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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작은 사회

1.안녕, 나의 작은 사회

by 금봉

코스모스가 질서 없이 왼쪽, 오른쪽, 또는 땅을 향해 가득 피어난 우리 집, 바닥은 마치 시멘트 가루가 섞인 것처럼 회색과 검은 색, 갈색이 섞인 흙들이 수분을 가득 머금은 체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대인 지금, 요즘은 보기 힘든 담이 없는 집, 듬성듬성 회색빛의 커다란 건물 밑으로 하얀 페인트칠이 반짝거리고, 어울리지 않은 주황색 지붕이 눈을 피곤하게 만들지만 햇빛이 만연하고 문을 열자 마자 꽃이 보이는, 난 우리 집이 참 좋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나는 이제 와서 나의 엄마가 장미꽃을 좋아했었나, 아니면 코스모스를 좋아했었나,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 엄마가 선택한 꽃은 코스모스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결혼 전에는 꽃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이 많은 나의 엄마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왜냐면 그건 씁쓸하지만 돈으로 사야 하기 때문이다.

꽃을 순수하게 사랑했던 나의 엄마는 결혼과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 완벽한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첫 집은 동네의 작은 화원처럼 꽃이 늘 만발하던 곳이었다.

장미꽃은 덩굴 체 벽에 달라붙어서 입을 헤, 하고 벌려 벌들이 날아와 쉽게 화분을 찾을 수 있도록 나의 가족들처럼 친절함도 갖춘 체 말이다.


마당 한 편에는 나의 아빠가 애지중지하는 붉은 색 오토바이, 들마루를 조금 닮은 어색한 들마루.

이따금 나는 그곳에서 유연하게 쭉쭉 잘도 찢어지는 다리를 뽐내며 그곳을 무대인 냥, 쓰곤 했다.

양쪽 다리를 180도로 쭉, 뻗어 가느다란 양쪽 팔을 올려 원을 그릴 때, 날아오는 박수와 이웃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내미는 짭짤한 용돈은 나와 나의 형제들의 입을 달콤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오늘 계획에도 없던 무시무시한 쇳덩이에 내 머리와 머리카락을 맡기는 날이다.


뭐, 난 늘 내 계획대로 할 수 있는 건 몇 가지라고 할 수도 없지만,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멀리 도망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북한의 김일성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엄마가 이럴 땐 너무 미웠다.


이 작은 동네에서 늘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다니던 그 아주머니는 첫, 실험자로 왜 나를 선택했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내가 착한 아이, 또는 약간 부족한 것 같은 아이 란 것을 눈치챈 거겠지, 나는 내심 이렇게 생각하며 그 아주머니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집 마당으로 나와 시멘트 바닥에 화석으로 아주 못생긴 여자의 얼굴을 그려 놓고 그 위에 낙서를 했다. 그런다고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빠가 늘 갖고 다니는 이 화석이란 물건을 우린 이렇게 화석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늘 우리 집에 있었고 그것은 꼭 우리가 하는 놀이, 라는 종목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물건이 뭐라고 정확하게 불리는 지는 모르겠다. 초크라고 불리는 게 맞을 것이다.

아마도 화석이란 이름은 오랫동안 시골에서 그렇게 불려 졌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빠는 퇴근 때 마다 늘 설계도를 옆구리에 끼고 그 하얀 화석을 들고 퇴근을 한다.

다음날 그것을 가져가는 것을 꼭 잊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석이란 물건은 우리 집 서랍 속에서 자주 찾을 수 있는 놀이감이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우리집 어느 서랍이든 차고 넘쳤다.


그림을 그리던 중, 쇠가 부딪히며 내는 달그락,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무시무시한 아주머니가 꽤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들고 내 이름을 불렀다. 역시나 나의 상상은 쥐라도 몇 마리 뜯어 먹은 듯한 색깔의 입술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말한 나의 실험군 시간은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지 않았던가, 이럴 수가, 무서운 아주머니의 쓸모없는 부지런함이 나를 달달거리게 만들었다. 드디어 공포가 시작되었다. 심장이 두근, 발가락이 간질, 목구멍이 꿀꺽거렸다.


‘아 도망갈까, 어떡하지.’


쥐를 뜯어 먹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우재야.”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때의 난 뭔가 이상할 정도로 어리숙했고 바보처럼 착했다. 또는 칭찬에 목말라 하는 병? 이라도 있지 않았나 싶다.


난 마음과 다르게 벌떡 일어나 손을 모으고 허리까지 굽혀 가면서 인사를 했다. 아마도 내가 끄적거린 그림에 머리카락이 닿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안녕하세요.”


이런 행동은 기계처럼 내 몸에 습관화된 지 오래다.


“엄마는?”


“집에 계세요.”


가까워진 아주머니의 가방에 시선이 멈추었고 녹이 슨 쇠가 검붉은 색으로 삐죽 튀어나온 것을 보았다. 난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저걸 내 머리에 갖다 댄다고? 아, 하느님 저를 도와줄 수는 없는 건가요…’


난 그때부터 온 몸이 뻣뻣한 완벽한 기계처럼 엄마와 무시무시한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하라는 대로, 그대로 행동했다.


“우재 너 지금부터 움직이면 안된다? 이거 굉장히 뜨거우니까 정말 조심해야 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려야 했지만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위험하면 저 아주머니가 조심해야 지, 왜 내가 조심해야 하는 건지 말이다. 난 로봇처럼 앉아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 가.


아주머니가 말을 뱉을 때 마다 풍기는 크레파스 냄새 때문에 내 얼굴을 조금이나마 멀리 두고 싶지만 자꾸만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러게 왜 이런 위험한 장난을 어른들은 자주 자주 일삼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엄마는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도 않은 듯하다. 위험, 이란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처럼 기계처럼 앉아있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자식 앞에 위험이 도사리면 어떤 부모라도 눈을 부릅뜨는 게 맞지 않은가.


아주머니는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뜨거운 불에 달달 달군 쇠붙이를 들어 올려 나를 고문하기 시작했다. 나의 머리카락들이 쇠붙이에 돌돌 말리는 순간 쓴 약 냄새와 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조금씩 열에 끊어진 머리카락이 바닥에 툭 툭, 떨어졌다.


‘엄마, 뭔가 타고 있어요, 나 좀 봐주세요.’


나는 눈빛으로 제발 알아 달라고 엄마에게 외쳤다.

엄마는 올해 처음 나온 사과라며 사과를 깎아 은색 쟁반에 예쁘게도 깔아 놓았다. 사과를 깎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철컥, 철컥 내 머리카락을 쇠붙이가 움켜 쥘 때 마다 나는 소리에 눈물이 찔끔거렸다.


나의 인내심이 기계적으로 적응하고 있을 때 즈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제 나는 죽는 건가?

나의 왼쪽 귀가 아주 날카로운 것에 잘려 나간 것처럼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왔다. 결국 나의 기계적인 복종이 비명으로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악 아파.”


아주머니는 놀라지도 않는다.


“어머 우재야 움직이니까 그렇지.”


이 마귀 같은 사람은 또 내 탓을 한다. 쥐를 뜯어 먹더니 이제 나를 뜯어 먹을 셈이구나.


“가만있어 봐 어디? 응?”


엄마는 내 비명에도 놀라지 않고 마치 구경꾼처럼 나를 기웃거리며 말 했다.


“왜? 데인 거야?”


아, 나는 그제야 엄마가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아 안심하려던 찰나 아주머니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에이 괜찮아, 약간 데인 거야.”


엄마는 나의 비명 보다 그 역한 크레파스 냄새를 풍기는 아주머니의 말을 믿는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기계가 되었다. 아주머니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우재는 눈이 진짜 이쁘네, 머리를 말아서 더 예뻐 보여.”


내게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베어 문 사과에 묻은 붉은 립스틱 자국만 보였다. 거울을 내 손에 쥐여 준 아주머니가 다시 말했다. 정말이지 그만 좀 말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난 속과 겉이 다른 아주 착한 아이니까,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했다.


“자 봐 어때? 맘에 들지?”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나는 대답했다.


“네.”


엄마는 정말 나의 모습을 확인했을 까? 나를 딱 한 번 일초도 안되는 시간 안에 훑고는 말했다


“이렇게도 파마가 되네? 참 좋은 세상이야.”


엄마는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나는 거울에 비친 머리를 보고 놀랐다. 캔디에서나 나올 법한 아주 못된 계집아이 이라이자의 머리 스타일과 비슷했다. 난 착한 아이여야만 하는데, 이라이자의 머리 모양이라니,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어떤 모습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걸까? 긴 머리카락은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아주머니는 할 일이 정말 없는 사람인 모양이다. 나를 그렇게 못살게 굴고 또 힘이 남았는지 도통 우리 집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무시무시한 입술 색은 겉으로만 맴돌았고 아마, 사과를 먹으면서 함께 빨아먹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먹어 버릴 것을 왜 바르고 다니는 건지 의문이다.

난 방 안에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빗으로 벅벅 문지르듯 빗고 또 빗었다. 그럴 때 마다 오른 쪽 귀에 통증이 밀려왔다.

자세히 보니 귓불이 벌겋게 달아올라 귀에 살이 찐 건가, 싶을 정도로 부어올랐다.

내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면 분명 엄마는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모르고 넘어 갈 것이다. 나의 머리카락은 굉장히 굵고 새까맣고 우둘투둘 남들이 말하는 돼지털처럼 뻣뻣했다. 그것을 돌돌 말아 놓았으니 유난히 작은 귀 뒤로 말아 넣어도 머리카락은 다시 뻘죽, 튀어나와 귀를 감추었다.


나는 너무 슬펐다. 머리카락이 이 모양이 된 것도 귀가 아파서도 아니다.

내 작은 상처를 엄마가 또 모를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아주머니가 쇠붙이를 챙기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해는 지고 석양이 남아 낮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불을 손에 칭칭 감고 누군가를 꼭 껴안고 있는 듯, 결국, 나의 소중한 엄마는 내 귀에 상처가 곪아 터져 내 눈에서 고통의 눈물이 흐르고 나서야, 나의 귀를 알아보았다.


“으이구, 무슨 애가 이렇게 무뎌, 응? 말을 해야 알지 말을.”


지금 막, 나는 이렇게 또 엄마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아침 일찍 나는 무서운 병원에서 두꺼워진 귓불을 소독했고 응급 처치를 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고, 내가 멍청하다는 소리를 하는 엄마의 손을 놓지 않고 꼭, 잡았다.


그리고 그날도, 지금도 나는 이불을 칭칭 감고 잔다.


엄마를 끌어안은 것처럼, 옆에 누운 사람이 한 겨울에 얼어 죽든 말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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