은 피였으며, 사망에는 어떤 전조도 없었던 터라 모두가 충격에 빠졌고 모두가 애도했다.
'그'의 이름은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디자이너, 건축가, 브랜드의 디렉터, CEO, 스트리트와 럭셔리의 벽을 깨부수고 아름다운 영혼과 지혜를 통해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와 팬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선물한 선각자다. 버질 아블로는 단순 패션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자신의 영향력을 펼쳤고, '기존의 것'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였다.
왜 그가 특별했고, 왜 세상이 그에게 열광하였으며, 우리는 왜 그를 기억할까. 시카고 태생의 소년이 루이 비통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기까지. 버질 아블로가 걸어온 길을 다시금 돌아본다.
1980년 가나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시카고 교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버질 아블로(아버지는 페인트 회사를 운영하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그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학업에 열중하였으며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건축을 공부, 2002년 위스콘신 대학에서 토목공학 학사 과정을 마치고 2006년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전공이 패션은 아니지만, 어릴 적에는 어머니로부터 재봉을 배웠고, 일리노이 공과대학 시절에는 유명 블로그인 <The Brilliance>에서 패션과 디자인 주제의 글을 작성했다고.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 있던 패션이 결정적 한방을 통해 그의 인생 가운데에 자리하게 된다. 바로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를 접하게 된 것. 렘 콜하스는 2003년 9월 미국 내 자신의 첫 건물을 일리노이 공과대학에 세우는데, 당시 그를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한 버질은 2001년 프라다와 렘 콜하스가 협업해 선보인 '프라다 에피센터 뉴욕' 매장에 한 눈에 반한다. 버질에게 있어 이는 패션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기틀이 되었고, 그 기점으로 버질의 패션 사랑이 펼쳐진다.
칸예 웨스트는 학업에서 갓 벗어난 버질 아블로가 커리어를 시작하는 과정에 도움을 준 주요 인물 중 하나다. 버질이 시카고의 한 인쇄소에서 도안을 가지고 티셔츠를 제작하던 중 칸예 웨스트와 조우한 것은 유명한 일화. 소문에 의하면 버질은 위스콘신 대학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칸예의 매니저 존 모노폴리와 미팅을 가진다. 그렇게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칸예와 함께 걷기 시작한다.
2009년 버질 아블로와 칸예 웨스트는 나란히 럭셔리 패션 하우스 '펜디'에서 인턴십을 갖는다. (비록 입사 과정이 남들과 같았을 지는 의문이지만)둘은 실제 펜디 인턴과 동등한 대우 아래 일을 했는데, 월 500 달러(한화 약 60만 원)를 받고 상사에게 커피를 배달하며 럭셔리 패션 시장에서 실무 스킬을 익혀 나갔다. 당시 펜디의 CEO였던 마이클 버크가 "버질과 칸예가 스튜디오에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다 주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라고 전했을 만큼 이들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던 바. 참고로 마이클 버크는 2012년부터 루이 비통의 CEO로 재직, 향후 버질 아블로를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앉히는데 큰 역할을 한다.
같은 해, 돈 C(칸예 웨스트의 매니저이자 시카고의 스트리트웨어 디자이너)와 함께 미국 시카고에 패션 부티크를 오픈하기도 한다. <RSVP Gallery>라 명명된 매장은 버질의 스타일을 전체적인 인테리어에 반영해 큰 주목을 모았으며 샤넬과 꼼 데 가르송부터 타카시 무라카미와 카우스까지, 여러 형태의 문화를 섞어내 당세 최고 하입을 자랑했다. 예컨대 여기서 '파이렉스 비전'이 첫 번째 컬렉션을 단독으로 선보였고, 제리 로렌조는 '피어 오브 갓'의 50장 한정 티셔츠를 출시한 바. 이상의 긴 말 생략하고, <RSVP Gallery>는 소위 '좀 치는' 이들의 멋있는 공간으로 명성을 날렸다.
위 두 커다란 이야기는 칸예-버질 인연의 자그마한 부분에 불과, 2010년 버질은 칸예가 운영하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DOND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용되기에 이른다. 학창 시절부터 디제잉을 즐겼던 덕에 음악 자체에도 일가견 있었던 그는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나아가 2011년에는 칸예 웨스트와 제이 지의 전설적인 합작 앨범 <Watch the Throne>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약(그래미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는 더 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빈트릴(2010)
버질 아블로는 <DOND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자리하는 동시에 매튜 윌리엄스, 헤론 프레스턴, 저스틴 손더스 등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친구들과 한 팀을 이루고 꽤나 재밌는 패션 브랜드 사업 빈트릴(BEENTRILL)을 전개한다. 빈트릴은 과감한 그래픽과 로고 플레이로 무장하고 스트리트웨어 신에 파격적인 반향을 일으키게 되는데, 후디와 티셔츠 등이 높은 가격(품질에 비해)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으며, 그 인기는 2010년 브랜드 론칭 후 한 동안 꾸준히 지속됐다.
빈트릴의 빠른 성공에 있어 가장 큰 요인으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꼽힌다. 칸예 웨스트, 드레이크, 리한나, ASAP 라키 등 유명 인사들이 너나 할 거 없이 빈트릴 아이템을 착용하고 등장한 바. 무엇보다 당시 '인스타그램'이 새로운 SNS로 부상하고 있었고, 이에 발맞춰 등장한 시의적절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브랜드가 뚜렷한 아이덴티티 없이 단기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다.
다만, 행복한 시간은 잠깐에 불과했다. 과도한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의존도 높았던 로고 플레이의 부작용이 금새 찾아온 것이다. 휘황찬란한 그래픽과 멋들어진 셀러브리티들의 착장이 어느새 지루해졌고,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 빈트릴은 그렇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진다.
파이렉스 비전(2012)
빈트릴이 한창 흥행 가운데 있던 2012년, 버질 아블로는 자신의 첫 번째 단독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을 선보인다.
파이렉스 비전은 처음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원단을 선택해 패턴을 짜고 디자인을 더하는 대신, 40 달러짜리 폴로 랄프 로렌과 챔피온 데드 스탁에 커다란 PYREX 23 브랜딩을 프린팅하고 550 달러에 판매하는 방식이 전부였기 때문. 참고로 여기서 'PYREX'는 마약 제조에 흔히 사용되던 글라스 브랜드를, '23'은 마이클 조던의 백 넘버를 표현한 것이다.
버질은 파이렉스 비전에 대해 "단지 젊음을 자극하고 지향하는 브랜드를 시작하고 싶을 뿐"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고스란히 반영되어 매일같이 새롭고 신선한 무엇인가를 찾는 '하입비스트'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분명 버질의 방식에 의문을 품고 '디자인이 아닌 사기'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상상도 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행보에 시장의 반응은 너무나도 뜨거웠고 제품은 출시 때마다 완판을 기록했다.
위 내용을 종합해 조금 더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면 파이렉스 비전은 브랜드보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팬들이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 곳곳에서 터져 나온 비평가들의 격분을 마케팅으로 소화하고 데드 스탁 아이템을 14배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결과적으로 버질의 방식은 단 1년 만에 '대성공'으로 이어졌고, 파이렉스 비전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2013년을 끝으로 역사 속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오프 화이트(2013)
도약의 결과물이 2013년 밀라노를 거점으로 론칭한 오프 화이트(Off-White). 빈트릴, 파이렉스 비전에서 보여준 티셔츠 팔이를 넘어 마침내 시즌마다 컬렉션을 발표하는 하이 패션 신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다.
버질 아블로는 오프 화이트를 배경으로 곧잘 스트리트와 하이 패션을 연결해나간다. 건축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을 적극 차용한 화살표 로고 및 사선 형태의 블랙&화이트 스트라이프 패턴을 초기 브랜드의 키 디자인으로 삼고, 코트와 블레이저부터 후디와 쇼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아이템 속에 주입해 넣었다. 특유의 오버사이징 실루엣에 다채로운 소재와 그래픽 등이 가미되어 탄생한 매 시즌 컬렉션은 어느 한 카테고리에 묶여있기보다 '오프 화이트' 그 자체로 정의되었고, 런웨이 무대를 넘어 실제 우리의 일상복으로도 함께하게 된다.
오프 화이트를 논하는데 '협업'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가장 대표적으로 2017년부터 지금까지 함께하는 나이키가 있는데, 볼드한 헬베티카 레터링 및 레드 케이블 타이 등 기존 오프 화이트의 시그니처 디자인 미학으로 변주된 에어 조던 1과 에어 포스 따위를 통해 전 세계 스니커헤드를 열광케 하고 스니커 신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 밖에도 버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몽클레르, 크롬하츠, 챔피온, 스투시, 지미 추, 반스를 비롯해 리모와, 이케아, 도버 스트리트 마켓, 바이레도, 에비앙, 모엣 샹동 등 문화 전반의 브랜드들과 함께하며 'OFF-WHITE' 인지도와 그 인기의 정점을 찍는다.
자크뮈스, 베트멍, 코페르니와 함께 2015 LVMH 프라이즈 결승에 진출한 오프 화이트는 2021년에 이르러서 LVMH에 지분 60%를 내어준다. 오프 화이트는 그 사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이 패션 시장에서 스트리트 웨어의 미학을 아낌없이 뽐내온 바. 셰인 올리버의 HBA, 즈바살리아 형제의 베트멍을 제치고 여전히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오프 화이트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루이 비통(2018)
2018년 3월의 어느 날, 버질 아블로는 인생 최고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바로 루이 비통 남성복 부문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이 놀라운 소식은 루이 비통이 킴 존스와 함께 맛을 본 '스트리트웨어'를 진정 꽃피우고자 함을 시사하였고, 자연스레 패션 신 안팎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킴 존스는 '루이 비통 x 슈프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며, 버질 아블로는 '루이 비통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하이 패션을 넘어 럭셔리가 스트리트웨어를 받아들였다. 그것도 가장 아이코닉한 브랜드 중 하나로 손 꼽히는 루이 비통이. 사실 버질 아블로의 럭셔리 시장 진출은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기도 하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셰인 올리버와 즈바살리아 형제의 뎀나가 각각 헬무트 랑과 발렌시아가의 수장으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질의 전공이 패션이 아닌 건축이라는 점은 리스크 중 하나였고, 많은 이들이 기대와 함께 '과연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 루이 비통을 이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해 6월 버질 아블로의 데뷔작, 2019 봄-여름 맨즈 컬렉션이 파리 팔레 루아얄 정원에서 펼쳐졌다. 군더더기란 찾아볼 수 없는 화이트로 시작해 화려한 그래픽을 거쳐 강렬한 레드와 블루 등의 다채로운 컬러로 구성된 컬렉션은 그 즉시 떠돌던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버질 아블로의 스트리트 미학으로 해석된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베이직한 후디와 트라우저 등에 접목되고, 구조화되지 않은 블레이저와 유틸리티 베스트 등이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기다란 체인 디자인을 채택한 가방과 알록달록한 스니커들에 시선이 쏠렸다. 이보다 성공적으로 끝날 수 없었을 컬렉션과 쇼는 버질 아블로가 칸예 웨스트를 부둥켜 안고 우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그의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you can do it too…'로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들에게 꿈과 용기를 선물해 주기도 하였다.
버질의 루이 비통은 그렇게 밝게 빛났다. 이후에도 스트리트웨어 아이덴티티는 물론, 꾸준히 건축에 대한 자신의 영감을 선보이며 매 시즌 필히 주목해야 할 남성복으로 정착하는데, 우리는 그가 선보인 컬렉션과 더불어 쇼 자체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를 고르자면 구름 그래픽과 커다란 오브제로 장식된 2020 가을-겨울 컬렉션이 있으며,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 <마을의 이방인>에서 테마를 가져온 2021 가을-겨울 컬렉션, 펑크 소울 그룹 '더 윈스톤즈'에 경의를 표하는 2022 봄-여름 컬렉션 'AMEN BREAK'가 뒤를 잇는다. 이들은 지금까지 버질이 선보여온 퍼포먼스 중 대표작으로 꼽히며, 그의 별명이 '밀레니얼 칼 라거펠트'로 지어지기에도 조금은 합당한 대목 중 하나다.
그다음과 그다음만이 기대되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는 2021년 11월 29일 세상을 떠난다. LVMH와 루이 비통이, 케어링과 구찌가 그를 추모했고 버질을 사랑하고 버질에게 사랑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애도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루이 비통은 이후 마이애미에서 22 가을-겨울 컬렉션을 다시금 조명한 쇼를 통해 버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냈으며, 오프 화이트는 전 세계 일부 매장을 꽃으로 장식하였고, 우리는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전했던 사랑의 메시지를 돼새긴다.
버질 아블로의 디자이너 인생에 카피 이슈가 늘 꼬리표처럼 뒤를 따라다녔다. 심지어 '카피캣'이라 불렸을 만큼 말이다. 패션 고발 계정 @diet_prada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격수'. 유명 디저이너들의 카피를 수면 위로 끌고 올라온 이들이기에, LVMH를 등에 업어도 @diet_prada의 레이더망에 걸린 이상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비록 지금도 여전히 그가 카피켓이 맞다 아니다에 갑론을박이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의 논란을 절실히 부정해왔다. '훔치는 것'이 아니라 '리믹스'라 이야기하며. 여기서 우리는 버질의 디자인 정신 중심에 있던 '3% 접근법'과 '샘플링'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오리지널에서 3%만 바뀌어도 새로운 오리지널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3% 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패션의 세계에 정말 새로운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실제로 버질은 유스 컬처를 기반으로 현시대 남성복의 기틀을 마련한 라프 시몬스로부터 큰 영감을 받으며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스스로를 비유한 방법에 따르면, 버질 아블로의 스트리트웨어는 마르셀 뒤샹의 '샘' 혹은 앤디 워홀이 선보인 '마릴린 먼로'와 '캠벨의 수프 캔'과 동일한 맥락이다. 단지 그 무대가 '패션'이었을 뿐. 버질 아블로는 기존에 존재하는 무엇인가에 3%의 해석을 가미하며 새로운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였다.
3% 접근법과는 별개로 우리는 그가 패션 대신 건축을 전공하고 디제잉을 하며 '샘플링'의 대가인 칸예 웨스트와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존 곡의 일부를 잘라내 새롭게 가공하고 배치하는 행위'를 일컫는 샘플링은 음악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법 중 하나다. 디제잉 속에 다양한 음악을 조합하고 칸예 웨스트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수행한 바가 있기에, 버질에게 이는 전혀 어색한 개념이 아니다. 단순히 직업이 뮤지션이 아닌 디자이너라고 샘플링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샘플링의 집합체인 MBDTF(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음악 시장에서 모두의 인정을 받는 힙합 앨범으로 위치하는데, 샘플링 요소가 가미된 오프 화이트 및 루이 비통 컬렉션이 패션 시장에서 기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혹자는 '3% 접근법'이나 '샘플링'이 버질 아블로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화려한 말장난이 아니냐고 말한다.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주장이다. 버질 아블로가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았음은 공공연히 알려졌지만, 그가 모든 영감의 원천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 자칫 '무단으로 디자인을 뺏은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기에 이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논쟁 거리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마무리하며
2021년 11월 29일 오전 3시 30분경 버질 아블로는 세상을 떠났다. 패션과 음악, 디자인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그를 추모했다. 단순히 그의 성공적인 커리어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생전 내보인 무수한 사랑이 바로 주된 이유다.
그의 커리어는 언제나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다. 흑인과 성소수자의 인권을 중요시 여겨왔으며 패션 신으로 들어서고자 하는 학생과 크리에이티브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선물하고 직접적으로 길을 안내하였다. 루이 비통에 단순히 스트리트웨어를 넘어서 스케이트 문화를 접목시키는가 하면, 나아가 자신 부모님의 고향인 가나에 스케이트파크를 오픈하기도 하였다. 매 순간마다 사랑과 용기의 메시지가 가득했고, 팬들은 이러한 부분에 집중했다. 그게 버질 아블로, 그래서 우리는 버질 아블로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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