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길은 한국사 강사다. 그는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어 당당히 1타 강사로 일약했다. 넘치는 에너지, 정열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학생들을 매료시켰다. 불합리한 어떤 일에 극도로 흥분하며 소신발언을 쏟아내는 모습으로 대중의 인기도 얻었다. 그는 연 100억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고, 사람 자체가 하나의 흥미로운 콘텐츠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학생들을 위해 진정성 있는, 어떤 면에서는 정의로운 마음씨를 가진 강사로 통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고, 세상에 대한 모든 비판은 합리성에 근거를 둔, 반지성주의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제지하지 않아 비판과 욕설 수위가 나날이 심해졌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시작했던 욕설이 아무도 지적하지 않으니 내성이 생겨 점점 강도 높은 욕설로 치달았다. 듣기만 해도 눈살 찌푸려지는 저급한 욕설을 뱉어도, 모든 것은 ‘학생들을 위한 쓴소리’로 받아들여졌다. ‘얼마나 학생들을 생각하면 저렇게까지 말하겠냐’는 반응은 그의 천박한 언행을 부추겼다. 흥분하는 빈도수가 늘었고, 더러운 말씨에는 자극성이 더해갔다. 자기 분을 풀기 위한 욕은 점점 더 많은 욕과 흥분이 필요했다. 입에 물었던 걸레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취가 풍겼다.
그는 강단의 독재자가 되었다. 언제 어느 때든 신경 거슬리는 학생을 향해 뒤틀린 폭력성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말이다. 세간에 떠돌아다니는, 자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겨냥해 쌍욕을 퍼부어대기도 했다. 그는 무슨 욕을 할 때면 갓 잡아 올린 숭어마냥 팔딱팔딱 요란하게 소리를 질러댄다. 목소리 크기로는 공사판 소음도 뚫고 나올 기세다. 몸도 부르르 떤다. 누워서 욕을 했다면,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오해를 받았을 것이다. 그의 천박한 언동은 “쓴소리”, “학생을 위한 진정성”으로 정당화되었다. 무엇보다 강의에서 뭐라 지껄이든 여전히 1타 강사를 유지하며 많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었고, 어떤 비판의 목소리도 허용하지 않는 강단의 독재자였다.
그랬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성공,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빚만 20억이 넘던 눈물겨운 세월을 청산하고 일타강사라는 영예로운 자리까지 올라간 그로서는 인생에 관해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성공에 관한 책을 출간하고, 각종 강연이나 방송에 나와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얘기했다. 하지만 강단에서의 천박한 언동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간 쌓인 울분을 토해내겠다는 듯 인생 밑바닥 시절에 겪은 설움으로 몸을 떨었다. 언젠가부터는 인생,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국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국내 반도체 시장이 어쩌고, 정치가 어쩌고, 중국이 어쩌고 하는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의 주장은 하나같이 수준이 미천하기 그지 없었지만, 댓글창에는 그가 애국자라며, 한국사 외에 다른 방면에서도 옳은 목소리를 낸다고 박수쳤다.
그는 세간으로부터 받는 관심에 각성되었다. 그리고 점점 자기 분수를 넘어가는 언행을 일삼았다. 대내외 경제 이슈, 첨예하게 갈리는 정책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누구보다 중립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는 중에 계엄이 터졌다. 그는 계엄령 발동 직후, 계엄을 반대하는 의견을 냈지만, 곧바로 입장을 바꿔 윤석열 엄호에 적극 앞장섰다. 현재 각종 집회나 방송에 나가 누구 못지 않는 열성으로 윤석열 석방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더불어공산당이라고 외치고, 지난 선거의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헌법재판관의 이념적 편향을 들어 헌법재판관을 사법부의 하나회라고 했다. 연설 중에 그가 뭐라고 소리를 꽥꽥 지르고 울부짖으면 참석자들은 짖껄이는 내용도 모르고 그 율동에 맞춰 박수치고 호응한다. 개중에는 뜨거운 애국심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눈물겨운 애국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뜨겁게 가열된 그는 다시 선전 선동 수준의 어디서 주워들은 정치 찌라시 같은 말들을 쏟아낸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일동 박수치는 모습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극락의 쾌락을 선사한다. 자신을 에워싼 군중의 집단적 에너지를 느끼는 순간, 전한길은 강단에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연설 포르노, 극강의 오르가즘을 느낀다. 몸과 마음, 온 정신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다. 이른바 연설 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전한길은 중독되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 뭐랄까, 중국 문화대혁명 홍위병이 떠오른다. 권력자의 술수에 넘어가 자신의 몸을 바치면서도, 불의에 대항해 자신은 정의의 편에 속해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인류사 어디에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한길에 손가락질하며 정치편향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한길은 과거 노사모 경력과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주장했던 과거 자신의 발언을 들어 자신은 정치 중립적인 사람이라고 항변했다. 자신은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았고 언제나 중립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노사모 경력, 5·18에 대한 생각이 무슨 자격증이라도 되는가? 노사모 경력이 있고,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공인 기관에서 정치 중립 자격증이라도 때준다는 말인가? 그리고 윤석열을 대놓고 비호하고, 민주당을 공산당이라고 매도하는 마당에 과거 별것 없는 자신의 행적을 이유로 정치 중립적으로 비치길 바랬다면, 그것은 멍청하다는 말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내가 이해한 전한길은 어떤 고상한 목표나 신념에 따라 움직인다기보다, 내면의 격심한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끓어 넘치는 공격성, 지배욕, 왜곡된 정의감이 그의 핵심 원동력이다. 전한길 같은 사람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주고 기사를 써주는 언론, 그에게 선동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착잡한 마음에 소주라도 한 잔 하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대략 알 수 있다고 한다. 전한길은 윤석열을 좋아한다. 이 말로 대충 전한길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