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천상의 맛, 미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짧은 머리카락을 하고 몸보다 두 배는 더 큰 교복을 입은 첫날의 시작이다.
제발 나의 이 첫 시간이 기분 좋은 만남이길, 제발 나의 영혼을 맡길 천사가 나타나길, 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걸을 때마다 정전기로 검은 치마 위로 말려 올라가는 밑단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아마도 이 치마는 졸업할 때가 다가와도 적응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려 올라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치마의 길이는 이상한 모양으로 사타구니를 자꾸 파고들었다.
난 몇 걸음을 걷고 치마를 재정비하고 또 걷고 재정비하고, 겨우 등교 시간에 맞추었다.
첫날부터 고난이 예상된다.
학교 정문 앞, 저 두꺼운 몽둥이를 들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설마 선생일까?
첫 등교를 앞둔 학생들에게 저 큰 몽둥이를 들고 인사를 받고 싶을까? 한심하다.
대체 이 어른들은 나의 아주 어릴 적, 그리고 중간의 나이쯤 된 지금까지 저 몽둥이를 놓지 않은 걸까?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몽둥이로 높이고 싶어 안달이 난 어른처럼 보였다.
저 몽둥이가 설마 나를, 그리고 아이들을 정말 옳은 길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본인들도 과연 저 몽둥이찜질을 해야만 옳은 길로 나왔을까?
나는 정말 궁금했다.
나의 첫날을 저 몽둥이 때문에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안에 있는 악마가 반항을 동조하고 있다. 나는 목도리를 칭칭 감고 고개를 푹 숙이며 정문 앞으로 눈에 띄지 않으려 기듯 걸었다.
세상에, 이런 망할, 그 몽둥이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저 선생은 우리 학교에서 앞으로 정말 유명해질 선생 중 하나다.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별명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미친개,라고 한다.
미친개에게 물리면 약도 없다,라고 어른들은 늘 말했다.
으악, 미친개가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나를 물 생각인가, 나의 눈은 눈썹이 사라질 정도로 커다래졌다.
“야 너, 이리 와”
난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대체 왜 나의 첫날을 이렇게 몽둥이를 들이대며 내게 겁을 주는 거지?
저 모습이 진정 선생의 모습인가? 동네 건달 보다 더 위협적이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위해 학교를 나와야 할까, 나는 내 안의 착한 아이를 급하게 찾고 인사를 했다. 최대한 공손하고 최대한 저 자세로. 마치 어린 강아지처럼.
굽힌 나의 허리가 얼마나 숙어졌는지 나의 눈알은 나의 신발과 아주 가깝다.
이 비겁한 자여.
“안녕하세요”
“너 신입생이야?”
“눼에”
갑자기 이 미친개가 몽둥이로 나의 칭칭 감은 목도리를 들추기 시작했다.
세상에 선생이란 사람들은 선생의 위치가 이렇게 예의 없고 버릇없이 구는, 이 말도 안 되는 권력을 갖고 휘두른다. 이건 정말이지, 최악으로 예의가 없는 경우다.
조선 시대에도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이 권력을 정말 독재처럼 쓰고 있지 않은가, 권력이란 제대로 쓰여야 그 힘을 발휘하는 법인데, 이 선생은 그 점을 중학교 1학년보다 모른다.
아, 나도 대학생 언니 오빠들처럼 외치고 싶다. 미친개의 독재 타도!!
아, 이 사람이 뭘 하는 짓이지?
이젠 가슴 위에 박힌 나의 명찰을 몽둥이로 툭툭, 가리키며 말했다.
“이 우 재, 우재?
명찰을 이렇게 가리고 다니면 되나?
보이게 하고 다녀라 알았나?”
이 선생의 말투는 완벽한 군인의 말투다.
나는 제일 먼저 선생의 가슴팍을 확인했다. 선생은 왜 명찰을 달고 다니지 않은 걸까?
하긴 미친개,라는 이름을 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일 거다.
나는 갑자기 조선 시대 한 마을의 짱, 인 사또의 부하 이방을 생각했고, 나의 목소리는 그렇게 기어들어 갔다.
“니에에, 옙”
웃긴 건 내가 그렇게 지적을 받을 동안 그 미친개의 옆을 히죽거리며 지나간 아이들이 수십 명이라는 것이다.
난 첫날부터 아주 재수가 없었던 거다. 내가 보아도 복장이 불량한 아이들이 더 많았다.
억울하다, 정말 억울하다. 내가 재수가 없는 것 같다,라는 말을 엄마에게 꺼낸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이런 이상한 말을 했다.
“네가 예뻐서 눈에 띄는 거야”
예쁘다는 말은 참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공포,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한다.
나는 1학년 3반이다. 중학생이 되었고, 1학년이란 개념은 또다시 이곳에서 어리다, 막내다,라는 뜻이다.
결국 이곳에서 우리는 그냥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존재다.
나의 학급에는 성당 아이들도 꽤 있었고 또는 초등학교에서 보았던 아이들이 반이다.
이렇게 좁은 동네에 중학교라고 해도 이곳, 붉은 성 하나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난 1 분단 세 번째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시끄러운 건 마찬가지다. 나는 가만히 앉아 얼른 이 소음을 잠재워 줄 선생을 기다리며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때 1 분단 첫째 자리에 앉은 아이가 눈에 띄었다.
앗, 성당에서도 몇 번 마주쳤던 아이다.
그리고 영어 과외를 다닐 무렵, 그 근처 놀이터에서도 몇 번 보았다.
저 남자아이는 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아니 모든 사람에게 눈에 띌 것이다. 정말이지 키가 너무나 컸다.
상상을 해 보았다.
저 애가 나의 어떤 물건을 손으로 들고 있다면 내 것을 잡지도 못하고 껑충거리기만 할 것이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고.
난 지레 겁을 먹기 시작했다.
역시 두 번째 붉은 성은 첫째나, 둘째나 내게 어울릴 수 없었다.
내가 아주 귀한 영국의 왕손이었다면 원한다면 아마도 집에서 선생을 두고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엄마의 뱃속에서 탈출한 이상 난, 앞으로 더 많은 시간 동안 이 말도 안 되는 집단적이고 강압적인 교육을 받을 것이다.
이 시끄러운 아이들과 싫거나 좋거나 끔찍하거나.
드디어 선생이 들어왔다.
선생의 등장과 동시에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 남은 이야기를 속닥거렸다.
내 옆에 앉은 이 남자아이는 전부터 계속 다리를 떨고 있는 중이다.
다리를 떨고 있으면 그 주변의 바닥은 함께 덜덜거린다. 정말 이기적인 행동이다.
나는 그 덜덜거림 때문에 선생의 말이 집중되지 않았다.
더욱 불행인 건 오늘 이렇게 앉은자리가 한 달 동안의 내 자리가 된다는 것이다.
왜?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나의 불운은 미친개가 만든 것이니, 더 이상 나의 담임을 원망하지는 말자.
그래도 다행은 나의 담임은 여자이고 목소리도 꽤 부드럽다. 그리고 영어 선생이다.
나는 뭐, 영어는 자신이 있었으니까,라는 생각을 하며 당연히 담임의 과목이 영어라는 것을 다행이라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저 자식은 꾸준히 뒤를 흘끔거리는 거지?
그 키 큰아이 말이다. 계속 나와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의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보는 것인가?
나의 뒤에 앉은 아이를 보는 것인가? 그나저나 다리를 떠는 이놈을 어쩐단 말인가?
1교시도 시작하지 않은 지금, 나는 무척 고단했다.
나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의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솔직히 갈 곳도 없었다. 우정이 있는 반에 찾아간다는 건 상상하지도 못할 일, 아니 못할 짓이다.
그곳에 갔다가는 나를 보자마자 모른 척, 하는 그 못된 얼굴을 보고 난, 하루 종일 씁쓸할 테니까.
중학교 수업은 길고 길었다.
이 월요일 시간을 완전히 마치려면 내가 좋아하는 반짝이는 해가 사라질 때가 될 것 같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느님께 늘 기도하지만, 시간은 매우 더디게 지나갔고, 그런 지금 나의 어중간한 이 나이가 정말이지 절망스럽다.
시간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까. 계단을 두 칸, 세 칸 오르듯 그렇게 빠르게.
이제야 겨우 청소 시간을 남겨두고 있었고, 그 큰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뭐? 왜? 나에게 왜 그래? 오지 마, 오지 마, 하며 나는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남자아이의 목소리는 감기에 걸린 듯한 쉰 소리다.
“너 과외하지?”
난 이유 없이 또 반항심이 올라왔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다. 난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딱, 한번 끄덕였다.
“나도 과외해”
나는 놀라 내 앞에 또 앞에 앉아 있는 그 아이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덜덜이(다리 떠는 짝)가 끼어들었다.
“둘이 같이 과외하냐?”
난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맡은 구역 청소를 마치고 종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빠르게 학교를 빠져나와 과외를 가기 위해서 걸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말하는 시내는 딱, 여기 학교까지다.
이곳을 넘어가면 긴 언덕이 나오고 우리는 그곳을 흔히 1단지나 oo 리라고 불렀다.
물론 버스를 타면 되지만 난 그 용돈을 아낄 셈이다.
혹시 모를 나의 영혼을 맡아 줄 나의 영주 같은 친구가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외를 함께 받는 아이들은 딱 세 명이다.
그런데 키 큰 그 아이가 오늘 온다고 하면 넷이 된다. 그러면 여자아이 셋, 남자아이 하나가 된다.
난 과외 선생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생의 아이와 인사했다.
물론 아이는 내가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 아직 엄마 젖을 먹는 갓난아이니까.
선생은 시간을 조금 기다려 달라고 말하며 아기를 재우고 나온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과외 선생은 정말 열심히 살았던 사람 같다.
그 갓난아이를 돌보기도 힘들 텐데, 과외라니 정말 대단한 선생이다.
그래서인지 늘 창백했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 셋은 모두 성당 친구다.
아마 이 과외 모임도 엄마들의 사회에서 서로 만들어 낸 것이겠지, 나의 과외 선생도 성당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당에서도 교육열이 높은 아주머니들은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들의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잘했다.
안 돼도 중간은 했다.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고 선생의 부탁대로 난 현관문을 열었다.
역시 말한 대로 그 남자아이다. 그 아이가 들어선 순간 방금 비누칠을 한 냄새가 풍겼다.
마치 초록색 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그림처럼 싱그러운 냄새였다.
이 아이의 머리 스타일은 참 특이하다.
딱 2대 8 정도 가르마를 타, 윤기가 흐르고 있었고, 잔 머리카락이 날리지 않은 것을 보면 무엇이라도 발라 다듬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짧은 손톱이 건강한 핑크빛이 돌았고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손톱 밑이 검은색을 띠지도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 깔끔함은 난, 아주 조금 맘에 들었다.
“내가 그랬지? 오늘부터야”
또 묻지도 않았는데 내게 말했다.
젖을 먹이고 아이를 재우고 나온 선생은 더 이상 우리를 가르칠 기력이 없어 보였다.
선생의 머리카락은 단 한 번도 빗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을 했고 얼굴빛은 회색빛, 눈 밑은 검은빛을 발했다.
억지로 보이는 미소는 약간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키 큰 아이의 이름은 창영이다.
창영이는 집중력이 대단했다. 과외 선생이 말하는 것을 한 번에 알아듣고 그것을 바로 응용하고 해석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기가 죽느라 솔직히 오늘 수업을 망쳤다.
우리는 수업을 마치고 늘 그랬듯이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창영이도 함께 있었다.
정애와 윤분이는 진짜 재밌게도 논다. 사실 정애와 윤분이는 단짝이었고 단짝답게 둘은 똑같은 장난꾸러기다. 그렇다는 건 아마 눈치가 빠른 사람은 벌써 이해했을 거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난 내 또래 아이들과 재미있게 노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홀로 의자에 앉아 사탕을 입에 물고 구경만 했다.
근데 왜 쟤는 가지 않은 거야?
창영이란 남자아이는 계속 나처럼 앉아 그들을 구경했다.
엇,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뭘 말하길 원하는 건가?
무슨 어른처럼 느긋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 괴롭다. 쭈뼛쭈뼛 또 말을 건네려 하는 것이 아닌가, 저 말이 무슨 말이건 간에 난 같은 연립 아파트에 사는 정애에게 집에 가자는 말을 할 것이다.
하루 종일 덜덜이 때문에 난 너무 피곤했고, 빛에 도드라진 먼지를 보는 것도 괴로웠다.
그리고 이곳과 완벽하게 먼, 그리고 끝에서 끝인 연립 아파트까지 가는 길을 생각하니 더 고단했다.
“넌 성당 언제부터 다녔어?”
바보 같이, 생각지도 못한 친절을, 나는 친절을 답했다.
“뱃속부터”
“와, 그래? 나도 몇 번은 간 적 있어, 친구 따라서”
이 아이는 성당에서 나와 마주친 걸 알면서 그걸 확인하듯 말한다.
그리고 친구라면 내 또래 남자아이들을 말하는 것일 텐데, 그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당에 다니는 내 또래 남자아이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툭하면 유치한 장난을 하거나, 유치한 말을 뱉은 후, 혀를 내밀고 도망을 가거나, 욕을 퍼붓거나, 엄청난 속도로 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지른다.
더 참아 줄 수 없는 건, 아무 데서 나 지퍼를 내리고 소중이를 잡고 오줌을 발사한다.
내가 가장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던 말은 내 오줌이 더 멀리 나가지? 라며 서로 내기라도 하는 듯한 그들의 말이었다. 다시 한번 그 장면을 떠올리니 골치가 아프다.
나는 초록색 냄새와 단정한 머리 스타일에 너무 기대했던 모양인지 그들과 어울린다는 생각에 여간 실망한 것이 아니었다.
“난 이제 가야 돼”
“집이 어디야?”
난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언덕 넘어 끝”
“그럼, 버스 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정애를 불렀다.
정애는 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함께 가지 않았다 간 정애 엄마가 걱정할 텐데, 쟤는 꼭 저런다.
나는 정애가 따라오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정류장까지 걸었다.
난 정애 와도 연립 아파트에서 꽤 친했지만 윤분이 나타난 뒤로 밀려났다.
뭐, 나의 영혼은 아직 영주에게 있으니까 이제 이런 일에 더 이상 슬픔도 놀람도 없다.
난 뒤를 돌아보며 확인했다.
하, 역시 정애는 보이지 않는다. 정애는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장난꾸러기다.
나는 그야말로 풀이 죽고 힘이 빠졌다.
앗, 그런데 창영이가 나의 뒤에서 따라 걷고 있었다.
난 이상한 생각을 했다. 쟤가 혹시 그 말로만 듣던 관심이란 것을 내게 보이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아니다 아닐 것이다.
버스가 마침 도착했고 나는 빠르게 올라탔다.
보지 않으려 했지만, 나는 길 위에 있는 창영이를 보았다.
나를 보는 건지 버스를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방향은 같다.
난 잠이 들 때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게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고,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라는 생각에 다음 날 두 번째 붉은 성에 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또한 몽둥이 선생을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다.
할아버지가 서울로 이사 간 고모 집에 갔다.
이 일은 굉장히 희망적이고 뭔가 따뜻함이 가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쩐지 엄마의 얼굴은 코스모스처럼 환하게 빛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환한 빛이다.
우리는 아마도 오랫동안 엄마와 함께 식탁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엄마가 할아버지의 오줌통을 씻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당분간이지만.
지금 나의 얼굴을 본다면 엄마처럼 빛이 나겠지. 엄마에게 빛이 나면 나도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엄마가 기분이 좋아 보일 때는 나도 참 기분이 좋다. 엄마는 오늘 우리에게 특별히 용돈을 주었다.
그 용돈은 뭐 금액이 조금 차이가 나긴 했지만 난 이해한다. 왜냐면 우성이는 우선 차비가 비싸고, 우정이는 보충수업 때 저녁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은 그야말로 평화롭다.
나는 엄마처럼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담으며 거울을 보고 목도리의 매듭이 뒤로 가도록 말았다.
그리고 노란 명찰을 눈에 띄게 꽂았다.
기분 좋은 토요일까지 그 미친개에게 걸릴 수 없는 일이다.
아침 바람이 너무 매섭다. 짧아진 머리카락 때문인지 귓불이 시리다.
목도리로 귀까지 칭칭 감아올렸다. 이렇게 추운 날에 학교까지 걸어가는 건 진짜 고통이었다.
그래, 노래를 불러 보자, 나는 이상은의 『담다디』라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추운 날씨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성가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래에 맞춰 걸으며 말려 올라가는 이 품질이 좋지 않은 치마를 내리느라 손과 입이 바쁘다.
아 오늘도 저 미친개는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나는 어깨를 꼿꼿하게 세우고 노란 명찰을 자랑하듯 교문을 지나갔다.
그래, 난 문제가 없는 아이다.
오늘은 오전 수업으로 끝나는 날이다. 그리고 과외도 없는 날이다.
집 안에 박혀 텔레비전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대로만 잘 넘어간다면 오늘 하루는 고단하지 않을 것이다.
난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성당에 다니는 꽤 시끄러운 남자아이와 마주쳤다.
이 아이는 일찍부터, 중학교 반 배정이 되기 전부터 나를 귀찮게 했던 아이다.
또래 아이들보다 더 성숙해 보이기도 했고 일부러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는 점도 있었다. 나는 그 점이 싫었다. 코와 입은 또 어찌나 큰지 말할 때마다 가끔 침을 튀기거나 입술에 침을 흥건하게 묻히고 말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늘 말속에 욕이 섞인다.
마치 자기가 미친개처럼, 친구들 사이에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성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신부님을 도와주는 미사 해설을 자주 했다.
그 일은 내 성격을 보면 절대 자발적인 일이 아니란 것을 잘 알 것이다.
나의 아빠도 아주 자주 미사 해설을 한다. 이렇게 말하면 나 같은 성격의 아이가 어떻게 미사 해설을 하는 건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이다. 미사 해설의 역할은 신부님이 미사를 진행하는 동안 도움을 주는 그런 역할이다.
누구나 연습을 하면 종이에 적힌 대로 읽으면 그만인 일, 내가 성당을 다니는 것은 나의 용기에 대한 힘을 기르기 위해, 또 하나 나의 엄마와 아빠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서다. 그땐 그랬다.
나는 그렇게 그날도 미사 해설을 했다. 그리고 늘 하얗고 예쁜 수가 놓인 미사포를 쓰고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늘 그렇듯 아이들과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바로 그때 권력을 남용하는 이 아이가 입술에 침을 잔뜩 바르고 내게 말했다.
“우재 너, 미사포 쓴 거 보니까 진짜 예쁘더라”
뭐라고? 지금 이 징그럽고, 욕쟁이 놈이 나에게 뭐라고 한 거지?
예쁘다는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쁘게 들린 적이 없다. 닳고 더러운 바지를 입은 속셈 학원의 그놈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또한 그 애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은 이상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못생겨지고 싶었다.
또 그 이상한 남자에 대한 공포가 다가온 것이다.
나는 모른 척 그렇게 그 애를 넘기기로 했었다.
그날 이후, 난 성당에서도 이 아이가 내게 인사를 건네면 나는 눈을 빠르게 돌리거나 고개를 푹, 숙이거나 하는 정도의 아는 척, 일 뿐인데, 학교에서 이런 아는 척이라니, 그 아이의 두꺼운 쌍꺼풀을 보니 다시 그 특유의 징그러운 뭔가 가 가슴에서 훅 끼쳐 올라왔다.
그리고 난 이날 이후부터 쌍꺼풀이 짙은 남자를 싫어하게 되었다.
쌍꺼풀이 나를 또 불러 세웠다.
“야, 이우재”
나는 계단에서 올라가는 중이었고 그 앤 내려가는 중이었다.
올라가다 보니 서로 위치가 바뀌었다. 나는 계단에 올라서서 그 앨 내려 보고 있었고 그 앤 계단에 서서 나를 올려 보고 있었다. 그 애가 아래턱을 내밀며 마치 욕을 턱으로 뱉듯, 복수하려 벼르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야, 너 학교에서 치마 입은 거 보니까 다리 대따 굵다? 으하하”
이 말을 하곤 계단을 두 칸씩 내려가며 줄행랑을 쳤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더니, 그 길고 징그러운 뱀처럼 생긴 혀를 내밀며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저 자식은 분명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일 것이다.
난 순간 계단 위 시멘트가 덜 마른 듯, 내 발이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하긴 사람은 언제나 솔직해야 한다는 건 안다. 거짓말은 안 되는 거다.
하지만 난, 굳이 저놈에게 내 다리가 굵냐?라고 묻지 않았다, 이건 솔직함보다, 나를 골탕 먹이려는 수작이었고 그 수작에 난 말려 들어간 것이다.
나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 행동은 내가 마음을 먹고 한 행동이 아니다.
무릎의 연골을 건드리면 다리가 번쩍 올라가는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저 자식이, 저 나쁜 놈이, 저 징그러운 놈이, 발가벗은 동상처럼 징그럽게 생긴 저놈이, 내게 예쁘다, 는 말을 남기고, 이젠 다리가 굵다, 라 말한다.
저놈을 어떻게 응징한단 말인가, 마리 앙투와네트처럼 단두대의 형벌이 필요할까, 아, 아니다.
이건 너무 악마적이지 않은가, 아니, 난 지금 악마다.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내가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난 슬퍼도 억울해도 아파도 기뻐도 눈이 먼저 반응하는 아이다.
눈물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고, 지나가던 나의 담임선생이 나를 깨웠다.
“우재, 뭐 해? 영어 수업시간이야”
“네?”
나의 선생은 갑자기 엉뚱한 말을 했다.
“참 우재 너 배치고사 영어 성적 정말 좋더라, 첫 시험 기대한다!
자, 얼른 수업 들어가자”
난 선생의 말에 또 한 번 얼이 빠졌다.
아. 이 붉은 성은 첫 번째 성과 달리 나를 정말 정신없게 만드는 곳이다.
나의 담임은 수업 내내 나와 눈을 꾸준히 마주치면서 수업했다.
내가 중학교 배치고사를 잘 봤다는 건, 이미 선생들은 우리의 성적을 아직 시험을 치지 않아도 성적으로 우리를 착한 아이, 나쁜 아이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난, 첫 단추를 아주 잘, 꿰었다고 할 수 있다.
아,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다.
그놈의 이름은 방형구, 참나,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도 이 아이를 괴롭히고 싶었다.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그 자식에게 복수를 하지 못했다.
물론 방형구 이 자식은 무슨 착각에 빠져서인지 다시 또 내게 친절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붉은 성을 벗어날 때까지 꾸준히 이 아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나의 굵은 종아리는 학교생활 내내 콤플렉스로 자리 잡았다. 왜 빼빼 말랐던 나의 몸이 점점 두꺼비처럼 변해 가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난 음식을 많이 먹지도 않는다, 이건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머릿속에는 굵은 다리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언니 우정이는 키도 크고 다리도 길다.
희한한 건 언니의 친구들을 보면 모두 비슷했다. 아니 어떻게 하나 같이 키가 크고 다리가 길까?
정말 끼리끼리 친구가 되는 건가 보다.
거의 나의 우상이 될 뻔한 언니의 친구가 있었다.
그 언니의 이름은 희경이다. 참 이름도 예쁘고 얼굴도 예뻤다. 학교에서도 인기 많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언니 우정의 말로는 좀 잘 나가지,라는 말에 속한다고 했다.
희경 언니는 나를 좋아했다.
우연히 만난 길에서 한 번 마주친 만남이 연속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면 우정이는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거부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우정이는 나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이 되면 희경 언니네 집으로, 또는 다른 친구 언니의 집으로 질질질, 지칠 때까지 끌고 다녔다.
나는 어차피 함께 붙어 다닐 친구도 없었고 일요일이나 토요일은 성당 가는 일 빼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희경 언니는 우리가 좋아하는 시장 골목이 집이다.
상가 이층에 자리 잡은 주거 공간은 굉장히 좁았다. 거실 겸 쓰는 주방과 방 하나가 있을 뿐이다. 우정을 포함해 나까지 다섯 명, 신발을 현관 앞에 벗어 놓으니 더 이상 아무도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써 붙인 것처럼 빼곡한 신발 개수가 말해주고 있었다.
희경 언니는 우정에게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을 늘 만들어 냈다.
세상에 내게 라면을 끓여 준다고 친절하게 말한다. 이 언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가 싶었다.
나는 라면을 기다리며 희경 언니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폈다. 희경 언니는 라면에 수프만 넣는 것이 아니다.
희경 언니가 말했다.
“이거 비법인데, 너희들 모르지? 라면은 이걸 넣어야 맛있어”
우정이 말했다.
“그게 뭔데?”
“미원이라는 마법”
미원? 나는 이날 미원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이건 어디에나 들어가, 그래야 맛있어”
희경 언니는 하얗게 반짝이는 것을 숟가락에 가득 담아 두 번 냄비에 넣었다.
아, 라면이 보글거리기 시작했고 맛있는 냄새는 이루 말할 것 없었다.
희경 언니는 여성스럽게 파를 썰어 라면에 넣고 달걀을 톡, 소리가 나도록 깨어 냄비에 풀어냈다.
김이 모락모락, 쓰고 있는 안경은 뿌예지고 좁은 거실의 유리창에 생긴 얼룩은 김이 서려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창문을 열어젖히면 시장 골목의 웅성거림이 크게 들렸다.
이제 드디어 맛을 볼 차례가 왔다. 우린 신문지를 바닥에 깔아 놓고 둥근 원을 만들어 고개를 숙이고 고불거리는 이 괴상한 면을 후루룩, 흡입하기 시작했다.
후루루루루룩, 후루룩.
이제까지 먹어 본 라면 중 최고의 맛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진득하고 느끼한 미원이 잔뜩 들어간 라면이 그리울 때가 있다.
솔직히 엄마가 끓여 준 라면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맛이 그 흔한 라면이란 이름의 라면이란 말인가, 그 이름이 아까울 정도의 맛이었다.
더 이상 면발을 후룩, 할 것이 바닥이 났다면 밥알이 있지 않은가, 우린 밥까지 말아 국물까지 아주 탈탈, 냄비까지 깨물어 먹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서 먹었다.
이 맛을 본 순간 신기하고 매력적인 희경 언니는 내게 영웅이 되어가고 있었다.
중학생 아이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말해서 유치하기 짝이 없다. 특히 선배라고 말해야 하는 학생들이 그렇다.
선배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때마다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솔직히 오그라든다.
이유는 유치해서다.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 유치한 인들에게 찍힐 일은 더더욱 없다.
어쨌든 이 많은 언니 군단 덕에 난, 3년 내내 중학교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