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엄마의 식탁
붉은 성에서 나는 공부는 뒷전, 육 년을 꼬박, 적응하기 연습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음, 이제 낯선 느낌은 조금 나아진 상태였고 물론, 아직 이렇다 할 친구는 없지만 그렇다고 영주를 만나기 전처럼 불행하지는 않다. 난 학교에서 못다 한 나름 작은 사회생활을 연립 아파트에서 할 수 있었다.
이건 아주 유치한 이야기지만 난 연립 아파트에서 그래도 육 년을 살았기 때문에 텃새에 속했기에 새로 이사 온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모두 나보다 더 어린아이였다.
물론 나도 어린아이였지만 이 동네 아이들 속에서 나는 중간쯤, 가는 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부릴 수 없는 허세도 조금 부릴 줄 알았고, 어린아이들을 아주 잘 챙겨주기도 했다.
특히 여자애들의 긴 머리카락을 묶어 주는 데는 선수였다. 또래와는 어울리지도 못하면서, 난 그렇게 연립 아파트에서는 친절한 언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연립 아파트는 비어 있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회사 직원들이 줄을 선 채 항시 대기 상태였다. 그만큼 정말 운이 좋아야 연립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몇 달 전 새로 이사 온 우리 옆집 남매는 굉장히 나이가 많은 것 같은 언니와 나보다 한 살 위인 남자애가 살았다. 난 그 덩치 큰 언니가 무섭다. 웬만한 덩치는 상대도 안 될 듯, 그만큼 겁이 났다.
나의 눈도 꽤 큰 편에 속했는데 그 언니는 얼굴도 입도 코도 눈까지 컸다.
생각해 보면 언니 우정이도 상대가 되지 않을게 뻔하다. 그리고 우리의 첫 집인 코스모스가 만발했던 그 동네에서 함께 지냈다. 그렇게 한동네에 살았던 엄마의 절친도 운 좋게 이사를 나왔다.
그것도 우리 집 바로 밑층으로 이사를 나올 수 있었다니 신기한 일이지 않은가, 더 신기한 건 일 층 집에도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의 덩치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우리 남매 셋은 동네에서 진짜 말라깽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옆집, 아랫집에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들이 함께 살고 있었고 뒷집, 앞집에도 그들은 점점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엄마들의 작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니다 전쟁이라고 말해야 하나?
누가 누가 더 잘하나,라는 타이틀에서 말이다.
참, 수정이를 잠시 잊고 있었다. 왜냐면 난 수정이와 이제 함께 다니지 않는다.
수정이와 한 동에 사는 못된 아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수정이는 공부를 아주 뛰어나게 잘했고 껌 씹는 수정이의 엄마 또한 뛰어나게 교육열이 강했다.
나는 수정이와 다른 반이 된 후에도 가끔 수정이와 함께 집에 가기 위해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수정이는 나를 조금 알은체하며 그 못된 아이와 앞서 걸었고 난 뒤에서 따라 걷기 일쑤였다.
나는 이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해 보지는 못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어른들의 세계는 참 오묘하다.
혹시라도 엄마의 눈에 수정이가 나를 자꾸 밀어내거나 모른 척, 하는 것을 눈치채진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제발 그게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정말 엄마가 몰라 주길 바랐다.
실내화를 자꾸 도둑맞는 나 때문에 엄마의 심장은 주먹으로 남아나지 않았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엄마가 한숨을 쉬는 것을 보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수정이의 엄마는 말이 너무 많다.
신기한 건 껌을 씹으며 딱딱, 소리를 내면서도 아주 빠르게 쉴 새 없이 말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껌 씹는 소리 내기의 달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의 엄마는 다른 많은 아주머니의 비하면 말이 많지도 소문을 만들어 내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수정의 엄마가 우리 집을 찾아와 엄마와 안방에서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니 나누는 것보다 일방적으로 수정이 엄마가 나의 엄마에게 화해를 청하는 이야기였다.
수정이의 엄마는 나의 엄마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형님 미안해요, 내가 너무 큰 실수를 했어요”
으레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말하면 우리는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엄마의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 건 꼭, 우정이와 비슷하다. 언니 우정은 미안하다는 말도 괜찮다는 말도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렇게 우린 일주일 내내 함께 해도 모자랐던 시간이라고 말하던 그들 가족과의 관계가 끝이 났다.
나의 엄마는 아주 단호했고 매몰찼다.
엄마는 시간이 지나도 수정이 엄마를 용서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용서란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그 아름다운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우정이처럼.
그 이유가 제발 내가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랐다.
난 그 비밀 사건이 너무 궁금했고 걱정이 됐지만 엄마에게 물을 순 없었다. 혹시 내가 이유라면 나의 엄마는 혼자 눈물을 흘렸을 게 뻔했고, 그것으로 인해 나의 심장은 두 동강 났을 게 뻔하니까.
바보 같고 멍청한 나, 우재 때문에 말이다.
난 그날 이후, 당연히, 더 이상, 수정이를 기다리지 않았다.
어쩌다가 학교를 같은 시간에 하교하는 날에는 당연히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은가, 난 그럴 땐 아주 빠르게, 뛰어 앞서갔다. 공부에도 뒤지고 여태 뒷걸음질 쳐 왔지만, 이젠 엄마를 위해서라도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나는 그렇게 수정이 뒷모습만 보면 빠르게 앞서 걸었다.
엄마가 보지 않는 그림이라도 나는 절대 뒤에서 걷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수정이가 나를 불러도 들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지키며 걸었다.
엄마를 위해 단호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생일이 다가오면 수정이가 먼저 생각났다.
생일까지 똑같은 우리는 어른들에게 쌍둥이였고 너무 많은 추억을 지니고 있었다.
잊는다는 건, 잊히는 것보다 더 무섭고 힘들고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천만다행인 건 내가 영주에게 그랬던 것처럼 수정이에게 내 영혼 따위를 바치지 않았다는 거다. 나의 영혼은 아직도 소식 없는 영주에게 머물고 있다.
보고 싶은 나의 영주.
언니 우정은 공부를 잘했다.
역시 첫째로서 엄마와 아빠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내 동생 우성이는, 음, 서운할 수도 있지만 진짜 공부를 안 했다. 꼴통도 이런 꼴통이 없다.
어느 날은 친구와 함께 학교를 등교하는 대신 오락실로 등교를 한 것이다.
어린놈이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분명 또 엄마의 가방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을 훔쳤을 게 뻔했다.
그런 날은 잘못 없는 내게도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날이다.
난 속으로 외친다.
아, 엄마가 빗자루만 들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요즘 우리 집은 자전거 때문에 난리다.
원래 있었던 자전거, 그리고 우성이 맞춤형 자전거, 이렇게 두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아주 자랑할 만한 일이다. 자전거 한 대를 놓고 싸울 일이 없지 않은가, 아빠는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었고 엄마는 엄마들만의 사회에서 그렇게 돈을 써 가며 가족을 위해 뒷바라지했다.
우리 셋은 그 나이 때에 누려야 하는 것들을 부족함 없이 누렸다.
아니 좀 넘쳤다고도 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시샘하고 그것을 욕하고 그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언니 우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때 가장 유행하던 메이커로 단장을 했다.
물론 우성이와 나도 다르지는 않았지만 내겐 그래도 조금은 부족한 면이 있었다.
나는 키가 빠르게 커 가는 우정의 옷을 늘 물려 입었다.
뭐, 이건 당연하지 않은가, 누구나 둘째라면 그랬을 거다. 나는 그 점을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고 그것을 우정이 쟁취하고 있을 땐 정말이지 지옥으로 우정이를 떨어트리고 싶은 악한 마음이 늘 존재했다.
특히, 아빠가 몰래 사준 그것, 그때 아빠는 몰래 사준 게 아니다, 정당한 선물이다,라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난 그게 왜 정당한 선물이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졸업식이나 생일에 내가 원하는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도 정당한 선물이었을까?
우정의 생일도 입학도 졸업도, 이 위대한 첫째님의 삶에 뭐, 어떤 선물이든 간에 두 손이 비어 있었던 적이 있었나? 결론은 없다는 거다.
그날이었다.
우정이는 그날 갑자기, 책상에 앉아 검은 줄이 두 줄로 나뉘는 그것을 귀에 꽂고 직사각형 모양의 손바닥보다 작은 그것의 볼록 튀어나온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근래 보지 못했던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잠깐 우정이가 예뻐 보이긴 했다.
그것은 우리들의 로망 우리들의 꿈 우리들의 소원,이었던 미니 카세트였다.
우린 공동의 커다란 카세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라디오를 듣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도 듣고 녹음도 했다. 한창 우정이가 미쳐 있었던 외국 가수, 그 이름은 뉴 키즈 온 더 블록, 언니는 그들의 노래를 이제 자기만의 카세트로 홀로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듣고 또 들었다.
나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 많은 뉴키즈 온 더 블록의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콘서트 장면, 야광 모자, 야광 티셔츠, 커다란 브로마이드, 가사집, 이런 것들을 대체 어디서 나온 돈으로 구비를 한 것일까, 우정이는 그렇게 늘 부자였다.
나는 그때 텔레비전을 독차지하며 그들의 공연을 보는 우정이를 덩달아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약한 나는 아주 빠르게 스며들고 말았다. 이런 게 악한 영향력이라고 하는 걸까, 우정이가 그들에게 미쳐 가듯 나도 덩달아 미쳐 갔다.
서로가 좋아하는 사람이 더 멋지고 더 사랑스럽다는 얘기로 우리는 조금씩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말 섞기 싫어하는 우정이가 나와 말을 섞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밤새 뉴키즈 온 더 블록의 이야기를 하며 잠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오줌싸개라는 별명을 지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붉은 성을 떠나 진짜 더 큰 붉은 성에 입성했다. 이제야 적응되어 가고 있었는데 다시 또 새로운 시작이 시작된 거다. 두 번째 붉은 성은 첫 번째 성과 반대편 위치에 있었고 중학교답게 더욱 커다랬다.
걸어가는 거리는 거의 비슷했다. 그리고 나는 교복을 입어야 했다.
아직 더 예쁜 옷을 입고 머리카락도 땋아 보고 싶은데, 왜 이곳은 그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건가?
이해되지 않은 것투성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인데 어린이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은 것일까?
나는 그 긴 머리카락을 잘라야만 했다.
아빠는 나의 머리카락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엄마의 긴 머리카락을 사랑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단발로 잘라야 하는 게 학교 규칙이었다.
이건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나의 아빠를 학교가 이길 수 있을까?
두 번째 성에 입성하자마자 나는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 난 육 년을 길러 온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냈다. 신체 발부 수지부모라, 하지 않은가.
그런데 학교란 곳이 그것을 거스르게 했다.
마치 일제 강점기처럼.
하긴 일제의 잔재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국민학교란 이름까지도.
하, 이곳은 부모에게 반항하는 법부터 가르치는 곳인가 부다.
엄마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이제 아빠의 퇴근 시간을 부들거리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만약 엄마와 내가 아빠에게 학교의 방침이라며 머리카락을 잘라야 한다고 미리 말했다면 나의 아빠는 붉은 성에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와서 수많은 선생과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빠는 꼭 이겨냈을 것이고 나는 3년을 또 홀로 외롭게 학교생활을 해야 했을 것이다.
시간이 되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왔다”
우린 아빠가 밤에 근무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꼭, 이렇게 아빠에게 무사 귀가를 축하하며 인사를 했다.
우성이가 아빠를 반기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방문 뒤에 서서 주뼛거린다.
아빠는 할아버지 방문을 열어 효자답게 인사를 하고, 나를 홱 돌아보았다.
“다녀오셨어요”
나의 목소리는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보다 더 작다.
아빠의 그 작은 눈이 동그래져서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또렷하게 보였다.
아빠의 유난히 작은 눈에서 눈동자를 본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어엇”
엄마가 빠르게 말했다.
“학교 방침이 그런데 어떻게, 잘라야 지 얘만 길어서 다닐 수 없는 거고”
하지만 아빠는 학교가 아닌 나를 원망했다.
“아, 너 어떻게 말도 없이”
그렇게 말하는 아빠는 나에게 모든 것을 말했던가? 늘 우정과의 비밀을 간직한 아빠다.
어른들은 작은 아이의 기분은 생각도 하지 않고 어른의 속상함과 분노만을 오롯이 원망하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커가는 나이만큼 말수가 줄어들거나 우리들을 대 놓고 무시했다.
어른들도 똑같이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도 그랬다.
아빠의 시절은 지금 보다 더 이기적인 어른이 많았다는 건가, 할아버지처럼?
흠, 그렇다면 나는 아빠를 이해해 줄 것이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의 눈빛은 정말이지 북극과 같았다.
그날 저녁은 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이다.
하지만 난 아빠와 함께 밥 먹는 게 자신이 없었다. 보기 좋게 난 그날 저녁은 쫄쫄 굶었다.
그리고 쥐새끼처럼 밤에 나와 엄마가 만들어 놓은 남은 카스텔라를 먹었다.
그땐 물론 언니 우정이도 함께 먹었다. 뉴키즈 온 더 블록의 외모를 평가하고 노래를 읊어가며 씹었다.
할아버지가 연립 아파트에 온 이후로 나의 엄마 자리는 티 나지 않게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고향이나, 고모네, 를 간다고 하면 굉장히 오랫동안 머물다가 온다.
그때를 제외하면 우린 늘 함께 식사했다. 그렇게 엄마의 밥 먹는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우리 집 식탁은 딱 다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다.
할아버지를 포함한 우리 다섯이 앉으면 그 자리는 주방을 꽉 채웠다.
아빠는 간혹, 책상 의자를 가져오라며 엄마의 자리를 권하기도 했지만, 그 자리는 아주 좁은 모서리 쪽이었고, 어쩌다 그렇게 앉게 되면 안쪽에 앉아 있는 나는 밥을 다 먹어도 엄마를 위해 계속 젓가락질을 해야만 했다. 내가 일어서는 순간 내가 나가는 통로를 만들어 주기 위해 모두가 일어서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서서히 나는 먹지 않을래, 또는 속이 안 좋아, 또는 나중에 먹을 게,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그렇게 아주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엄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거다.
그래서 난 할아버지가 미웠다.
할아버지는 그런 것을 알면서도 나의 엄마에게 밥 먹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효자 아빠의 말로는 옛날 어른들은 다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고모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다르게 우리를 아주 살뜰히 아껴 주셨고 또한 나의 엄마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고모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는 우리를 꼭, 그 좁은 방에서도 아랫목에 앉혔다.
나의 할아버지는 그런 정과 배려를 모르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게 또 있다.
이것은 내가 할아버지를 정말 무지막지하게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한쪽 다리가 약간 불편한 것 외에 굉장히 건강하다. 걷기 운동도 굉장히 오래 할 만큼 말이다.
그런데 왜 꼭, 밤마다 요강을 쓰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왜, 도대체 왜, 화장실을 머리 밭에 두고 자야만 한단 말인가, 나의 엄마는 그 요강을, 할아버지의 그 노란 배설물을 치워야만 했다.
아침마다, 할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말했다.
“애미야, 이것 좀 비워 다오”
이런 젠장, 맙소사, 제발 똥은 아니길, 엄만 군말 없이 그 무서운 쇳덩이를 들고, 강물처럼 찰랑이는 소리가 들리는 그것을 화장실로 가져가 수세미로 벅벅 문질러 닦았다.
오줌싸개 딸을 둔 것도 모자라서 할아버지의 오줌통 청소라니, 나는 엄마가 불쌍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요강을 보면 정말 발로 차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엄마가, 엄마의 손이 저것을 닦다니, 화가 났다. 정말 너무 배가 고파서 손가락이 먼저 반찬에 갈 정도로 눈앞이 캄캄해도 그 생각을 하면 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한 번 엄마의 자리를 위해 시도해 보았다.
“난 나중에 먹을래”
난 그 순간 숟가락으로 또는 주먹으로 꿀밤을 맞는 줄 알았다.
눈앞에서 숟가락이 둥실 떠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우재 너 나중이 어딨어? 지금 안 먹으면 밥 없어”
하, 역시 엄마는 착한 아이의 마음을 너무 모른다.
난 엄마가 모서리가 아닌, 텅 빈 식탁이 아닌, 저 구석진 내 자리에 앉아 밥을 먹어주길 바랐을 뿐인데, 난 밥 안 먹는 꾀부리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 나는 다시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우리 집 식탁 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성장할수록, 늘 한 자리씩 비워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빠가, 또는 할아버지가, 시간이 더 흐른 뒤, 언니 우정도 동생 우성도, 그렇게 나도.
이제는 식탁이 쓸데없이 굉장히 넓다.
엄마 홀로, 또는 아빠 홀로. 그렇게 밥을 먹는다.
북적거렸던 식탁은 우리가 자랄수록 쓸쓸한 곳이 되어 갔고, 한숨 소리만 들리는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의 엄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홀로 쓸쓸하게 숟가락을 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