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지옥체험 스키육아
5살 아들의 스키 입문을 위한 엄마표 스키캠프
3월 4일 유치원 첫 입학을 앞두고 지난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아들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한 주간 다이내믹한 아들 녀석을 품어야 하는 고강도 풀타임 육아가 시작되었다. 나는 창고에 묵혀있던 스키 장비를 꺼내서 차에 싣고 스키복으로 갈아입었다. 짐을 꾸려서 아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지산 리조트로 향했다. 우리 아이는 기질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성격이 급한 편이라 신체 발달도 또래보다 빨랐다.
하얀 설산에서 자연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스키는 우리 아이가 좋아할 만한 종목의 스포츠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시즌 끝 무렵이고 주중이라 사람들도 붐비지 않고 한적하여 아이와 함께 스키 타기에는 좋은 시기였다. 강원도까지 장거리를 운전하며 아이를 케어하기에는 너무 무리수였기에 경기도권에 있는 지산 리조트로 갔다. 김포에서 출발하여 차가 막히지 않으면 1시간 30분 안팎으로 도착하지만 차가 막히는 구간에서 정체가 있었다.
약 2시간 달려서 마장 휴게소에 도착했다.
마장 휴게소에 들러서 아이에게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먼저 먹었다. 나는 순두부찌개를 시켰고 아이는 돈가스를 주문해서 먹었다.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지산으로 향했다. 마장 휴게소에서 지산까지는 15분 거리였다. 지산 리조트 근처에 있는 장비 렌탈샵에 들러서 아이 스키와 부츠를 렌탈했다. 아이는 친절한 삼촌의 도움을 받아서 난생처음 스키 부츠를 신어보고는 마음에 쏙 들었나 보다.
"엄마, 신발 멋있다!"
아이는 부츠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렌탈샵에 걸려있는 멋진 헬멧을 보더니
"엄마, 이거 멋있어요. 나도 쓰고 싶어요." 스키 장비들이 남자아이의 마음을 울리나 보다.
"엄마가 내년에는 멋진 헬멧이랑 장비도 싹 다 사줄게. 오늘은 그냥 네 헬멧 써."
아이 스키 장비를 차에 싣고 지산으로 향했다. 하얗고 긴 슬로프를 보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야. 얼마 만에 오는 스키장이야."
나는 창문을 열고 슬로프를 바라보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이를 낳고 암을 낳고서 5년이라는 긴 시간이 눈 깜빡하는 사이에 흘러가 버린 것 같았다. 그간 어린아이를 키우고 치병하느라 내게 주어진 과제의 무게가 얼마나 크고 무겁게만 느껴졌던가.
겨울에 눈이 내리면 창밖으로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스키장을 너무나 그리워했다. 그간 스키장을 올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시간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지나가버렸다. 적당한 위치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장비를 내렸다. 아이와 티켓을 끊고 드디어 스키장으로 들어왔다. 하얀 슬로프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샤론스톤! 이게 얼마만이야? 정말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얼굴은 왜 이렇게 새까맣게 탔어?
이 꼬마는 누구야? 그 사이에 아들도 났어? 이야~정말 축하해! 녀석 정말 귀엽게 생겼네? 어서 와! 귀여운 꼬마 친구야!" 나는 설산과 말없는 언어로 교감하였다. 코끝이 찡했다.
아이에게 플레이트에 부츠를 끼는 방법부터 일러주었다. 나도 배워만 봤지, 누군가에게 가르쳐본 적이 없었기에 어설픈 부분이 많았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진심과 사랑이 가득한 '엄마표'라는 자부심 하나로 아이에게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부츠 신는 법을 일러주는 것도 한참이 걸렸다. 아이의 시선에서 헤아리고 눈높이를 맞춰서 알려줘야 하는데 아이에게 계속 내 시선에서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단어 선택에서도 계속 브레이크가 걸렸다.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는데 '고정시키다', '평행하게' 등등의 어려운 단어들을 쓰고 있었다.
아무튼 부츠를 잘 신기고 아이에게 오늘 배울 내용을 알려주었다.
"오늘은 스키 신고 벗는 방법,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법, 스트레칭, 프로그 화인(A자 자세), 리프트 안전하게 타고 내려오는 법을 배워볼 거야." 나는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이는 나의 욕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만큼은 씩씩하게 했다. 나는 아이에게 플레이트를 신은 채 스트레칭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아이가 어려워했다. 평소에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계속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시선에 맞추지 못하고 계속 내 시선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스트레칭만 하고 플레이트를 밀면서 따라와 보라고 했다. 아이는 플레이트를 밀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아이는 넘어진 채로 어찌할 바를 몰라서 엉엉 울어댔다. "괜찮아. 많이 넘어지는 연습 하러 온 거야. 안전하게 넘어지고 일어나는 방법을 배울 거야." 나는 아이에게 일어날 때 자세와 손을 짚고 반동으로 일어나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성격이 급한 우리 아이는 안된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다. 결국 내가 일으켜 세워줘야 했다. 일으켜 세우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게 오늘 내가 해야 할 업무였다. '유아스키는 노가다구나......' 초급 슬로프의 낮은 경사에 올라가서 내려오는 연습을 몇 번 하고 리프트를 타고 레몬 슬로프로 갔다. 아이는 스키가 힘들었는지 울상이었는데 리프트를 타자 표정이 밝아졌다.
"스키 힘들어?"
"네."
"이제 스키장 오지 말고 그냥 키즈카페나 가자. 엄마도 힘들다."
"리프트만 탈 거야."
"리프트 타면 스키를 타야 하는 거야. 이놈아~"
아이에게 리프트에서 안전하게 내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는 슬로프에 올라오자 설레기도 하고 겁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엄마, 무서워."
"괜찮아. 엄마가 널 받쳐줄 거야. 이 폴대가 엄마랑 너를 연결해 주는 탯줄이 되어줄 거야. 폴대를 배꼽에 대고 기대. 그리고 두 손으로 꼭 잡아. 슬로프의 속도감을 느껴볼 거야. 그냥 눈을 느껴."
나는 뒤로 하강하며 폴대로 잡고 아이를 지도하면서 슬로프를 내려왔다. 아이는 무섭다고 하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즐거워했다. 아이가 슬로프에서 균형이 잃고 또 넘어졌다.
"으앙~!"
"괜찮아. 앞으로도 계속 넘어질 거야. 스스로 일어나 봐."
"엄마가 일으켜 줘."
초등학생정도만 되더라도 말로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봐라 하면 말길을 알아듣는데 이 녀석은 그냥 울어버리니 말이 안 통한다. 아직 혼자서 일어나기는 힘든 모양이다. 결국 내가 일으켜 세워줬다.
아이와 리프트를 5번 타고 슬로프를 5번 내려왔다. 아이는 많이 지쳤는지 리프트는 그만 타겠다고 했다.
낮은 경사에서 스키를 타며 놀고 있는데 방송이 나왔다. " 5시부터 6시 30분까지 정설시간입니다. 슬로프 밖으로 나와주세요."
오후 1시에 도착해서 아이와 스키를 타며 5시간을 놀았다. 나는 보통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타면 힘들어서 못 타는데 오늘은 아이를 케어하며 5시간을 탄 것이다. 혼자 슬로프에서 설산을 감상하며 스키를 즐기는 것은 놀이지만 아이를 지도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완전히 이건 노가다였다. 아이도 나도 배가 너무 고팠다.
2층의 짜장면 집으로 가서 짜장면 1그릇에 밥 한 공기를 시켰다. 배고픈 아이는 아기새처럼 입을 쩍 벌리고 짜장면을 받아먹었다. 나는 아이가 남긴 면과 양념에 밥을 비벼서 짜장밥을 먹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난 뒤에 먹는 짜장밥과 단무지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나는 이제 철수하고 오늘은 근처 모텔에 가서 씻고 잠을 자려던 계획이었다.
짜장면을 먹고 다시 재충전된 아이는 슬로프에 가서 스키를 더 타겠다고 했다.
리프트권은 3시간짜리를 끊어서 들어왔기에 리프트는 끝났다고 아이에게 설명해 줬다.
아이는 초급 슬로프 아래쪽 경사로 올라가서 타겠다고 했다. 아이가 폴대 손잡이를 잡으면 나는 폴대 끝을 잡고 아이를 끌어주었다. 아이는 오후 9시까지 놀겠다고 야단이었다. 결국 아이를 잘 달래서 오후 8시에 철수하였다. 장비를 다시 차에 싣고 예약한 모텔로 향했다. 아이는 차에서 잠들어버렸고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모텔에 도착하여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우니 저녁 10시였다.
그렇게 아이와의 1박 2일 지옥스키캠프의 하루가 하얗게 지나갔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를 기절시키기에 이만한 스포츠가 없는 것 같다.
엄마를 기절시키기에도 이만한 스포츠가 없는 것 같다.
둘 다 기절해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