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러브 코딩 5화 - 하늘을 찌르는 시건방
중만이 현업 직원과 통화하고 있다.
민수는 매뉴얼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든다.
“그러니까 언제까지 테스트 결과를 보내주실 수 있다는 거죠?”
상대방의 말을 듣던 중만의 톤이 높아진다.
“아니, 그것은 그쪽 사정이죠.”
통화하는 상대방의 말을 듣던 중만이 통화를 이어간다.
“아무튼 테스트 결과가 오지 않으면 이 상품은 반영할 수 없어요. 상품 판매 지연에 대한 책임은 그쪽에서 지셔야 할 겁니다.”
“예, 그러니까 빨리 보내주세요.”
“예, 수고하세요.”
중만은 전화를 내려놓다가 민수와 눈이 마주친다. 중만은 쑥스럽게 웃으며 민수에게 말한다.
“이렇게 겁을 좀 줘야 저것들이 말을 들어.”
“예...”
민수는 가르침을 받듯 대답한다.
민수는 책상 위에 펼쳐진 매뉴얼로 고개를 숙인다.
매뉴얼에 눈을 꽂고 있던 민수는 뭔가 결심한 듯 양미간에 힘을 잔뜩 넣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소라 책상 쪽을 째려본다.
그러나 소라가 자리에 없다.
민수는 시선을 다시 매뉴얼로 향하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든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다 옆에 서있는 소라와 눈길이 마주치는 민수,
“흡!”
순간 민수가 놀라면서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밀려난다.
소라가 손에 뭔가를 들고 바로 곁에서 민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업무 하실 때 쓰는 비품이에요. 내가 좀 늦게 챙겨 드렸죠?”
웃으며 말하는 소라에게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민수.
“아, 예...”
소라는 손에 한 움큼 들고 있던 펜과 기타 비품을 민수의 책상에 내려놓는다.
팀원들은 얼떨떨해하는 민수의 모습을 바라본다.
“또 다른 것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소라가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거봐, 내 말 맞잖아, 정소라가 민수 씨 찍었다니까.”
그 모습을 보던 일섭이 웃으며 말하자 중만이 웃는다.
“하하하.”
민수는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다시 매뉴얼로 눈길을 돌린다.
오늘따라 민수에게 하루가 참 길다.
민수는 조심스럽게 손목을 비틀어 손목시계를 본다. 정각 6시.
민수는 매뉴얼을 바라보는 척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민수는 다시 자신의 손목시계를 훔쳐본다. 6시 20분.
남준과 대출관리팀 팀원들이 퇴근하면서 신계약팀을 지나쳐간다.
민수는 지나가는 남준에게 눈인사한다.
중만은 퇴근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민수에게 말을 건넨다.
“민수 씨 오늘 출근 첫날인데 일찍 퇴근해.”
“빨리 퇴근하세요.”
신규까지 나서서 재촉하자 민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쭈뼛거리며 일어선다.
“예, 알겠습니다.”
중만이 일섭을 향해 인사한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러면서 민수를 보며 말한다.
“같이 나가지?”
“예,”
민수는 일섭과 신규를 향해 인사한다.
“내일 뵙겠습니다.”
민수는 중만을 따라나선다.
회사 빌딩에서 빠져나온 민수와 중만.
“저, 선배님 저는 볼 일이 좀 있어서요.”
“아, 그래요, 일 잘 보시고, 내일 봐요.”
“안녕히 가십시오.”
중만은 허리 숙여 인사하는 민수에게 손을 살짝 들어 보인 후 돌아선다.
이로써 길고 긴 직장의 하루를 끝난 민수, 이제야 숨을 쉴 것 같다.
민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전화박스를 찾아 들어간다.
공중전화박스에 들어선 민수는 전화기에 동전을 넣고 전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재희니? 나 민수.”
회사를 나오자 민수의 목소리가 벌써 다르다.
그러나 뿌루퉁한 재희의 목소리.
“왜 전화했니?”
“지금 시간 돼? 오늘 저녁 어때?”
“내가 왜? 언제는 나보고 동그랑땡이라며?”
“아니지, 동그랑땡이 아니고 애플 히쁘!”
능글스럽게 말하는 민수에게 재희가 쏘듯이 말한다.
“미친놈, 그러면서 나 보고 저녁을 먹자고?”
“너가 이쁘다는 뜻이잖아!”
사무실에서와는 달리 민수의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어쭈, 이제 뻔뻔하기까지 해? 이런 너를 내가 어떻게 믿고 만나니?”
“아 그런가, 안 그럴게. 됐지?”
“안 그런다고 내가 어떻게 믿니?”
“회사에서 하루 종일 시달렸더니 술이 당기네. 그냥 집에 가면 죽을 것 같아. 나 좀 살려주라.”
민수가 애원조로 말하자 재희가 퉁긴다.
“웃겨, 흥!”
“이제 누나라고 부를게, 어때?”
협상을 시도하는 민수. 재희가 약간 흔들린다.
“글쎄...”
“누님! 누님 있는 곳 근처에서 볼까요? 전에 만났던 곳 있잖아요.”
민수의 아양에 재희는 못 이기는 척 넘어간다.
“글쎄... 그럼, 거기서 볼까?”
“지금 지하철 타려고 하는데 빨리 갈게.”
“지금 선영이도 같이 있어.”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는 민수, 그러나 목소리는 화통하다.
“당연히 같이 나오는 것 아니야?”
“알았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예, 누님!”
전화박스에서 나온 민수는 지하철 입구를 향해 바삐 걸어간다.
재희와 선영이 식당에 먼저 와서 앉아 있고, 그들의 식탁 위에 치즈 김치전과 소주, 맥주가 놓여 있다.
민수는 식당에 들어서서 재희와 선영이 마주 앉아 있는 곳으로 간다.
“오래 기다렸어?”
“왔니?”
선영이 민수에게 인사하며 재희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재희가 민수를 보며 반긴다.
“오, 양복 입으니까 사람이 달라졌어. 멋진데!”
“남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민수의 시건방에 재희가 웃는다.
“그래, 너 잘났다.”
선영이 민수의 소주잔을 채워주며 묻는다.
“회사생활은 어때?”
“직장생활이 뭐 다 그렇지.”
민수는 힘들어하는 척하며 소주를 들이켠다.
그 모습을 본 재희가 옆에 있는 선영을 보며 깔깔거린다.
“쟤 말하는 것 좀 봐, 직장생활 10년은 한 것처럼 말하네. 하하하.”
“회사 사람들은 좋아?”
선영의 질문에 민수가 대답한다.
“아직 며칠밖에 안 되어서 잘 모르겠어... 그런데 다른 팀 여사원이 나를 못살게 갈궈.”
재희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어떻게?”
“OJT 기간이라서 업무 매뉴얼을 보고 있었는데...”
선영이 말 중간에 끼어들며 묻는다.
“OJT가 뭐야?”
“‘On the Job Training’이라고 직무교육이래.”
재희가 놀리듯이 말한다.
“오~ 어려운 말도 다 쓰고...”
“하여튼 사무실에서 매뉴얼을 보고 있는데, 그 여사원이 내게 와서는 졸지 말라며 껌을 주고 가는 거야.”
“그게 왜 괴롭히는 거야?”
“들어봐, 나는 졸지도 않았거든, 그런데 다른 사람들 들으라고 '많이 졸리시죠, 껌 드세요' 하면서 껌을 주고 가는 거야, 우리 팀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고, 아, 어찌나 쪽 팔리던지...”
“너를 위해서 그럴 수도 있잖아?”
계속 그 여사원을 두둔하는 재희, 민수는 은근히 약이 오른다.
“아니야, 내가 억울해서 그 여사원을 쳐다보니까, 그 여사원이 나를 보며 여우처럼 싸악 웃더라고. 내가 당한 것이지.”
재희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바탕 웃는다. 그리고는 민수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어떤 여사원이야?”
“4급 여사원, 고졸 여사원은 4급부터 시작되고 대졸은 3급부터 시작해.”
재희는 민수의 소주잔을 채워주며 말한다.
“그 여사원은 너가 좋은가 보다, 좋겠다!”
“허!”
재희 말이 말 같지 않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틀며 헛웃음을 치는 민수.
“흥!”
민수의 반응을 맞받아치듯 고개를 반대편 돌리며 콧방귀를 뀌는 재희.
선영은 두 사람의 토닥거리는 모습이 부럽다는 듯 웃는다.
세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으로 시간이 흐른다.
재희와 현수의 대화가 이어진다.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해?”
“보통은 구내식당에서 먹는데 오늘은 일반식당에 가서 먹었지.”
“일반식당? 그냥 식당 말하는 거야?”
“그래, 그냥 식당. 오늘 점심을 먹는데 부대찌개를 시켰거든, 나는 다 먹었는데 우리 팀 직장인들은 아직 반도 못 먹고 있더라고. 그냥 기다리려니 그것 참 민망하데...”
“너가 빨리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직장인들이 식사하는 것을 보니까, 부대찌개를 담은 개인 접시에 밥을 말아서, 밥 조금, 부대찌개 많이, 이렇게 소심하게 먹는 거야, 그래서 밥 한 공기 더 시켜서 우리 팀 직장인들처럼 쪼잔하게 먹으면서 밥 먹는 시간을 맞추었지. 그래서 직장생활은 요령과 절차가 중요한가 봐.”
‘요령과 절차’라는 것을 이런 데 끌어다 쓰는 민수.
선영은 그런 민수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아, 그런 게 요령이구나...”
그러자 재희도 나선다.
“너도 직장인이야! 직장인. 직장인을 남 말하듯이 하네.”
“너희들이 직장생활을 해 봤어야 알지.”
민수가 시건방지게 말하자 재희는 민수가 직장인임을 다시 주지 시킨다.
참 야물딱진 재희.
“너는 직장생활은 하는데, 직장인은 아니야?”
“그렇지! 나는 직장생활만 할 뿐, 그냥 자유인이지. 자유인!”
뻔뻔스럽게 말하는 민수를 보며 재희는 눈을 흘긴다.
“웃겨!”
민수는 재희를 바라보며 묻는다.
“유학 준비는 잘되고 있어?”
“오전에 토플 영어 학원 나가고 있어.”
“몇 시부터 하는데?”
“응, 10시부터야, 월 수 금 100분씩 수업해.”
“박사과정 입학 신청도 영어성적이 필요해?”
“응, 당연히.”
“유학 생활을 하는 자유인이라... 너가 부럽다.”
선영이 재희를 걱정하듯 말한다.
“유학 가면 고생이지. 자유인은 무슨...”
민수가 생각이 났다는 듯 상의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한 페이지를 찢어 재희에게 건넨다.
“회사 전화번호야,”
“수첩을 찢어서 주면 어떡하니?”
재희가 나무라듯 말하자 민수가 둘러댄다.
“내 명함이야.”
재희는 민수의 그런 넉살에 몸을 옆으로 가누면서 귀엽게 웃는다.
“이제 집에 가자.”
재희의 말에 민수가 아쉬운 듯 대답한다.
“그래, 가자.”
재희와 선영은 식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식당에서 계산하고 나오는 민수를 보며 재희가 말한다.
“식사 잘했어. 고마워.”
“아직 월급도 안 나왔을 텐데.”
선영의 말에 민수가 우쭐대며 말한다.
“연수원에 한 달 갔다가 왔더니 통장에 월급이 들어와 있더라고.”
“야, 그러면 오늘 첫 월급 탄 기념으로 저녁 산 것이야?”
재희의 말에 민수가 또 시건방을 뜬다.
“응, 카드로 언제 어디서든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이게 행복 아니겠어?”
“술꾼이 다 됐네.”
선영의 말에 민수는 그들도 술꾼이 되기를 바라며 말한다.
“너희들도 나의 행복에 동참하기를 바래.”
“미친놈, 빨리 집에 가.”
톡 쏘듯 말한 재희는 선영과 함께 돌아서서 간다.
민수는 걸어가는 재희를 바라본 뒤 지하철 입구로 향한다.
민수는 집 현관으로 들어선다.
현수의 현관문 여는 소리에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또 술이가? 밥은 먹었나?”
“예, 먹었어요.”
“오늘도 회사 사람들이랑 마셨나?”
“아니요, 재희랑 선영이하고 저녁 먹었어요.”
“그래? 그 얘들 다 잘 있지?”
“예, 잘 있어요, 들어가서 잘게요.”
“그래, 그래라.”
현수가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는 민수 동생이 잠자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민수의 이부자리가 펼쳐져 있다.
민수는 방에 들어와서 양복 상의와 하의를 벗어 책상 위에 던진다.
넥타이를 목에서 조심스럽게 빼내서 휙 던지고는 마지막으로 와이셔츠를 벗어서 책상 위로 던진다.
민수는 깔아 놓은 이불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그리고는 곧장 일어나 형광등을 끄고 다시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