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와 흙
세상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규모 7.0에 달하는 강력한 지진이
일어난 후부터라고 뉴스에서 떠들어 댔다.
지진과 금환일식
(달이 태양의 한복판을 가리고 둘레를 가리지 못하여
태양이 고리 모양으로 보이는 현상) 이 동시에 일어났고
이 징후를 종교인은 종교적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고 희망을 갈망하게 만들고
신의 영역이라며 그들의 정신을
흐트러뜨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나약해졌다.
지진은 엄청난 싱크 홀을 사방에 만들어 놓았고
그야말로 안전지대라는 곳이 무색할 정도로
평지는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발현하는
기름을 머금은 강한 불씨는 모든 책과 옷을
태워버렸으며 타고 남은 재는
온 지구를 덮고 날아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구에 종말이 찾아온 것이라고 쉬쉬했고,
불안감은 하늘을 찌르고 서로를 해하고
생명에 대한 이기심으로
서로의 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굶주림으로
하루에도 많은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이었다.
그 세상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먹을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면
이 사실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각 나라에서 방법을 찾을 겨를도 없이
초록색을 입은 숲과 잔디는
순식간에 썩은 음식물로 변했다.
흙이 없는 모든 곳에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고기 덤불에 묶여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묶인 덤불을 빼내기 위해
고기 덤불을 씹고 뜯어먹어야 한다.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자라나는 고기 덤불은
결국 숨구멍을 막아버리고
그렇게 고깃덩어리의 뿌리가 되어
괴물이 되어간다.
파티가 막 끝난 후, 여자가 뒤뚱거리며
남은 음식을 모아 버리기 시작했다.
늘 음식을 쓸데없이 많이 차려놓고
버리는 게 불만인 여자의 남편이 말했다.
“여보, 내가 말했잖아?
이건 낭비야,
분명 음식이 남을 거라고 했잖아?
하, 맙소사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군.”
여자가 말했다.
“부족해서 사람들 앞에서
허둥대는 것보다 낫죠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어요.”
남편은 또 한 번 채근했다.
“지금뿐만이 아니야,
당신은 평소에도 낭비하는 습관이 있어
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허다하다고!”
여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제발 그만해요!”
여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모아 놓은 음식물을
개수대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여자는 콧구멍을 손으로 막으며
주방 뒷문을 열고 창문도 열었다.
음식물을 갈아내는 개수대 밑
기계 소리가 점점 소음으로 변한다.
남편이 말했다.
“소리가 이상한데?”
“아, 이런 또 막힌 건가?”
여자가 개수대를 내려보며 기웃거렸다.
그때 펑,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개수대 밑의 음식물이 마치
폭탄처럼 위로 뻗어 올랐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얼굴 곳곳에 튄 음식을
닦아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 중이다.
“맙소사, 이게 무슨.”
남편이 소리친다.
“맙소사, 여보 피해!”
개수대에서 뻗어 나온 나무뿌리 같은 덤불이
삽시간에 튀어 올라 여자의 허리를
낚아채듯 감아올렸다.
남편이 달려갔을 땐 이미
여자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 맙소사.”
“으아악 여보 살려줘.”
남편은 뒷걸음질 치며 집 밖으로 뛰기 시작했다.
지역의 경계를 나타내는 푯말과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경고성 글이 적힌
울타리와 화살표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이곳은 안전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안내문도 왠지 모를 공포스러움을 더욱 자아내듯 했다.
유난히 다른 집보다 울타리와 대문이
높이 뻗어 있는 집, 부모님은 안전이라는 단어를
쉴 새 없이 뱉으며 딸 진과 민을 안심시켰다.
아빠가 말했다.
“흙이 있으니까 괜찮아
잘 봐 흙만 보고 흙만 생각해
흙을 밟고 있다면 안전하다는 거야
색깔 있는 식물을 조심해
특히 고기 덤불을...
자, 기억할 수 있지?”
진과 민은 매일 연습하고 또 기억해야 했다.
부모님은 거의 잠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집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
흙을 퍼 날랐고 밖과 연결된 모든 구멍을
흙으로 막아야 했다.
정원의 푸름을 비치던 나무 두 그루는
이미 목이 잘려 나갔고
엄마가 애지중지 꾸민 정원의 꽃은
모두 칼로 배인 채, 흙으로 덮어 두었다.
그날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왔다.
부모님이 애써 덮어 놓은 흙이
반복해서 씻겨 내려가고 있었고,
그 광경은 위험, 이라는 것을
자꾸 인식하게 만들고 있었다.
집 안에서 그것을 불안하게 보고 있는
진과 민에게 아빠가 손짓했다.
결국 엄마까지 집 안으로 대피하며
안전을 위한 작업은 온전히 아빠의 몫이 되었다.
그칠 줄 모르는 비는 정말이지 무섭게 내렸다.
해결 능력이 뛰어난 아빠는
아주 넓고 커다란 방수포로 흙 위를 꼼꼼히 덮었다.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무거운 돌을 얹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때 누군가 다급하게 아주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문 좀 열어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아빠가 대문 앞에 귀를 대고
소리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제발 부탁입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아빠가 다시 좁게 벌어진 틈 사이로
상대방을 확인했다.
아빠가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이어 억.”
남자가 아빠와 함께 벌어진 그 틈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두려움이
가득한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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