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직장인 친구들을 위한 글
오늘은 좀 무거운 주제를 얘기해볼까 한다. 최근 이것 때문에 마음 아픈 소식을 여럿 접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말은 참 묘하게 어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다. 이 말을 쓰면 괴롭힘 당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싫고, 혹자는 괴롭히는 사람처럼 보일까 싫고, 혹자는 누군가의 자존심을 꺾기 위해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에 싫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치의 악의도 용납되지 않도록 이 단어를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직장 내 괴롭힘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또 이를 신고하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끔 하는 확실한 기준 말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고학년이 되기 싫었다. 당시 필수 권장 도서로 읽은 '양파의 왕따 일기'라는 책이 저학년과 고학년이라는 계층 구조를 무섭게 묘사했다. 4학년으로 올라가면 5학년 언니 오빠들이, 5학년으로 올라가면 6학년 언니 오빠들이 양파의 왕따 일기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못된 짓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제일 무서운 건 동갑내기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놀이터 가서 놀던 친구들은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중학생 언니 오빠들과 어울리며 담배를 하나씩 손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선생님에게 걸릴라 치면, 아주 무서운 선생이 아니고서야 그들을 조롱하기에 바빴다. 나는 차라리 시간이 확 지나가버려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었으면 했다. 어른들의 세계엔 모두가 철이 들고 강하고 동등한 존재들만 있는 줄 알았다. 이 역시 아니었다. 그곳에도 양아치 어른들은 있었다.
2022년이 된 오늘날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괴롭힘 때문에 자살하는 사건을 많이 접한다. 매스컴을 타는 사건들은 대개 주변 사람들이 모를 리 없는 수준의 폭언 및 폭행, 집단 따돌림에 의해 발생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직장인들이 호소하는 직장 내 괴롭힘이 과연 다 이러한 형태일까?
내 주변만 해도 직장 내 특정인의 지나친 언사로 인하여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나아가서는 건강상의 문제를 겪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뉴스에서 봤던 것처럼 상사나 동료가 대놓고 폭력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진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눈치챌 법하지만 항의하기엔 애매한 형태로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갉아먹는다. 나는 그들에게 증거를 모으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힘을 내라고 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가끔 박카스 같은 것을 한 병 보내준다. 그들이 상처받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수면에 문제를 겪는다. 나는 상처받고 있음을 모른다. 여태껏 이 문제를 단순히 생활 불균형에서 오는 문제로만 인식하고자 했다. 최근 한 방송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괴롭힘의 기준은 남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내가 고통받고 있는가가 기준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내게 증거를 모으라고 한다. 사람들은 내게 힘을 내라고 하고, 그들이 겪은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그러나 난 항상 괜찮다고 말했다. 만약 이 이야기가 내 가족이나 친구의 이야기였다면 난 허튼소리 말라고 했을 것이다.
매스컴에선 본 적 없던 현실적인 괴롭힘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요즘 느낀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쁜 놈들은 항상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주 은밀하고 교묘하게 사람의 정신을 망가트려놓는다. 더러는 역으로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잘 살자.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예민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예민하지 않다. 겪고 있는 상황 그대로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회사생활의 기준은 항상 나임을 명심하며, 나와, 나의 친구들과, 내가 알고 있던 혹은 만난 적 없는 모든 직장인이 외로워하지 않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