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는 예민하지 않았다.
<완결>
새벽 다섯 시 반, 어김없이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잠이 들기 전까지의
어제를 기억해야 한다.
오늘따라 몸이 무겁다.
아니다. 어제 내 몸은 가벼웠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주 빠르게 내 기억은
통째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와
통째로 내 심장을 갉아먹는다.
이제 내가 안 금서가 맞는지
나는 또 다른 안 금서가 아닐까,
라는 의문 속에 빠지기 일쑤다.
“아, 홍주, 기록장.”
나는 내가 대견하다.
홍주의 이름과 기록장을 기억했다.
어슴푸레한 색의 공기를 느끼며
손을 뻗어 기록장을 찾았다.
잡히는 건 플라스틱 느낌의 것,
차가운 원단의 말캉한 느낌뿐,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벽을 더듬었다.
나는 생각했다.
형광등의 스위치 위치까지
이젠 생각해야 한다니
처참한 기분이 든다.
대체 황 박사의 치료는 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을까,
나를 포기한 그를 원망했다.
잠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형광등 스위치 위치를 헤매는 난,
왜 황 박사를 기억하는 걸까?
달칵, 형광등이 켜졌고
전신 거울 속으로 비친
누군가를 마주하자 화들짝 놀랐다.
황 박사를 본 듯했지만
휴, 안 금서 바로 나다.
“앗.”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모든 것이 하얗고 깨끗했다.
넓은 유리창 너머로
초록색의 푸른 것들과
파란색의 수평선이 보였다.
이곳은 내 집이 아니다.
홍주의 집도 황 박사의 휴게실도 아니다.
그렇다고 성심의 뜰도 아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또 하나의 장소는 어딘가?
“대체 이게 무슨...”
윤 대리의 보라색 목덜미와
조각난 살갗의 흔적,
난 지금 안전한 것인가?
어제는 과연 어제였을까?
윤 대리는 어제의 사람이었을까?
급히 기록장을 찾아야만 했다.
“휴우, 찾았다.”
녹음기와 기록장은
한 곳에 포개져 있었다.
나는 빠르게 마지막 기록을 찾아
『2025. 8. 5.』
말이 안 된다.
지금은 2021년이다.
나는 분명 2021년 봄을 기다리고 있었고
겨울이 채 지나가지 않은
눈 쌓인 지저분한 거리를 걸었다.
황 박사가 내게 건넨 처방 약은
분명 2021년이다.
그렇다면 내 의심대로 홍주는
그날 그년으로 남았던 것일까?
그때의 홍주는 망상일까.
설마 홍주는 이 세상에 남았을까.
기록장의 마지막 부분부터
거꾸로 읽어 내렸다.
『입원한 지 4년
금서 씨는 조금씩
기억을 되찾고 있다.
하지만 일부 무너진 기억과
살아난 기억의 충돌은
금서 씨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금서 씨 곁에 있고
금서 씨도 그렇다.』
나는 날짜를 확인하며
21년으로 돌아갔다.
『2021년 4월
금서 씨가 오랫동안 정신을 잃었다.
벌써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다.
황 박사는 쇼크 상태로
오히려 수면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했다.
금서 씨는 거의 살아있는
시체처럼 잠들어 있다.
황 박사의 권유대로 난
오랫동안 금서 씨의 곁을
잠시 비워둘 예정이다.』
『2022년 7월
드디어 재판부가 판결을 내렸다.
피고의 행위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적 방위, 또한
정신적 질환으로
사리 분별 능력 또한 부족했다.
따라서 이 사건은 형법
제10조 및 제21조에 의거하여
정당방위로 인정하며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치료감호 중인가?
여덟 살 그때 내 기억을
송두리째 뽑혔던 그때처럼.
달칵, 달칵
문고리를 비틀었다.
방 안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창문은
내 답답함을 해결할 리 만무하다.
예상대로 문은 잠겼고
밖의 소리도 고요하다.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누군가 이 문을 열고
분명 들어설 것이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아, 순간 떠올랐다.
분명 어제의 일이다.
황 박사가 내 손에 약을 쥐며 신호했다.
그의 손가락과 나의 눈이 겹쳐
하나가 됐던 것처럼
나는 로봇처럼 삼켜야 한다.
한데 내 다른 뇌의 신호는
그것을 거부하라 명령한다.
내가 황 박사의 말을 거부한다?
이 부정적 명령은
자꾸 황 박사를 밀어내려 했다.
대체 황 박사의 이름을 떠올리면
나오는 이 부정적 명령의 이유가 무엇일까?
기억은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수면제도 과다지만,
안정제도 과다야,
이 환자 괜찮은 거야?”
“어쩌겠어, 하라면 해야지.”
등 뒤에서 요란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손길에 감은 눈을
질끈 움직였다.
그때 여자 간호사가
내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엇, 안 금서 씨?
일어나셨어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 때인 건 진짜 잘 아시네.”
나는 눈을 뜨고 바로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어제도 이 시간에...”
남자 간호사가 말했다.
“네, 꼭 이 시간에
맞춰 일어나셨죠?
매일 꼭 같은 질문을 하시네요?”
그들은 마치 나의 개인 비서라도
되는 것처럼 밥상을 차리고
마지막으로 물까지
완벽히 세팅한 후
약봉지를 늘어놓았다.
여자 간호사가 말했다.
“자, 오늘 약이에요
여기 숫자 순서대로
드시면 됩니다!
자, 이건 식전 알약,
이것 먼저 드세요.”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어제도 나는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약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생각을
나는 분명 어제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어제의 나는 내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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