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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작은 사회

2. 나는 오줌싸개

by 금봉


난로를 방 안 중간에 두고 우리들은 다닥다닥 붙어 잔다.

내 동생 우성이는 네 살, 언니 우정은 여덟 살, 나는 원치 않았던 낀 중간, 여섯 살이다. 어쩜 터울도 그렇게 딱딱 잘 맞췄는지 우린 모두 정해진 두 살 터울이다.


나의 언니는 그야말로 우리 둘에겐 절대적인 군림자다.

뭐, 엄마가 더 큰 권력을 휘두르기는 하지만 나의 작은 사회에서는 우정이가 역시 일등이다.

그리고 난, 언니에게도 착한 동생이 되어 있었다. 물론 설명할 필요도 없이 동생에게도 그렇다.


그냥 쉽게 말하자.


난 누구에게나 그랬다. 하지만 속은 종류도 모를 것들이 득실거리는 악마다. 나의 속 마음이 그렇다는 것은 아마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왜냐면 난 복수를 하지 않았고 이라이자처럼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과 머릿속은 순전히 악마로 가득했었다.


언니가 아마 이 소리를 들었다면 나를 비웃으며 한 마디 했을 거다. 지랄한다, 라고 말이다. 나는 아마도 지금부터 지겹도록, 그 지랄한다, 라는 말을 먹고 자랄 것이다.


추운 겨울밤, 난로를 중간에 두고 이불을 칭칭 감고 자는 그날 밤, 나는 또 그렇게 지랄을 했다.


그래 또, 그리고, 라고 얘기를 해야 이 단어가 미래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아찔했던 순간을 함께 했던 나의 소변 습관 말이다.

난 그렇게 또 오줌을 쌌다. 또, 말이다.


나는 분명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자기 전 소변을 두 번이나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형광등이 꺼지기 직전 다시 한번 나오지 않는 소변을 쥐어짜듯 보았다. 그런데 이불에 오줌이라니, 엄마는 또 기가 막히고 분노가 막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럴 땐 그냥 넋을 놓아야 한다. 그래야 상처를 덜 받는다.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정말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바보 천치, 라는 식의 단어가 나열된다. 중간에 욕이 섞이는 건 물론이다. 내가 상처받을 시간도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사실,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 봐도 난 바보가 맞다. 귀를 데인 사건도 그렇고 나는 매사에 내 의견을 말하기를 꺼렸다. 아니 꺼린 게 아니라 말을 못했다. 착한 아이라는 오명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혼날까 봐? 아니,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그건 아니었다.

그날 밤도 여전히 무서웠다. 내게 밤, 이란 단어는 귀신, 어둠, 또는 극한의 공포, 라는 뜻으로 똘똘 뭉쳐 있다.

나는 거실에 하얀 형광등이 켜져 있을 땐 안도감에 빠져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지만 그것이 검게 변한 이상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녹슨 기계가 되어 버린다.


뭐가 그리도 무서웠을까? 때론 나의 머리카락을 말아 놓은 아주머니의 모습이 꿈에 나와 나를 괴롭히거나 전설의 고향 따위에서 얼핏 본 귀신이 나를 잡아먹는 꿈에 늘 시달렸다.


나를 고등학교 때까지 못살게 굴었던 장면은 여 곡성이라는 영화다.


아, 난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늦은 새벽녘 까지도 눈이 덩그렇다. 차마 엄마에게 보이지도 않은 귀신이 보일 것 같고 나를 죽일 것 같다는 얘기를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지랄, 은 계속되었다.


나의 아빠는 굉장히 큰 키에 쩍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근육을 가진 멋진 사나이다. 아주 남자답고 정직하기로 소문난 사람, 그렇게 사회에서 늘 인정받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유년 시절, 아빠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거나 우리 셋 중 기억력이 가장 좋은 언니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난 참, 아빠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였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초등학교를 가기 전 까지의 기억이 멈추어 있었다.


사람이 참 못났다고 느끼는 게,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은 아주 섬세하게 남는 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 엄마와 아빠는 참 많이 다투었다. 그래서 일까? 우리들은 부모님처럼 그렇게 맨날 싸움 속에서 허덕거렸다.


엄만 동생과 싸우는 나를 보며 어린 동생이잖아, 라고 말했고 언니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나를 보고도 그러게 왜 언니한테 까불어? 라고 말했다. 우리에겐 왜 싸우냐, 혼나봐야 정신 차리겠냐, 라는 말을 무슨 물 마시듯 하면서 어른들은 늘 그렇게 싸운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그때 마다 내 속의 악마가 말했다.


‘엄만 왜 아빠한테 까불어? 아빤 왜 여자와 싸우는 거예요? 네?’


라고 말이다. 정말 그렇게 내가 말했다면 난 아마 그날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아빠는 그날도 아저씨들을 잔뜩 몰고 집으로 왔다. 이미 그들은 잔뜩 취한 것 같았다. 왜냐면 아저씨들이 말하는 마누라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우리에게 주머니 속에서 보랏빛 지폐를 꺼내어 각각 한 장 씩,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취기가 없다면 아마 지폐 한 장만을 내밀어 맛있는 것 사서 셋이 나누어 먹어라, 라고 말했을 것이다. 술에 취했을 때의 아저씨들이 말하는 마누라의 허락 없이 각각 한 장씩 지폐를 내미는 용기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내일은 월요일이었고 우린 유치원을 가거나 학교를 가야 했기 때문에 일찍 잠이 들어야 했다. 또 그래야만 엄마가 쉬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엄만 괜히 우리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를 아저씨들과 아빠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결론은 이럴 땐, 적당히 눈치껏, 잠이 오지 않아도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우리의 생존본능이다.


엄마는 역시 미간에 내 천, 자를 그리며 술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일들 때문에 음,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음, 그런 일들이 일주일 내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엄마 참,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이불속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면 아저씨들과 그리고 엄마의 웃음소리, 아빠가 한 잔 더 하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의 아빠는 취기가 돌기 시작하면 항상 하던 쇠젓가락을 두 손에 각각 집어 들고 상을 두드리며 엇 박자로 노래를 부른다. 나의 작은 사회가 시작되었던 그 집에서의 쇠젓가락 박자 소리는 양은 밥상이라 꽤 자글거렸다.


나는 이불속에서도 찡긋거릴 정도였지만 모두 그 소리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양이다. 아빠는 기술자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성우나 가수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정말 굵고 점잖은 목소리로 아주 높은 음의 노래까지 완벽하게 불렀기 때문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표정과 강과 약은 말할 것도 없고 밀고 당기기는 과연 선수였다.


물론 나는 그 모습을 보면 양은 밥상을 쇠젓가락으로 긋는 것처럼 자글거리고 오글거렸다. 아빠는 당신의 노래 솜씨를 알고 있었는지 어느 곳에서나 자신 있게 앞으로 나아가 노래를 불렀다. 그런 점을 보면 난 아빠를 닮지 않은 게 분명하다.


자정이 넘은 시간 아저씨들이 한 두 명씩 빠져나가면 엄마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지고 싸움의 시작은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아빠가 무언가 두들기는 쾅, 쾅 하는 소리가 나면 그땐 엄마의 잔소리가 멈추었고 엄마는 조용히 설거지를 하며 잠든 아빠를 향해 듣지 못하는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신세 한탄을 했다.


나는 그럴 때 마다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또, 젖은 요를 보며 생각했다.


‘엄마에게 내가 위로를 할 생각을 하다니, 또 이런 지랄을 해 놓고?...’


그 날만은 아빠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엄마가 나에게 욕을 퍼 붓고 요를 정리할 때 아빠는 심각하게 말했다.


“혼낼 것이 아니라 이유를 알아야 할 것 아니야?
애를 무작정 혼낸다고 되? 그만 좀 윽박질러 이 사람아.”


엄마가 말했다.


“저 지지배는 지가 이유를 몰라요, 말을 안 해 지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휴, 결국 엄마와 아빠는 또 나의 지질맞은 오줌 때문에 아침부터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 언니 우정이 나를 세상 무섭게, 여 곡성에 나오는 귀신처럼, 흰 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흘기며 말했다.


“저 오줌싸개, 아우 짜증 나 너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우잖아?
너 이제 내 옆에서 자지 마.”


나는 엄마에게 욕을 들어서도 아니고 언니가 눈을 번뜩여서도 아니고 청천벽력 같은, 내 옆에서 자지마라는 소리 때문에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는 것 같았다.

동생 우성이는 아직 어려서 엄마 옆에서 꼭 붙어 잔다.

잠을 잘 때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을 거라고는 저 못된 마귀 같은 언니의 곁에서 붙어 자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가끔 언니가 기분이 좋았을 때를 기억하곤 잠에서 깨워 화장실을 함께 갈 수도 있었다. 그날은 어찌나 상쾌한 굿모닝, 인지, 이제 좀 알 것 같지 않은가?


우정이 옆에서 잠을 자지 못한다니,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일주일 세 번 정도 일어나는 일을 나는 이제 매일 겪어야 한단 말인 가, 하느님이 계신다면 저 좀 제발 도와줄 수는 없는 걸 까요?


정말 신은 있다. 나의 기도는 먹혔다. 하지만 이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우린 여느 때처럼 시간을 보냈다. 난 언니가 나와 놀아준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골려 먹었고 우린 아직 아기 냄새가 나는 우성이를 만지작거리며 업어 주기도 하고 방실거리는 엉덩이를 토닥거리기도 했다.

엄마는 여느 때 보다 더 일찍 저녁을 준비했다.


다 차려진 밥상에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고 있을 때 엄마는 외출을 할 때 마다 하는 화장을 했다. 워낙 붉게 바르는 입술을 아빠가 너무 싫어했기 때문에 엄마는 늘 아주 옅은 보랏빛이 감도는 립스틱을 발랐다.

거기에 짙은 청색 투피스를 입고 목에는 포인트 스카프도 잊지 않았다. 짧은 머리카락이었지만 엄마는 정말 예쁘고 청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엄마가 화가 나면 육두문자가 먼저 나오다니, 아마 남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하긴 엄마가 늘 하는 말은 그랬다.


“난 원래 안 그랬어, 다 니들 키우느라 이렇게 된 거야.”


우리를 키우느라 육두문자가 늘었다는 말은 잘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말로 애써 이해해 보려 했다. 엄마가 가방을 챙기며 언니에게 말했다.


“아빠랑 모임이 있어서 다녀올 거야
자, 이건 아저씨네 전화번호야,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하고, 우성이 잘 봐 싸우지 말고, 둘 다 알았어?”


역시 언니는 응, 이라는 대답을 했고 난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때 엄마는 답답한 느낌의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다. 뒤늦게 대답할 걸, 이라는 후회를 해 봤자,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지금 이 시각부터는 군림자의 뜻대로 모든 것이 돌아갈 것이다. 나는 최대한 언니의 비위를 맞추려 애를 썼다. 그래야 오늘 밤 언니 곁에서 잠을 잘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언니는 학교 숙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성이에게 눈을 떼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엄마는 언니에게 우성이를 잘 돌보라는 얘기를 했다. 물론 함께 들었다.

역시 군림자는 예스, 라는 대답만 했을 뿐이다.

그 몫은 내게 돌아왔다.


“응 언니.”


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꼭 군림자에게 언니라는 호칭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잠깐, 지금 본 언니의 눈이 웃은 건가? 그럴 것이다. 웃었던 게 분명하다, 아 난 오늘 언니의 곁에서 잘 수 있을 것이다.


언니는 숙제를 마쳤는지 진짜 숙제를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성이에게 다가와 볼을 꼬집꼬집 한다. 통통한 우성이의 볼살은 진짜 저렇게 만져야 제맛이다. 우성이가 싫다며 언니의 얼굴을 넓적하고 통통한 손으로 밀어 보지만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성이를 못살게 구는 것을 애정으로 표현했다.


하, 내가 아기였을 때도 저 마귀 같은 언니는 나도 귀여워했을 까?

하긴 언니와 나는 두 살 터울이니까, 그럴 리가 없다. 지도 아기였을 테니 말이다.

나는 우성이에게 과자를 하나 집어 주었다. 난 지금도 그렇지만 과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있으면 조금 먹긴 하지만 우린 먹는 것 때문에 싸운 적은 없다.


다만 김치를 먹지 않은 입만 고급인 언니는 편식 때문에 엄마에게 가끔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얻어 맞기도 한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아, 난 또 지금 이렇게 나 키득거리고 있다.

내 속의 악마가 말이다. 낄낄낄.


엄마가 없는 시간이 이제 조금씩 슬슬 지겨워 지기 시작했고 우성이가 귀여운 것도 잠시 귀찮아지고 있었다. 그때 언니는 오백 원자리 동전을 손에 움켜쥐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대체 저 돈은 어디서 났는지, 엄마가 또는 아빠가 줬을 까?

순간 얄미운 생각에 진심을 다해서 언니의 볼을 세게 비틀어 주고 싶었다. 나를 약 올리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저 작고 가늘고 쌍꺼풀 없는 눈은 배시시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곤 동전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하기까지 하며 나를 보았다. 나는 말했다.


“어휴 드러워.”


어디에서 나온 용기인지, 세상에 이런 말이 튀어나오다니, 내가 제정신이 아니다. 이제 좀 더 따뜻했던 이 세상은 끝이 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언니가 갑자기 뭔가 토해내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우웩, 꺼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놀라 왜 그러는 거냐, 고 몇 번을 물었지만 이런 멍청한 언니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는지 목을 가리키며 괴로워했다. 이 멍청한 언니는 동전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것도 오백 원 짜리 동전을 말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들어 엄마가 적어 준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동시에 언니의 등을 미친 듯이 내려쳤다. 그래도 숨을 쉬는 건 어렵지 않았는지 다행히 헐떡거리지는 않았다. 엄마는 소식을 듣자 마자 달려왔고 아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언니를 둘러업고 나갔다.

엄마는 이 상황에 놀라 울고 있는 우성이를 업고 아빠를 따라나섰다.


이미 나는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바다를 만들어 버리려 끝도 없이 뿜어져 나왔다. 엄마는 그런 내가 있는 지도 몰랐을까? 순식간에 아무 말 없이 그들은 사라졌다. 나만 남겨 둔 체.


나는 꽤 오랜 시간을 홀로 집에 남았다. 하얀 형광등이 나를 지켜주었고 색색들을 비춰 주는 텔레비전이 내게 이야기를 건넸지만 나는 두렵다. 만약에 언니가 죽는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정말 큰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똘똘 뭉쳐 형광등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지쳐 더 이상 나오지 않던 눈물이 다시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귀라도 괜찮으니 나를 오줌싸개라고 불러도 괜찮으니 제발 죽지만 말라며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랫배가 적잖이 아릿하고 금방이라도 화장실을 가야 할 것처럼 긴장이 된다.

아마 그때 나의 충격은 처음 겪는 굉장한 천둥과 벼락과 같았을 것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 네 식구는 잠든 우성이만 빼고 모두 지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언니는 벌건 얼굴을 하고 아직 체 마르지 않은 눈물을 닦고 있었다. 군림자는 어깨와 긴 다리가 쪼그라져 보였다.

아빠는 퉁퉁 부은 나의 눈을 확인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괜찮아.”


엄마는 아빠와 다르게 나를 보지도 않고, 우성이를 눕히고 언니와 나를 앉혀 놓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자초지종 묻고 혼내고 또 묻고 혼내는 것을 반복했다.

난, 그렇게 또 혼이 났다. 난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게 혼이 나다 보면 난 정말 잘못을 많이 한 사람처럼 죄의식에 빠져버렸다.


“어떻게 이런 장난을 쳐? 니들이 우성이야? 응?”


다시 멀쩡히 돌아온 언니를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나를 죄의식에 빠져 버리게 내버려 두는 저 마귀 같은 언니가 진짜 미웠다. 만약 나라면 말했을 것이다.

엄마, 우재는 잘못 없어, 내가 혼자 그런 거야, 라고 말이다.


아빠가 엄마의 목소리를 끊어 내지 않았다면 우린 아마 혼이 나다가 빗자루로 맞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언니는 똥을 싸러 갈 때 마다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덕분에 나는 오줌을 지리기도 했고, 배가 아플 땐 똥을 참느라 방귀만 뿍뿍, 뿜어 낼 때도 있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우정이가 멀쩡한 것을 보면 분명 똥으로 동전이 나왔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언니는 정말 운 좋게도 그 큰 동전이 세로로 목구멍을 막지 않고 그대로 내려갔기 때문에 안전했다. 만약 그것이 가로로 목구멍을 막고 있었다면 난 다시는 언니의 작은 눈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정말 다행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얼마 동안은 언니의 곁에서 또는 언니의 팔을 꼭 붙들고 잠이 들 수 있었다. 어떨 땐 언니가 미리 일어나 나와 함께 어둠의 귀신들을 물리치고 화장실을 같이 가 주기도 했다.


아마 우정이는 그때의 나의 눈물에 굉장히 감동을 하지 않았을 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그건 역시 상상했듯이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린 그해 겨울 또 그렇게 성장해 나갔다.


우성이가 유치원에 들어갔다. 멜빵바지를 입고 노란 모자를 쓴 우성이는 정말 귀엽다. 게다가 한 번 미소를 지으면 보조개가 쏙 들어가 아주 예쁜 계집애처럼 보인다. 나는 귀여운 우성이를 보고 있으면 정말 계집애처럼 앞머리를 묶어주거나 엄마의 화장품을 몰래 꺼내 붉은 가루를 우성이의 볼에 발라 놓기도 했다.

이런 놀이는 우성이와 나만의 교감이기도 하다.

아빠의 회사는 없는 것이 없었다. 유치원도 수영장도 병원도 그 커다란 회색 건물들 안에 마치 그들 만이 누릴 수 있는 세상처럼 완벽하게 펼쳐져 있다.


아 맞다! 소비조합을 빼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정말 없는 물건이 없는 지금으로 말 할 것 같으면 대형 마트 같은 느낌? 까지는 아니지만 우리에겐 대단한 곳이었다. 우린 그곳을 소비조합이라고 불렀다. 따지고 보면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물론 집도 회사에서 내 준 것이니 말이다. 언니의 초등학교, 그러니까 그때는 국민학교이다. 그 초등학교도 생각해 보니 회사 앞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정도면 대단한 회사라고 말 해야 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우성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엄마가 새로 사준 갈색 바지가 주황빛과 노란 빛이 도는 색의 바지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우성이는 다른 아이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우성이가 유치원에서 똥을 쌌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 바지를 빨아 말려 주다가 조금 태운 바람에 이 영악한 어린 것이 친구의 바지를 얻어 스스로 얻어 입고 자신의 바지를 꽁꽁 숨겨 두고 온 것이다. 엄마는 우성이를 확인한 후에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것은 이 녀석의 작전이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어린 놈이 정말 기가 막히지 않은 가, 하지만 더 기가 막히고 대단한 건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우성이의 그 은밀한 짓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우성이는 혼나기는 커녕, 오랫동안 어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뭐 나도 손해 볼 건 없다. 나만이 아니라 쟤도 이제 똥 싸개가 됐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아주 선이 굵은 똥 말이다.


이제 나는 우정이를 따라 회사 정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엄마의 불타는 한글에 대한 교육열은 대단했다. 난 입학도 하기 전에 ㄱㄴㄷㄹ부터 돌입했다. 나는 이 이상한 모양의 글자가 너무 어려웠다. 근데 그것을 가르쳐 주는 엄마가 정말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 어려운 것을 내게 가르쳐 주다니, 나는 정말 열심히 쓰고 외우고를 반복했다. 결국 난 입학과 동시에 한글을 읽고 쓰기를 아주 잘 해내는 학생이 되었고 받아쓰기를 할 때면 간혹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내 것을 보려고 안달한 적도 있다.

참, 그때는 백 점 맞는 것이 그리도 쉬웠는데, 알고 보니, 크고 보니 난 공부와 거리가 먼 아이로 자랐다.


우리의 첫 사회가 시작된 집은 저지대 마을이었다.

한쪽으로는 남한강과 이어진 강이 흐르고 있었고,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자주 범람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내리는 비의 양은 우리 마을을 순식간에 덮쳐버렸다.


물이 빠지기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빠의 그 커다랗고 키가 큰 건물들, 공장들이 물에 반쯤 잠긴 것을 봤을 땐 자연에 대한 공포감에 기절을 할 정도였다.

이곳의 공동체는 다른 곳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아주 독특할 정도로 서로 간의 신뢰와 우정이 정말 끈끈했다. 물론 그 덕에 바람 잘 날 없는 날이 많은 마을이기도 하다.


옛말에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는 말은 진정 거짓이 아니다. 수많은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은 모두 힘을 합했고 그 무시무시한 홍수를 아주 잘 이겨냈다. 심지어 나의 아빠는 커다란 스티로폼을 타고 긴 나무를 들고 노를 저어가며 사람들을 구했고 또 동물들을 구했다.

아, 정말 멋지지 않은가?

나의 아빠는 이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리고 결국, 우리의 작은 사회가 시작되었던 이 아름다운 집은 많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우리는 곧, 회사에서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했다. 세상에 아파트라니, 그것도 회사에서 우리를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난 그때 나의 아빠가 회사에 굉장한 돈을 벌어 다 준다 거나 굉장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 이런 대접을 받을 수가 있을 까? 싶었다.


사실 회사 직원들이 모두 누리지 못한 혜택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택되었고 우리는 그 혜택 속에서 안전하게 조금 더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특별한 아빠, 라는 건 정답이다.

시골에서 시골로 이사를 가는 거지만, 우리에겐 읍, 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굉장히 큰 슈퍼마켓도 있고, 돈가스를 파는 곳도, 죠다쉬라는 킹 메이커가 있는 그곳에 우리는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린 뭔가 많이 구경하고 살 수 있는 그곳을 시내라고 부르며 그 먼 거리를 집에서 왕복하며 잘도 걸어 다녔다.


모두가 웃을 일이지만, 그때 나의 눈높이에서 보면 이곳은 상상 속의 서울과도 같았다.

소비조합에서 사던 두부, 콩나물 등은 이제 장바구니를 들고 가야 하는 시장이란 곳에서 구매를 했고, 그날은 우리 셋 모두 신이 나 꼭, 엄마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눈을 커다랗게 뜨고 우리에게 다가올 달콤하거나 바삭하거나 씹는 맛이 일품인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것들은 정말 마약과도 같아서 나 같이 식탐이 없고 과자도 좋아하지 않은 아이도 목을 빼고 입을 헤, 벌리고 기다리게 된다. 기름이 지글지글 보글보글 거리는 소리와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싸요 싸, 싸게 줄게요, 라는 소리가 귓속에서 윙윙거린다.

죽어서 털이 싹 뽑힌 살색의 닭들에게 물 샤워를 시키는 물 줄기가 튈 때 마다, 나는 작은 비명을 지른다.

으앗, 으아아.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작은 사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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