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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백합

28. 달새

by 금봉



달새



화장실 문이 열리자마자

코하네의 뾰족한 어깨가

하즈키의 가슴팍으로 들어왔다.

단번에 그녀를 알아본 것만큼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통은 어찌 된 일인지

마치 신생아처럼 벌거벗은 채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보채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출처, 냉정과 열정사이


마네키 네코를 닮은 코하네는

얼음처럼 시멘트 바닥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은 고스란히 하즈키가

독점하는 중이다.

하얀 원피스 자락을 꼭, 쥐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이 얼굴처럼 허옇다.

하즈키의 입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며

심장은 발버둥을 치는 중이다.


“저기, 안, 녕하세요?”


하즈키는 자신의 멍청한 단어 선택에

머릿속으로 바보 같다는 글자가

둥둥 떠다녔다. 안녕하세요, 라니,

그렇게 멍청할 수가 없다.

다행히 얼음장 같았던

코하네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비치기 시작했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20160317_180%2Fsosohan222_1458173747481brXVm_PNG%2F3.png&type=sc960_832 출처, 무지개 여신


“네, 안... 안녕하세요?”


코하네는 누구인지 확신해 놓곤

모른 척 낯선 척 말을 건넨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머릿속은

하얘졌고 어떤 말이라도

늘어놓아 그녀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저기, 국수... 집.”


하즈키는 눈을 찡긋거리며

이번엔 병신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코하네가 흔쾌히

밝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네, 맞아요.”


빛에 반사된 그의

빛나는 갈색 눈에 금빛이 돌았다.


“우연히 또 만났어요.”


“네”


코하네와 나누는 첫 대화는

하즈키가 생각했던 느낌처럼 같았다.

가까이 있는 그녀의 얼굴은

세상에 있을 법한 얼굴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벌거벗은 머리통을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녀를 가슴팍에 끌어안는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마네키 네코를 보자마자

끌어안는 생각이라니,

그가 생각해도 자신은

정신이 나간 놈이 맞는 것 같다.


코하네의 그 친근한 눈이

웃음 짓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있다는 건,

마치 꿈일 것이다.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녀를 찾고 있었다.


“코하네?”


국숫집에서 보았던 그 남자와

이번에도 눈이 마주친다.

하즈키는 마호를 바라보며

가볍게 목례했다.


“응, 인사.”


코하네는 이상한 대답을 하며

낯설게 행동했다.

마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말 한 번 섞지 못한 사람과

무슨 인사라니,

자신도 모르는 감정이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쳐

얼굴이 발개짐을 느낀다.

마호도 함께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지만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코하네는 뭔가

다른 설명을 하려는 것 같았고,

그녀가 입을 열기 전,

마호는 거칠게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코하네의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손목이 아팠다.

그녀 또한 가벼운 고갯짓으로

자리를 피했지만,

마호의 행동은 코하네의 기분을

건조하게 만들었다.

코하네가 손목을 뿌리치며 말했다.


“아파, 마호.”


잡았던 손목을 놓아주자

코하네의 손목이 벌겋다 못해

마호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아는 사람도 아닌데? 무슨 인사야?”


“긴 우연이잖아?”


“뭐?”


“오랫동안 우연히 꼭,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마호는 다시 마시지 않을 것 같던

위스키를 한 잔 더 들이켠다.


“마호, 그냥 한 병을 시켜 놓고 먹지 그래.”


마호의 심장이 긴장감에 두근거렸다.


“그 사람, 수상해.”


“응?”


“너와 또, 또 그리고 또 마주쳤으니까.”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뭔가 생각났다며 웃으며 말했다.


“흠, 그래 맞아 마호도 함께.”


코하네의 말을 듣는 순간,

그냥 내뱉은 수상이란 단어가

정말 적절했다.

마호도 그녀를 보기 위해

수상한 우연을 만들며

마주쳤으니 말이다.

저놈은 정말이지 자신과도 같은

질긴 감정일 거야, 라며

의심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쳇.”


중년의 바텐더는 모르는 일이 없다.

코하네가 주문한 진 토닉을

내밀며 검지를 뻗으며

빛 도는 갈색 눈을 가리켰다.

검지를 본 갈색 눈은

바텐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드세요 작은 아가씨,

저 친구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긴 하지만

좋은 사람인 건 분명하죠!”


바텐더의 말을 즉,

선물한 칵테일은 내치지 말아요,

라는 뜻일 것이다.

마호는 아예 고개를 돌려

빛나는 갈색 눈이

앉아 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건조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어떻게 알아요? 그걸.”


코하네가 곤란한 목소리로 핀잔을 준다.”


“마호.”


“괜찮아요, 제 귀는 이곳,

모든 곳에 있답니다, 하하하.”


마호는 바텐더의 웃음소리마저

음흉하게 들었다.

국숫집에서 그를 마주한 기억은

뜨거운 보리차처럼 데일 듯 강렬했다.

더욱 그가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하다.

코하네의 말이 귓속에서

계속해서 맴돌았다.


‘우연치곤 너무 길어.’


하즈키는 재킷 안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무언가 열심히 적어 내려갔다.



『1976년, 10월 たつまき(다쯔마끼)에서

마네키네코, 백색 원피스,

남색 카디건, 벌거벗은 삭발 위 푸른 핏줄,

뭉툭하고 더러워진 백색 단화,

활을 잡아당긴 웃음,

뾰족한 어깨

그리고 짝사랑에 빠진 한 남자,

그리고 또한 남자.』



하즈키는 코하네와 같은

진 토닉 한 잔을 더 주문하며

중얼거린다.


“술이 마르지 않기를.”


그들은 들리지 않는 대화로

입을 벙긋벙긋 속삭였다.

남자는 절망적이고

여자는 마치 해탈한

부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웃음이 말랐던 하즈키는

그들을 보며

연신 훗, 훗, 하며 웃었다.


겐토는 늦음의 미안함을

괜한 비아냥거림으로 넘어가려 한다.


“대체 술집 이름이 たつまき

(맹렬한 회오리)가 뭐야?”


“늦게 와서 무슨 불평이 그리 많아?”


겐토가 하즈키의 어깨를

늘 그렇듯, 툭 치더니

바텐더의 길게 늘어진

머리 꼬랑지를 보며

또 한 번 비아냥거렸다.


“이야, 희한하다.”


“시끄러워.”


“저기! 여기 맥주 좀.”


겐토는 꼭 말이 짧다.

바텐더가 넘겨준 물수건은

이미 겐토의 이마와 목덜미까지

탐닉하는 중이다.

얼마나 갈증을 참았는지

긴 잔의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크아, 좋다.”


“쇼는?”


“이제부터 집 얘기는 사절이다.”


“불똥 튀지 않게 해.”


겐토가 이를 드러내며

아랫입술을 무는 시늉으로

하즈키에게 눈을 굴렸다.

눈치 빠른 바텐더가 다가와 말했다.


“위스키로 드릴까요?”


“오호, 빠르시네,

그냥 맥주 한 잔만 더.”


순식간에 담아 온 맥주는

그야말로 흰 거품을 찰랑이며

아이스크림처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나저나, 일은?”


“이틀 후, 출근.”


“오호, 이야 의외로 적응 빠르다?”


“훗.”


“뭔 데?”


“단순.”


“응? 정확히 말해 이 자식아.”


“짐꾼.”


“뭣?”


“가장 빨리할 수 있는 일 중 하나.”


하즈키의 눈은

연신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

그들에게 박혀 있는 중이다.


“운전?”


하즈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내 주제에 안정적인 일 찾긴

시간이 필요하니까.”


겐토가 등을 툭툭 치며 때아닌 칭찬이다.


“철들었네.”


“그나저나 피곤해 보인다 너.”


겐토의 한숨이 길게 뻗어 나온다.


“후우아, 그렇다고

이런 날을 놓칠 수야 없지.”


금세 비운 맥주잔을 본 바텐더가

빠르게 다가오며 말했다.


“위스키로 드릴까요?”


겐토가 말했다.


“이야, 발바닥에 바퀴가 달렸어요?

정말 빠르시네.”


바텐더가 눈을 찡긋하며

돌아선 순간 머리의 꼬랑지가

팔랑거리며 교태를 부렸다.

겐토는 바텐더의 꼬랑지를

가리키며 입을 채 막지 못하고

하즈키와 눈을 마주친 채

소리 없이 웃었다.


“크큭, 젠장 너무 매력적이잖아.”


바텐더 귀에 들릴 정도의

소리에 하즈키는 난감했지만

자기도 웃음이 터져 나와

눈물까지 고인 상태였다.

눈치 빠른 바텐더가 모를 리 없었고

바텐더는 일부러 더

겐토에게 눈을 몇 번이고

찡긋하거나 다리를 일자로 걷거나,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참을 웃던 겐토는

위스키를 들이켜고 담배를 꺼내 문다.


“이츠키한테 연락받았다.”


“그래?”


“넌?”


“뭐가?”


“괜찮아?”


하즈키는 손바닥을 내보이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난, 그저 마나츠만 잘 살면 돼
정말 그렇게 되길 바라

이츠키는 좋은 사람이니까”


“자식, 양심 있네.”


“아마 식구들끼리 조용히 지나갈 거야.”


겐토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야지, 안 그래도

이츠키 마미가 마나츠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더라...
한데 반은 돌아 있는 우리가 가?

난장 되지 큿.”


“그렇지.”


“어쭈, 동경에 오더니 진짜 철들었다?”


하즈키가 잔에 남은 얼음을

와그작 씹어 먹는다.


“시끄럽다.”


“헤헤, 마나츠 말로는

나중에 한 번 모이자,

그림이 아주 좋을 거라고 웃더라.”


하즈키는 그녀 특유의 농담 섞인

말투가 생각나 웃음이 배시시 나왔다.


“흣.”


진한 진의 노간주나무 열매의

향이 가득히 퍼져 나간다.

마호가 마지막 담배를 꺼내 물고 텅,

빈 담배 까치의 옷을 구겨버렸다.

그걸 본 코하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더 필요한 거야?”


“아니, 괜찮아 이 요물 덩어리.”


“응.”


코하네가 눈을

반달로 말아 쥐며 말한다.


“이거, 내가 마실 게.”


“독한데.”


“괜찮아.”


코하네가 마호의 잔을 들어

입술에 갖다 댄다.

한참 얼음 속에 파묻혔지만,

쓴맛은 여전히 강렬했다.


“흐업, 으…”


“그렇지, 이건 마시면

그 소리가 나와.”


“힛, 쓰다,

정신이 더 맑아지는 것 같아.”


마호가 그녀의 새끼 손만 한

코를 잡아당긴다.

그 순간 코하네의 눈은

하즈키와 마주쳤고

자신도 모르게 마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내가 왜 이러지.’


코하네는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다.

마호는 그녀의 행동에

민망함이 가득했고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말로 대신했다.


“엇, 미안.”


하즈키의 곁에

덩치가 커다란 남자가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 사람 또한 낯이 익었다.

코하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마 끝까지 올라갔다.


“엇, 마호 그 사람이야.”


코하네가 눈을 마주하고

있는 곳을 함께 바라본다.


“뭐가?”


“쇼.”


“응? 쇼오?”


코하네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린다.


“응, 쇼 아빠.”


마호의 눈도 덩달아 커졌다.


“친구인가…”


“그 동네에서 봤으니까,

뭐 이제 놀랍지도 않아.”


마호가 하즈키의

목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돌렸다.

겐토는 그녀의 머리통만 보아도

코하네임을 알아챘다.

겐토가 말했다.


“와우.”


마호가 봤을 땐

반가운 척하는 너스레로만 보였다.

겐토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올 것처럼 굴었지만,

코하네는 마호를

배려하려는 생각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호, 인사만 하고 올 게.”


마호는 그녀답지 않은

오지랖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


마호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코하네는 이미 그들 앞에서

흰색 원피스를 펄럭였다.

벌거벗은 그녀의 머리통에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것을 본다.

한숨이 길게 늘어졌고

눈치 빠른 중년의 바텐더는

마호에게 서비스라며 술을 권했다.

이대로 달콤한 서비스를 쭉,

즐겼다가,

코하네를 놓치거나

뺏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최대한 코하네를 시선에서

놓지 않으려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녀의 뒤통수는

마호가 자주 보지 못했던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겐토는 다가온

코하네의 머리통을 보자마자

단숨에 그녀를 알아봤다.


“앗, 류우?”


알아들을 수 없는

여러 단어의 탄식을 내뱉는

겐토의 행동에

하즈키는 코하네와 겐토를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하다.

코하네는 공손히

허리를 굽히는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벌거벗은 뒤통수와

새하얀 목덜미가

하즈키의 심장을 다시 요동치게 했다.


“안녕하세요, 겐토 씨.”


“네,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이야 핫.”


코하네는 대답 대신

눈을 반달 모양을 만들며 웃었다.


“정말 반가워요.”


겐토의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매너 좋은 신사처럼 굴었다.

코하네의 얼굴이

발개진 게 분명하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 그땐 늦은 시간에

실례가 많았어요.”


하즈키는 겐토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무슨 영문인지 계속 들어 볼 작정이다.


“에이, 무슨 실례는요.”


겐토는 벅벅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긁적였다.


“꼭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땐 정신이 없어서.”


하즈키는 곁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코하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겐토가 하즈키의 얼굴을 보며

의심스러운 눈을 하며 말했다.


“별말씀을,

일행이 없으시면 함께 하시죠?”


“말씀 감사해요, 하지만.”


그녀는 귀퉁이에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마호를 가리킨다.


“아… 네.”


“나오코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그럼.”


코하네는 겐토를 한번,

하즈키를 한번 번갈아 보며

눈인사도 잊지 않았다.


“네, 그래야죠,

언제든 방문은 환영입니다.”


새하얀 원피스가 날리더니

싱그러운 솔잎 향을 풍기며 사라졌다.

겐토가 식은땀이 흘렀는지

머리를 닦으며 숨을 크게 내쉰다.


“후, 와아.”


하즈키는 여전히 저만치 가버린

그녀의 원피스 밑자락을

탐색하고 있었다.

넋이 나간 하즈키의 어깨를

툭, 하고 건드린다.


“너 뭐야?”


“응?”


“왜 그리 넋을 빼?”


“근데 아는 사람?”


겐토가 다시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후우, 나오코 친구,

아… 이상하게 저 여자를 보면

식은땀이 흐른다니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강렬한 뭔가가 있어

불편할 정도로.”


하즈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나오코랑

연락하고 지내는 줄은…”


겐토의 얼굴은 다시

장난기 많은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뭔 소리야, 너도 아는 사람?”


겐토 앞에서 바텐더가

머리 꼬랑지를 흔들며

물수건을 내밀었다.

냉큼 받아 들어 목덜미까지

싹싹, 닦아낸다.


“뭐, 나고야에서 봤지.”


“무슨 말을 뭉텅 거리냐?

수상한 새끼.”


닦아낸 곳곳마다

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 여자는 좀

너무 음울하고 특이해.”


하즈키가 갑자기 껄껄거리며

크게 웃었다.


“너한테 나, 자주 듣던 소리 같은데?”


“그러네 풋.”


아무래도 중년의 바텐더는

겐토가 맘에 든 모양이다.

바쁘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앞에 서서

겐토의 행동을 곁눈질하며 지켜본다.

겐토는 갑자기 무슨 생각에 빠졌는지,

입에서 쩝,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음울함이 하즈키와 비슷한

코하네를 보고 술을 입에 털어 넣은

하즈키를 보았다.

나오코가 그녀를 가족과 같다며

아낀다는 단어를 쓴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들은 달랐지만,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마치 목구멍 안에도

식은땀이 흐르는 것처럼

짠맛이 났다.

바텐더가 건넨 위스키를

단번에 넘겨버렸다.


“크아하.”


“겐토, 기억나?

예전 내가 말했던 여자.”


“네 입에서 여자에 대해서

말한 건 딱 한 사람밖에 더 있냐?”


겐토는 앞에서 왔다 갔다

부산스럽게 구는 바텐더가 꽤,

눈에 거슬리는 중이다.

하즈키가 말없이 눈짓으로

코하네를 가리키며

음울하게 웃으며 겐토를 바라보았다.


“에이, 설마.”


겐토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하즈키의 뒤통수를 쳤다.


“앗,”


“아니지? 장난하지 말고 이 자식아.”


하즈키의 눈은 오랜만에

긴장감이 보였고

더욱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 이 자식 진짜네?”


하즈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오 세상에,

그럼 정말 저 여자라고?”


하즈키는 뒷말을 예상했는지

겐토의 말을 끊는다.


“그만 좀 물어.”


“와우, 그래서?”


겐토는 내내 기막힌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다그치는

겐토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 마네키 맞네 맞아

똑같네, 다시 보니 네 말이 맞아
와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지?”


“우연인지 운명인지,

몇 번째야.”


“오호, 그래? 왜 말 안 했어?”


“풋, 우연일 수 있어서.”


“이 자식, 음흉하게 웃기는

그래서 연애라도 할 거야?”


하즈키는 그저 미소만 짓는다.

겐토가 자기보다

덩치가 커다란 마호를

흘긋거리며 말했다.


“야, 저 사람 덩치를 보고

생각 좀 해, 상대가 안 돼.”


“주인공은 마네키야.”


“너 진짜 진심이네?”


“안타깝지만,

여자 주인공은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


하즈키의 말은 정말 그럴듯했다.

덩치 큰 남자의 표정은 안절부절,

급하거나 근심이 가득한 것에 비해

코하네는 그곳에 없는 뭔가를

간절하게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텐더는 하즈키의 말을 들었는지

공감한다는 듯이 검지를 보였다.

손가락마저 여성스러움이

가득한 모습에

겐토는 할 말을 잃고 웃었다.

바텐더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한 번 겐토에게 윙크하더니

기다란 꼬랑지를 날리며 사라졌다.




코하네는 술기운에

머리통까지 발개진 모습을 가리려

검은색 야구 모자를 꺼내어

머리통에 얹는다.

마호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흰 원피스에 남색 카디건을 걸치고

검은 모자를 쓴 그녀,

고무로 된 운동화 밑창은 거뭇거뭇,

작은 얼굴에 맞지 않은 모자는

얼굴의 반을 가리고,

종알거리는 그녀의 입술만 보길 허락한다.

검은 모자에 어울리지 않은

꽃무늬 스카프,

쌀쌀한 바람만 아니라면 그는,

빼앗고 싶은 모양이다.


“자꾸, 그렇게 내 몸에

구멍이 날 정도로 보고 웃을 거야?”

마호의 웃음이 멈췄고,

두 팔로 몸을 감으며

쭈그리고 길 가장자리에 앉았다.

코하네도 따라 앉아

그를 마주 보고 웃었다.


“웃지 마.”


마호의 단호한 목소리에

금세 뚱해진 그녀다.

오늘따라 웃어도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 그가

마음에 걸린다.


“마호, 난 괜찮아 정말.”


아마도 문두스를 염두하고

하는 말일 것이다.

코하네는 그의 마음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게 분명했다.

마호가 고개를 흔들며

코하네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살포시 기댄다.

마호의 긴 팔이

코하네를 끌어안았다.

무릎과 무릎이 서로 맞닿았다.



“난, 너에게 뭐야?”


코하네는 고민할 시간이 없다.


“세상에 있는 단어로는 설명 못 해.”


그제야 마호는 그녀를 놓아준다.

벌떡 일어나 쭈그려 앉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가자.”


“으응.”


새털처럼 가벼운 코하네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자기의 손에서 새어 나갈까,

날아갈까, 틈이 벌어지지 않게

힘을 주어 잡았다.


코하네의 집 앞에 다다르자

마호의 표정은 말할 수 없이

절망적이어서

그녀는 할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코하네는

자기 몸에 구멍이 날 것만 같았다.

마호는 여전히 가만히 보고

서 있기를 진행 중이다.


“마호.”


“들어가.”


“이상해, 다신 못 볼 것처럼.”


“이젠, 매일 보지 못하니까."


마호가 코하네의

코를 잡아당길 때처럼

그녀도 꼭, 같이

그의 코를 잡아당겼다.

만만치 않은 높이에

그녀의 발꿈치가

하늘에 닿을 정도다.


“읏챠.”


마호가 그녀의 모자를 빼앗았다.


“우선 난 하루 종일 잘 거야.”


빼앗은 모자를 다시

코하네의 머리 위에 얹는다.


“그래.”


마호는 차갑고 쓸쓸하게 남은

자신의 손을

주머니 속으로 감추고

두 걸음 뒷걸음질 쳤다.


“들어가 코하네.


“음, 오늘은 내가 널 봐줄 거야,

먼저 가.”


마호의 미소가

그녀의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한다.


“그럴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간다.”


웬일 인지 마호는

그녀의 고집을 꺾지 않고

돌아선다.


“잘 자 마호.”


마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더 오래 더 자세히 바라봐 줘,

진짜 내가 느껴져?’


몇 번을 뒷걸음만 치다

순간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 속으로 코하네가 다시 한번

인기척 하지만 어둠만 메아리칠 뿐,

마호의 대답은 없다.


한참 동안을 가로등 불 빛 아래서

아스팔트 바닥을 이유 없이

쓸기를 반복했다.

운동화의 바닥이 흙과 마찰하여

자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코하네가 내는 소리가

메아리치듯 똑같이 들렸다.

마호일 거란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날 벌레가 코하네의

귀 주변을 윙윙거리며 날았다.


“마호?”


자박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맞은편 가로등 밑에 그가 서 있었다.

구깃구깃한 리넨 느낌의

아까 그 재킷이다.

그는 한껏 재킷의 깃을

귀가 닿을 듯, 말 듯하게 올려 세웠다.

그의 좁은 어깨가

더욱 좁아 들었다.

그를 비추는 가로등 하나,

그녀를 비추는 가로등 하나,

그곳에 주인공은 단둘, 뿐이다.


“엇,”


그는 이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네, 또 보네요 자꾸만, 계속...”


코하네는 손에 든 모자를

다시 푹 눌러쓴다.

하즈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도 몸도 머뭇거릴 뿐이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팡팡거려, 들킬 것 같다.


“저기, 저기가 제 집이에요.”


하즈키가 그녀의 집 건너편

맨션을 가리켰다.

코하네는 가까운 곳에

그가 살고 있었다는 것에

얼굴에 붉어졌다.

정말 흔하지 않은 우연은

자꾸 그녀가 어색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아, 네.”


코하네의 하얀 얼굴이

붉어진 것을

어둠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저분 이름이 마호 씨군요?”


“네? 네.”


코하네의 목소리는

어눌하기 짝이 없다.

하즈키가 말했다.


“미안해요, 들으려 한 건 아니고,

집을 가려면 이길 뿐이라서.”


코하네는 언제부터 있었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궁금하지도 않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겐토 씨는.”


“딱, 쓰러지기 전까지 마시더니
집에 들어간 적이 없는 놈처럼,

집으로 사라졌어요.”


코하네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은

세월이 흐른 뒤,

하즈키가 코하네를

추억할 때마다 떠올리던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가 된다.


붉어진 얼굴은

수그러들 줄 모르고

갑자기 튀어나온 딸꾹질은

더욱 주책을 떨었다.

불청객 딸꾹질이

코하네의 얼굴을

아래위로 튕겨 나가도록 했다.


소리 내지 않으려 할수록

그녀의 어깨가 호흡과 소리와

동시에 들썩인다.

고개를 들고 그를 보지 않아도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국수 먹으러 갈래요?”


코하네는 우리,라는 단어에

단 1초도 안 되게

다시 주책스럽게 대답을

고개로 대신 끄덕, 불쑥해버린다.

코하네의 빠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가리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앞으로 먼저 걷다,

뒤를 돌아 그녀를 기다리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웃다,

또다시 앞서 걷는다.

하즈키의 발은 신이 나서

제자리서 촐랑댔다.

뒤따라 걷는 그녀도

함께 발이 촐랑거렸다.



코하네는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에 뇌가 마비된 느낌이었다.

감정대로 그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생각이 번뜻 스쳤다.

오래전 꿈에서

그를 본 기억이 났다.


낡은 코트를 걸친

하즈키의 형체를

잊을 수가 없었고,

며칠 동안 그를 꿈속에서

봤는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수도 없이 나타났다.

강렬했던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감정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런 감정이

달콤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

마치 기분 좋게 걸었던 곳을

다시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코하네도 하즈키도

이미 이런 감정이

시작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굴었다.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그들은 계속 미소 짓는다.


어두운 골목에서

빠져나온 달빛이

그들을 따라다니며 비춰준다.

빛을 따라 그녀는

더욱 촐랑거리며 걸었다.

그들이 지나간 거리에

바람에 날린 꽃무늬 스카프가

아스팔트 위에 또로록 남았다.


출처, 이별 그 뒤에도

하얀 백합을 들고 있던

그의 손은 아스팔트 위

스카프를 손에 꼭 쥐며

백합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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