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러브 코딩 31화 - 바람난 친구
신계약팀 팀원들이 모두 퇴근하자 민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 수화기를 들고 전화 버튼을 누른다.
재희가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나야. 잘 있었어?”
“응.”
“낮에 전화하니까 호성이가 받던데?”
“응, 알고 있어.”
민수는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많이 바빴었나 봐?”
재희는 여전히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바쁘다기보다는 좀 그랬어.”
평소와 다른 재희의 반응에 민수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뭐 안 좋은 일 있어?”
“그냥 말하기 싫어서 그래.”
재희 말에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민수가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내가 괜히 전화를 걸었나 봐?”
“내가 좀 그래.”
재희의 짧은 대답에 민수는 분을 숨기듯 말을 잇는다.
“좀 그런 것이 아니라, 좀 심한 것 같은데?”
“뭐가?”
“솔직히 전화받아주는 성의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내가 좀 힘들다고 그랬잖아.”
민수도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그래, 알았어. 내가 싫으면 정작에 말을 해주면 좋았을 것 같아. 내가 참 초라하게 느껴지네.”
“너를 좋다 싫다 말할 계제가 아니잖아.”
“아, 그래? 내가 그동안 너에게 무척 잘못했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람이 계속 전화해서.”
“너, 왜 이렇게 화를 내?”
“너도 생각을 해 봐, 내가 화 안 나겠어?”
재희는 계속 낮은 음성으로 말한다.
“그만해. 힘들어.”
“그래, 그만해. 내가 잘못했고, 내가 멍청했어.”
화가 난 민수는 재희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민수는 분을 삭이듯 우두커니 앉아 있다.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던 민수가 다시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고 전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상호의 무심한 목소리와는 달리 민수는 급하다.
“나다, 민수!"
민수라는 말에 상호의 목소리가 깨어난다.
“어! 웬일이야?”
“어디 안 갈 거지?”
민수의 뜻을 알아차린 상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빨리 와, 한 잔 땡기자.”
민수는 사무실의 벽시계를 힐끗 보며 말한다. 벽시계가 8시에 다가서고 있다.
“지금 출발할게.”
“오케이, 기다리고 있을게.”
민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사무실을 나선다.
달리는 전철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민수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허리춤에 찬 삐삐가 진동한다. 민수는 수신된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가시나!”
민수는 혼잣말을 내뱉고는 무표정하게 지하철 차창 너머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콘크리트 벽을 바라본다.
민수는 당구장에 전등이 꺼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당구장 문을 조심스럽게 당겨본다. 다행히 문은 잠기지 않았다. 민수는 당구장 안으로 들어간다.
당구장 카운터 부근에만 형광등이 켜져 있고 상구는 무료하게 TV를 보고 있다.
민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상구에게 묻는다.
“당구장이 왜 이래?”
“너 온다고 해서 손님 안 받으려고 불 꺼놓고 있었어.”
“아, 그래? 나는 또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서 놀랐잖아.”
“저번 때처럼 당구장에서 패싸움이라도 붙었을까 봐?”
“하하, 그러게, 나가자.”
민수와 상호가 당구장을 나선다.
상호는 민수와 조그만 치킨집에 들어서며 여주인에게 주문한다.
“사장님, 여기 생맥주 하고 치킨 좀 주세요.”
상호가 자리에 앉으며 민수에게 묻는다.
“회사는 재미있어?”
“민수는 뿌루퉁하게 대답한다.
“오늘 새벽에도 전화받고 기계실에 불려 가서 땜빵하고 왔는데, 재미는 무슨 재미….”
“기계가 고장 났어?”
상호의 물음에 민수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 돌아가던 프로그램이 에러가 나서 고치러 나갔어.”
“그런데 웬 기계실?”
“컴퓨터가 놓인 곳을 기계실이라고 불러.”
상호는 의아하다는 듯 말한다.
“컴퓨터가 기계라고?”
“그럼, 컴퓨터가 기계지, 그게 뭐 대단한 것인지 알았어?”
치킨집 여주인이 생맥주 두 잔과 뻥튀기 과자를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상호가 맥주잔을 들면서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아이씨, 마누라 때문에 못 살겠다.”
“왜?”
“내가 완전 개무시당하고 있어. 나보고 집에서 나가래.”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발동하는 민수가 묻는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
상호는 생맥주를 쭈욱 들이키고 난 후 한마디 툭 던진다.
“들켰어.”
민수는 예의상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그렇지만 질문하는 어투는 상당히 불량스럽다.
“드디어? 어쩌다가?”
상구는 그런 민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을 쏜다.
“드디어는 무슨 드디어야!”
심각한 상구와는 달리 민수는 놀리듯 말한다.
“안 들킬 줄 알았어? 우리 아버지도 매번 들켰어.”
상구는 배신자 같은 민수에게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하소연할 놈은 이놈밖에 없으니까.
“여자들 촉이라는 것이 참 예리해.”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어 있지, 어떻게 들켰어?”
친구의 난감한 사정을 보듬어 주기보다 자신의 궁금증이 더 앞서는 민수.
“그 여자하고 같이 있을 때 내가 핸드폰 안 받고 하니까 눈치를 깠나 봐."
민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전화 안 받고 그러면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뜻이야?”
심각하게 묻는 질문에 상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
“그래?”
궁금해하는 민수에게 한 수 가르쳐 주듯이 말하는 상구.
“뻔하지, 뭔가 있다는 뜻이야.”
상구의 말에 민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 재희가 전화받지 않았던 일, 그리고 쌀쌀한 재희의 전화 통화…. 남의 일 같지 않은 민수는 표정이 변한다.
민수는 허리춤의 삐삐에 찍힌 전화번호를 살펴보자 상호는 궁금한 듯 묻는다.
“삐삐 왔어?”
“아니. 조금 전에 온 거 보고 있어.”
“핸드폰 빌려줄까?”
상호의 말에 민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한다.
“아니 됐어.”
“연락 오면 재깍 대답해라, 안 그러면 나처럼 작살난다.”
민수 웃으면서 걱정스럽게 말한다.
“이거 참 일이 애매하게 돌아가네….”
상구는 그런 민수를 보며 또 한 수 가르친다.
“핸드폰이나 삐삐 이런 것이 다 개 목걸이야.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 꼼짝 못 해.”
민수는 그런 상구를 이제서야 걱정하듯이 묻는다.
“그런데 요즘 밥은 먹고 다니나?”
“집에서 눈칫밥 먹고 있다, 돌아버리겠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상구에게 위안을 받으러 온 민수, 오히려 상구를 위로하는 처지가 되었다. 민수는 맥주잔을 들면서 말한다.
“나도 돌아버리겠다.”
민수는 불쌍한 상구와 자신을 위해 건배하며 생맥주를 들이켠다.
집 현관문이 달그락거리다가 문이 열리고 술에 잔뜩 취한 민수 들어와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방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온 민수는 벽에 있는 스위치를 더듬거려서 누른다. 상의를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은 후 넥타이는 매듭이 풀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목에서 빼내어 벗어 놓은 양복 위에 휙 던진다. 몸을 건들거리며 와이셔츠와 바지를 던져버리고는 불을 끄고 쓰러져서 잠을 잔다.
새벽녘, 민수는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그 와중에 민수의 머리맡에 있는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한다. 술에 곯아떨어진 민수는 전화를 받지 못한다. 전화기의 신호음과 민수의 코 고는 소리가 경쟁하듯 교대로 울리다가 전화 신호음이 결국 먼저 지쳐서 멈춘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타고 넘어와 사무실 바닥에 깔려있다.
사무실에 출근한 민수는 간밤에 진행되었던 일일마감작업 결과를 점검한다. 키보드를 치던 민수, 모니터를 바라보며 ‘어’ 하면서 표정이 굳어진다.
모니터의 일일마감작업 결과 화면에 에러 내용이 아래로 쭈욱 이어져 있다.
민수는 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려 작업 결과를 확인한다.
모니터 화면에 길게 이어진 작업 결과 코드와 함께 'RECORD NOT FOUND' 문구가 떠 있다.
민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리고 에러가 발생한 작업의 소스 프로그램 코드를 모니터 화면에 띄운다. 소스 코드를 보는 민수의 초조한 낯빛이 난감한 표정으로 바뀐다.
중만이 사무실로 출근하여 상의를 벗어서 의자에 걸친다. 민수는 출근한 중만을 보며 묻는다.
“저 팀장님, 혹시 팀장님께서 기계실 전화받으셨어요?”
“응, 내가 전화를 받아서 에러 난 작업을 홀딩시켰어. 디펜던시 (dependency : 후속 작업) 걸린 작업이 영업인사팀 잡(job) 하나밖에 없어서 오늘 아침에 처리하겠다고 하고 홀딩시켰어.”
“아, 예….”
난감해하는 민수에게 중만이 묻는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어?”
“어제 술 먹고 새벽에 집에 들어갔는데 술에 취해서 자느라 전화를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한테 전화가 왔구만… 빨리 처리하자고.”
“예. 그런데 설계사 코드가 낫 파운드 (NOT FOUND)로 뜨는데요.”
중만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해가 안 되네.”
“이 코드를 입력할 때 잘못된 것 아닐까요?”
“온라인 시스템으로 입력할 때 설계사 코드를 베리피케이션 (verification : 확인 처리) 하게 되어 있는데… 뭐가 문제지?”
중만은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급하게 두드린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중만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거참 골치 아프네. 이 한 건만 패스시키면 마감 계수가 틀리게 될 거고, 그렇다고 설계사 코드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도 없고…”
옆에 있는 민수도 담당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무척 난감하다.
입금팀의 소라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키보드를 치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는 동작을 반복한다.
소라는 모니터를 통하여 조회된 해당 영업소의 전화번호를 보며 영업소로 전화를 건다.
아니나 다를까, 영업인사팀 팀장 윤승철대리가 신계약팀으로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