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령 Apr 07. 2024

지나가는 일이지만

한 번 더 속아보는 걸로

안녕하세요?

어디에 가닿을지 모를 인사를 던져 봅니다.

저는 아주 평범하지만 또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아왔어요. 내세울 것 하나 없고 되려 감추고픈 것만 많은 저입니다. 어쩌면 평범 보다 못할 수도 있겠어요.


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실은 똑똑해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가지고 태어난 것들이 보잘것없어서, 제 팔다리로 얻을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무거운 것을 갖고 싶었고, 그게 지식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허세 가득한 독서 생활을 즐기다가 스물여섯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제 허세에 박차를 가해주었던 작가는 베르나르베르베르였어요. 당시 친구들은 엄두도 못 낼 두꺼운 재생 종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주목을 받았던 기억이, 사서 선생님의 놀라던 눈빛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가슴이 얼마나 뛰던지요.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헤르만 헤세가 그 자리를 대신했어요. 잘나 보이고 싶다는 그 마음이 "좋아하는 작가 누구예요?"라는 멋진 어른들의 질문에 대답할 거리를 만들어 준 것이지요. 덕분에 멋진 어린이로 산 세월이 제게 있습니다.


아아~ 하도 헤세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녀서, 그 시간이 벌써 10년을 채워가니까 저를 들킬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어요. 어쩌면 정말 저를 아는 친구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제 문체를 아는 친구들이요. 그것이 왜 두려우냐면요..


저는 무언가를 끈덕지게 못 해요. 끈기 있게, 꾸준히 무언 갈 멋지게 해내보고 싶은데요 아주아주 잘 못 해요.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특히나 어떤 글 쓰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다 보니 저 역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습니다. 아니죠, 늘 해왔습니다. 글을 쓰는 것에도 근육이 있다는 말을 왜인지 좋아하고 있어요. 항상 그 근육을 붙여보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비슷한 모양의 근육을 붙여보고 싶어서요.

어느 정도의 분량이 되는 글을 꾸준히 써보고 싶어요. 일기를 주욱 남겨보고 싶어요. 그래서 브런치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사실 엄청난 결단은 아닙니다. 글을 쓰는 것에 있어 첫 번째 도전이 아니거든요. 저는 이미 네이버 블로그에도 시도해 보았고요, 인스타그램에 짧은 토막글 올려보기도 했았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주기가 점차 길어지더니 나중엔 대충 사진 하나 올리게 되더라고요. 어쩌면 브런치도 블로그와 인스타처럼 지나가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제 용기에 한 번 더 속아봅니다. 끈질기지 못 한 저를 한 번 더 용서해 주고요.


저는 저를 몇 번이고 미워하는 대신 또 몇 번이고 용서할 수 있는데요, 제가 아닌 타인은 제 시도들이 좀 우스울 수도 있잖아요. 저도 멋진 어른들처럼 꾸준하고 싶기도 하고,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안 쓰이는 척이라도 해보고 싶은데요, 그게 제맘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 용기를 본 나의 지인들은 모르는 척 지나가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어쩌면 실패를 또 보게 될지 모르니까요. 저는 저의 실패를 아는 얼굴들에게 보여주기가 너무나 두려워요.



반드시 좋은 일은 생긴다

인생이 등가교환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요, 그럼에도 주문처럼 외워보는 말입니다. 무책임하게 보이는 말일수도 있겠어요. 그렇지만 말하다 보면 정말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일이 생길 때까지 저를 버티게 해주는 말이기 때문이겠지요.


이 글을 보는 누군가 씨는 요즘들이 괜찮으실지 모르겠어요.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열되는 좋지 못 한 소식들에 허덕이고 있어요. 이해받고 싶은 마음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있어요. 누구보다 어른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과 아이처럼 떼쓰고 싶은 마음이 한꺼번에 저를 찾아와요. 그래서 때로는 마음을 너무 아끼게 되고, 또 때로는 마음이 과하게 튀어나오는 것 같아요. 맘 쓰는 요령이 없어서 쉽게 상처받고 쉽게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맘 쓰는 일에도 요령이란 게 있을까요? 미디어로 만날 수 있는 어른들, 그리고 제 주변을 지켜주는 몇 어른들은 사소한 일에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시는데요. 그게 그러니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나요? 받는 상처는 똑같은데 나를 달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건 아닌가요? 저는 아직 그걸 잘 모르겠어요.


참고 살다 보면 정말 좋은 일이 반드시 생길까요?

사실 그러지 않을 것만 같아요. 모든 불행이 두려운 것은 이 지점인 것 같아요. 도무지 이 불행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저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 가운데 느끼는 무력함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요. 고통은 길고 행복은 짧은 것이 인생이라는 점이 마음에 안 들어요. 너무 많은 어른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는 사실이 저를 좌절에 빠지게 합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니! 이런 인생을 굳이 살기 씩이야 해야 한다니.


오늘도 결국은 삶을 원망만 하는 한심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아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제법 밝은 문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저는 오늘 밤을 그리고 또 내일 아침을 축축이 보낼 것 같아요. 지하철에 앉아서 '언제 도착하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 쓴 글을 생각할 것 같아요. 이 모든 불행들이 언제 끝날까- 하고요. 이 불행이 끝나도 또 저 불행이 온다는 것이 저를 많이 지치게 하네요.


그렇지만 이 일도 언젠가 지나가겠지요.

그렇지 않더라도 저를 한 번 더 속여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