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나의 붉은 성, 이제 안녕
나는 고등학교를 3년 동안 보내고 그렇게 기다려온 자유가 달갑지 않다.
이건 또 하나의 나를 옥죄는 보이지 않은 창살과도 같았다.
겉으로는 미소를 머금고 속으로는 성게처럼 수십 개의 뾰족한 가시가 박혀 있는 것들을 잘 다듬어 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때부터 내게 주어진 자유라는 가면을 쓴 텅 비어 있는 시간을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굳이 말하자면 희망퇴직을 했지만, 여전히 빚에 허덕이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는 아빠, 온갖 대학교의 생활을 만끽하느라 바쁜 우정이, 아직 고등학생 신분인 우성이, 그리고 항상 그랬듯 바쁘게 움직이는 나의 엄마, 그들은 뭔가를 꾸준히 하고 움직인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적막을 먼저 받아들여야 했다.
예전처럼 아침이 시끄럽고 분주했던 그 소리와 감각들은 내게 사라진 지 오래다.
더 이상 학교를 가지 않았고, 수진을 부르며 학교 가자고 소리치는 일도 없다.
내가 아닌, 언제나 바쁜 그들은 당연히 집에 없다.
간혹 할아버지가 움직이는 발바닥이 거실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난 이제 그 소리마저 반갑다.
그렇게 꿈꾸던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 슬픈 일이 되었다니 괴이하다.
난 그 쓸쓸함과 슬픔이 찾아오면 또 눈물방울을 먼저 흘렸다.
아침부터 난 청승을 떨었다.
일부러 우울한 음악을 들었고 일부러 우울한 시편을 찾았다.
그러다 나의 열린 엉덩이 사이로 나오는 눈치 없는 방귀 소리에 소스라치다 방긋 웃고 만다.
이것이 지금부터 내가 겪어나가야 할 나의 삶이라니, 참 끔찍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눈을 감고 글을 써 내려간다.
우울, 슬픔, 죽음, 고독, 고난, 의 단어로 가득 찬 페이지가 한 장에 담기면 또 다음 장을 써 내려갔다.
이번에도 같다. 우울, 슬픔, 죽음, 고독, 고난, 그리고 내가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느낌의 단어, 홀로, 혼자, 또 남는다, 무관심이라는 것.
초등학교 시절 먹을 것을 사주며 친구를 만들어 보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갑자기 부끄러워져 숨고만 싶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정오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집에서 가장 한가한, 할 일 없는 나는 할아버지의 점심을 챙겨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난 할아버지처럼 거실 바닥을 쓸며 걸었다.
겨우 주방까지 나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라면을 끓였다.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늘 물의 양을 맞추지 못했다.
나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해 흐르는 눈물을 방치하는 것처럼.
이것마저 잘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
이미 라면을 냄비 속에 넣어 버려 가벼운 봉지만 남은 그것을 휙, 하고 던져 본다.
한 번에 무겁게 떨어지지 않는 라면 봉지는 할 일 없는 나처럼 천천히 둥둥, 공기 속을 맴돌다, 홀로 구석에 쳐, 박힌다. 그 꼴 한번 나와 같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공부하라고? 웃기시네, 나의 뇌 속은 이제 분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식탁 위, 지역 신문이 눈에 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집어 들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구인란에 눈이 옮겨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라는 생각보다 할 수 없어도 해야 한다, 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나의 엄마는 나를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엄마는 눈으로 나를, 나의 등을 떠 밀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집은 더 이상 쉴 수 있는 집이 아니다.
갈 곳 없어 눌러앉아 있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몇 통의 전화 끝에 한 곳을 선택했다.
며칠 만의 외출인지 모르겠다.
그곳은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가끔 들르던 서점 바로 위층으로, 나는 왜 이곳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을까?
이제 다시 보니 빨간색 간판에 검은 글씨가 눈에 확, 띄었다.
계단은 조금 가파르고 손잡이를 잡지 않고 올라가기는 조금 위험해 보였다.
이곳에 손님이 올 수나 있을까? 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난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커피의 향에 나의 뇌가 좋다, 는 감정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이 향은 정말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나보다 더 큰 눈과 큰 쌍꺼풀을 갖고 있는 사람을 처음 본다.
“아, 아까 전화 한 친구?”
“네”
“이리 와서 앉아요”
그 사람은 이곳의 사장인가 보다.
밖에서 올려 본 것보다 더 넓었으며 통유리로 되어 있어 보이는 바깥 풍경이 두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나는 꼭 이곳에서 일을 해야겠다, 고 마음먹었다.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집을 떠나려면 꼭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분노가 머리 위에서 폭발한다면 엄마 아빠 그리고 우성이 우정이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자의 말을 들으며 성게의 가시를 품는 중이라는 이미지를 지워 내기 위해 착한 아이 흉내를 내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맘에 여유를 갖게 해 준, 이 사람은 내게 왜 대학교를 가지 않았냐고 묻지 않았다.
사실 요즘 나는 왜 학교를 가지 않아?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 중이다.
특히 엄마와 관계를 맺고 있는 동네 아주머니들, 그리고 성당 사람들, 나는 아주 지긋지긋하다.
붙은 학교를 보내주지 않은 건, 엄마와 아빠인데, 왜 내가 그들의 지인들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건지 그럴 때마다 분노가 툭, 하고 터져 꼭, 엄마와 다투게 된다. 하지만 이 여자는 내게 그런 말을 묻지 않았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난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내게 당장 내일부터 나올 수 있냐고 말했다.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다.
이곳에 나올 수 없다면 난, 다시 교복을 입고 고등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서나 정신병원 비슷한 곳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치를 떨었던 붉은 성이 그리워 교복을 입는, 이 생각을 나는 매일매일 했다.
“네 내일 몇 시까지 올까요?”
갑자기 커진 나의 목소리에 여자의 그 큰 눈이 더욱 커졌다.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응, 내일 열 시까지 와요, 오면 내일은 배우는 날이니까, 부담 느끼지 말고
그리고 이거 어려운 것 없어요, 아주 단순해”
여자는 반말과 존댓말을 아주 어울리게 잘도 섞어가며 말했다.
마치 내가 성인인 듯, 성인이 아닌 듯, 인정하지 않으려는 말투로, 물었다.
난 마지막까지 착한 아이처럼 인사를 꾸벅, 하고 그곳을 나왔다.
아찔한 계단을 내려오며 나의 아드레날린은 폭발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3.1 운동을 지나 대한민국이 독립이 된 그날처럼 나는 행복했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이 해방감은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난 이 소식을 수진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다.
수진은 전화를 받자마자 응석을 부렸다.
“보고 싶어”
우린 방학도 아닌 이 시간을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이별하는 중이었다.
이건 앞으로 우리의 삶에 가까이 있는 단어가 될 것이다.
이 시기만 해도 난 그걸 잘 몰랐다. 수진도 정희도 해연도 그랬을 거다.
수진은 내가 먼저 돈을 벌게 된 것이 뭐 큰일이라도 해 낸 것처럼 나를 칭찬했다.
내 몸에 박힌 성게의 가시가 뜨거운 감동에 녹아 사라져 동그란 모양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 커피라는 것을 맛보게 되었다.
이때는 지금의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 커피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랬다. 내가 사는 곳은 작은 도시에 불과했으니까.
우린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이곳을 커피숍이라고 불렀다.
커피의 종류는 지금의 종류와는 비교도 안 되게 단순하다.
커피의 브랜드 이름을 붙여 메뉴판에 늘어놓았다.
예를 들어 초이스, 맥심, 네스카페 또는 단순하게 커피에 생크림을 얹어 비엔나란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곳의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파르페다.
나는 이것 만들기가 제일 귀찮았다.
정말 손이 많이 갔고 없는 정성도 붙여야 완성이 된다.
주머니 사정이 괜찮은 사람들은 참 잘도 시켜 먹는다.
한꺼번에 파르페 네 개 주세요, 란 소리가 들리면 난 그 순간부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땀을 삐질삐질 흘렸고 등줄기는 따끔거렸다. 하지만 나의 적응 능력은 약간 모자란 애,라는 어릴 적 엄마의 잔소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 눈치는 더 빨랐다.
나도 내게 이런 장점이 있었는지 나조차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나는 점점 이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이곳에 적응할수록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었다.
마치 내가 자꾸만 안주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아, 고개를 세차게 또 세차게 흔들어 보았다.
나는 사장을 언니라고 불렀다.
사실 언니와 나이도 많이 차이 나지 않았다.
시집을 너무 일찍 간 탓에 벌써 유치원을 다니는 딸이 있었다.
언니 말로는 탓, 이라는 표현을 자주 했다.
그렇다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 원망 비슷한 감정은 아마도 언니 남편에 대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언니는 가끔 일을 마치면 맛있는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거나 함께 술잔도 기울였다.
생각해 보면 언니도 나와 같이 조금은 외롭고 위태로웠던 모양이다.
나는 간판 불을 끄고 손님이 안는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내가 마치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니는 내가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이때 제대로 술을 먹어 본 것이 처음이다.
사실 난 우리가 학교 다닐 때 한창 유행하던 백일 주 같은 것을 고등학교 때 처음 먹어 보았다.
중요한 시험을 백일 남겨 두고 먹는다는 그런 유치한 유행이다.
선생들도 백일 주라는 것 때문에 여간 신경을 쓴 게 아니었다.
그만큼 백일 주, 는 엄청난 유행을 했다. 그때 난 처음 먹어 본 술을 위에 담자마자 모두 토해 버렸다.
수학을 잘하지도 못하는 우리들은 내가 토하는 모양을 보고 포물선, 이라는 명칭을 붙여 주며 함께 깔깔댔다. 그때 우리가 먹었던 안주는 하얀 치토스, 치킨 맛이 나는 아주 짭짤한 간식이다.
나는 아직도 그 기억 때문에 치토스를 먹지 못한다.
엄마와 아빠는 절대 모를 이런 일, 엄마 아빠가 모르게 뭔가를 한다, 는 의미는 아직도 나의 미간을 간질거리는 느낌이 있다. 꼭 나쁘다, 는 표현만 할 수는 없다.
나름 난, 적어도 그때를 기억하면 행복, 이라는 단어가 따랐기 때문이다.
사장 언니는 술을 잘 마셨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얼굴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정신이 곧았다. 정말 대단했다.
난 소주를 넘기기가 사약을 넘기는 것보다 힘들었다.
물론 사약을 먹어 본 건 아니지만 역사 드라마에서 장희빈이 사약을 먹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는 것을 보면 느껴지지 않은가, 나는 꼭 소주를 마시면 숨을 쉬지 않고 꿀꺽 넘긴 후 물을 마신 후 숨을 뱉었다.
그것은 소주의 쓴맛을 감쪽같이 없애 주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언니가 만들어 준 김치찌개는 정말 맛있다.
이렇게 요리도 잘하고 커피를 팔아서 부수입을 얻고 예쁜 딸까지 있는 이 언니가 난 정말 부러웠다.
적어도 불안한 미래,라는 나만이 갖고 있는 타이틀과는 거리가 먼 삶일 테니까.
내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말을 엄마에게 했을 때, 엄만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어른들의 생각에 커피숍이란, 다방? 즘의 것으로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커피숍을 모를 리 없다. 아주머니들과 자주 가는 곳이었을 테니 말이다.
역시 아빠도 부정의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에는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난 내심 아빠를 생각했을 때 우재는 절대 일, 이라는 것을 하게 만들지 않을 거다, 또는 우재야 그냥 공부해, 란 소리를 기대했고 당연히 그 말을 한 번쯤은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순식간에 찌그러지고 마는 부푼 풍선과도 같았다.
그렇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입학을 위해 긴 머리카락을 잘랐을 때,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그 보수적인 아빠는 이제 없다.
딸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쯤이야, 이젠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된 것이다.
우리의 삶에 돈이라는 것은 아주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난 벌써부터 그것에 환멸을 느꼈다.
우리에게 가득했던 돈, 이란 것이 구멍을 내는 순간부터 우리는 남보다 못한 가족, 또는 서로를 비난하는 적, 같은 것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래서 거긴 돈을 얼마나 주냐,라는 질문부터 했다.
내가 받는 돈은 엄마에게 아주 적은 금액이겠지만 나에겐 중요한 미래가 들어있는 가치 있는 돈이다.
엄마가 말했다.
“어린애들을 쓰면 돈도 적게 줘도 되니까, 그 사람들은 그게 낫겠지”
엄마는 역시 부정적인 말끝을 흐리며 계속 중얼거렸다.
분명 좋은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또 한쪽 귀를 막고 있다.
왜냐면 난 또다시 다투는 결론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엄마보다 커피숍, 언니가 나를 더 이해했고 나를 더 보듬어 줬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린 긴 방학을 끝내고 졸업식을 했다.
우리의 졸업식은 조금 달랐다. 엄마와 아빠는 오지 않았다.
가지 않아도 돼?라는 엄마의 말에 난 어, 라며 말했지만, 그 서운함은 입안에서 쓴맛으로 대신 올라왔다.
사실 서러운 그 흔한 눈물을 또 조금 흘렸다.
난 수진 정희 해연에게 말했다.
“난 엄마 아빠, 오지 말라고 했어”
수진이 말했다.
“아, 그래? 흠, 나도 싫어 오지 말라고 할 거야”
섬세하게 나를 배려하는 수진 정희 해연이가, 고마웠다.
우린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졸업식을 치렀다. 정희도 해연도 같았다.
귀에 들어오지도 않은 교장의 이야기는 늘 지루하기 짝이 없다.
아주 긴 시간을 강당에서 보낸 후, 마지막이 될 교실로 들어갔다.
담임의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 더 밝았지만, 그 어떤 때보다 슬퍼 보이기도 했다.
담임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짧은 막대기로 손바닥을 탁탁거리며 말했다.
“니들 졸업했다고 시간을 쓸데없이 쓰지 말고
항상 유익하게 항상 알차게 알아 들었냐?
뭐, 그래도 한동안은 즐겨라, 하지만 너희들의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들 알았냐?”
담임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는 언젠가는 정말 그리운 목소리가 될 것이다.
반장의 마지막 차렷, 경례가 울려 퍼졌다.
마치 그 장면과 소리는 아주 천천히 영화의 한 장면이 되어 나의 눈 안에 담겼다.
창문을 열어 놓은 틈 사이로 바람이 꽃잎을 데리고 들어왔다.
꽃잎이 나의 마지막이 될 장면들을 따라다닌다.
나의 학창 시절의 마지막 담임, 그리고 사투리, 짧은 막대기, 마지막 반장, 마지막 교실 마지막 책상과 의자, 나의 마지막 짝꿍 현아, 마지막으로 신어 보는 실내화, 수진과 도시락을 몰래 먹던 더러운 화장실, 가장 지나치기 싫었던 교무실, 추운 겨울 딱딱한 운동장과 가장 싫어하던 체육, 그리고 넓은 운동장, 함께 빌려 돌려 입은 냄새나는 체육복, 선생 몰래 치마를 입고 타 넘던 울타리, 한여름 교복을 흠뻑 적신 물싸움 장소 수돗가, 매점의 라면 봉지, 그리고 컵라면, 매점 아주머니, 그리고 나의 친구들, 내 얼굴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던 초록빛 칠판, 교실 복도 위, 꺄르르륵, 눈에 보이지 않는 웃음소리, 또는 지쳐 힘들었던 나의 또는 너희들의 울음소리. 마지막 나의 붉은 성
이젠 정말 안녕.
수진 정희 해연은 대학교를 정했다.
수진이는 내 집에서 가까운 곳, 정희는 조금 떨어진 곳이다.
현아는 우정이가 다니는 학교에 붙었다.
마지막 공부에 불을 붙이던 현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해연은 작은 소망을 이루었다. 그러니까 그건 나의 꿈과 조금은 같다.
해연은 서울 근처의 학교에 붙었고, 해연 말로는 미리부터 계획을 치밀하게 짜 놓았다고 한다.
엄마와 떨어져서 살고 있는 해연은 엄마와 좀 더 가까운 곳에 있겠다는 굳은 다짐이 좋은 결과를 이룬 셈이다. 우린 첫 이별에 조금 서툴렀다. 조금이라도 남은 시간을 우리는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속에 이별, 이라는 슬픈 단어가 우리의 웃음을 흐리게 만들었다.
내가 이별을 준비하는 자세는 조금 더 특별했고 조금 더 아팠다.
아마도 내 속에는 대학교,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나는 좀 더 모질게 좀 더 날카롭게 더 독하게 친구들과 이별했다.
모두가 대학 생활에 적응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우리가 해 보지 않았던 경험을 하느라 바쁘기 시작했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경험한 수학여행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소통을 만끽할 수 있는 MT를, 수진도 정희도 해연도 그리고 현아도 경험한다.
나는 조금씩 또다시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우리의 첫 이별의 공간은 조금씩 더 길게 조금씩 더 넓어지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관심사와 대학생의 관심사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난 나의 미래, 그러니까 우선 돈을 번다, 는 것, 나에게 맞는 일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대학 생활에서 친구와 관계, 또는 이성과의 만남, 그리고 서클 활동, 등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다시 또 긴 여정의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그리고 모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세상은 내게 또 다른 박탈감과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던 것이다. 난 그럴수록 스스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좁히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수진의 행동과 뜸한 연락에 무덤덤해 지려 노력했고 그 노력은 오히려 티가 나고 있었다.
난 되도록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이별은 길어졌고 나는 무뎌지려 애를 썼다.
이 행동은 아주 속 좁은 어린아이의 모습과 같다.
나의 자존심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난 대학 생활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과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그리고 새 친구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그들이 미웠다.
그렇다고 내 시급은 얼마야, 그리고 난 돈을 벌어서 서울로 갈 거야, 근데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식의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눌 수는 없지 않은가, 난 그렇게 스스로 낮은 곳으로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점점 낮은 곳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고 있었다.
유일하게 나와 성격이 비슷한 현아 앞에서는 나의 좁은 속을 모두 드러내며 그것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현아와 나는 서로를 옭아매는 흔한 우정의 성격을 띠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현아는 또다시 자취 생활을 했다.
현아의 오랜 자취 생활이 조금 지칠 법도 하지만, 현아는 참 단단한 아이다.
현아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교를 다녀오고 남은 시간을 온전히 그렇게 보냈다.
현아 또한 돈, 이라는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것은 우리의 관계를 점점 더 끈끈하게 만들기도 했다. 현아는 대학 생활을 그다지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난 쉬는 날이면 현아를 아주 자주 만났다.
하지만 늘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고 가는 현아가 시간을 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어려운 시간인 만큼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많은 이야기를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꽉 막힌 답답한 내 가슴은 현아를 잠시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
불평불만 없이 현실을 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현아가 나는 부러웠고 닮아지려 애를 썼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진은 내가 했던 통학 생활을 느지막이 하는 중이다.
목소리에도 피곤함이 역력하다.
내가 그 피곤함을 모를 리 없다.
“원룸을 알아보려고”
“그게 낫겠지”
“응, 부모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셔”
“잘 됐다”
엄마는 가끔 내가 놀랄 만한 일을 만들어야 이야기한다.
사실 난 오랫동안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니 진지하게 대화를 하지 않았다.
하루에 두세 마디가 다다.
예를 들어 다녀왔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세 마디도 안 되는 말이다.
그리고 엄마도 밥 먹었어? 밥 먹어, 밥 안 먹어? 줄곧 밥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 수진이 집에 왔던 날, 엄마가 뜬금없이 수진에게 말했다.
“원룸 구할 동안 여기서 학교 다니지 그래?”
나는 엄마의 말에 정말 놀랐다.
갑자기 왜 이런 배려를 하지? 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관심을 보여준다는 것에 난,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의 수진은 말했다.
“아, 정말요? 그래도 돼요?”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진이에게 또는 나에게 확실함을 보여주었다.
의도치 않게 수진은 짧은 시간이지만 나와 함께 또는 우정이와 함께 방을 썼다.
당연히 불만을 가득 담은 우정이지만 우린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다시 서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니 우정이와 수진이는 성격이 잘 맞았다.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수진과 나의 약간 벌어진 틈은 다시 꼼꼼하게 붙기 시작했다.
우린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웃다 찾아온 배고픔에 도둑고양이처럼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것을 털어먹었다. 수진이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봄나물 무침 버전은 새벽마다 그렇게 사라지곤 했다.
엄마는 그런 수진이를 보고 한마디를 던졌다.
“쌀값 내놔 이것들아”
난 엄마가 농담처럼 이렇게 던지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아 가끔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엄마가 수진에게 당분간 있어도 좋다, 는 말을 하고 쌀값이라니, 친구인 나의 입장은 손톱에 낀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설사 그 말이 정말 농담이라고 해도 나는 정말 자존심이 바닥에서 제 멋대로 굴러다니며 밟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진은 두 달 정도의 나와 동침을 끝내고 드디어 자신만의 성을 갖게 되었다.
수진도 언니들과 방을 늘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홀로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성스러운 일인지 난 그 마음을 아주 잘 안다.
그야말로 수진은 아주 신이 났다.
수진은 마지막 밤을 내 집에서 보내고 엄마에게 작은 선물과 그 말 많던 쌀을 한 포대를 놓고 갔다.
난 엄마의 표정을 일부러 살피지 않았고 보지 않았다.
수진이 엄마에게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으며 인사하는 것도 살피지 않고 보지 않고 듣지 않았다.
세상에 엄마는 수진과 안녕을 위한 포옹도 한다.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연 사람에 따라서 사람이 변할 수가 있다는 말이, 실제하고 있는 일인가 보다.
그렇게 수진이 떠나고 우리의 틈은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수진은 학교생활 내내 나와 붙어 있길 바라는 아이였다.
오직 내게만 의지했다. 난 수진의 그런 점 때문에 늘 신경이 쓰였고 그것을 지켜 주고 싶었다.
내게 수진에 대한 그런 책임감, 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는 생각에 늘 걱정투성이었다.
영주도 내게 그랬을까. 난 이제 영주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수진은 늘 내가 곁에서 지켜 줘야만 할 것 같은 아이였다.
그리고 사실 그랬다.
하지만 수진이 대학에 들어갔고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후, 아주 빠르게 수진이의 성격과 생활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이 성격이 수진의 실제 성격이었을지 모른다.
배경에 따라서 진짜 성격이 나온다는 맞는 말일 것이다.
수진은 이제 더 이상 내게 의지 하지 않아도 욕심내지 않아도 나 같은 친구가 주변에 차고 넘쳤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 신분인 내 친구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가끔 수진과 만나는 날이면 수진은 꼭 친구들과 동행했다.
내 친구는 아니지만 내 뜻과는 다르게 나는 그들의 이름을 듣고 생김새를 눈에 넣으며 익혀 갔다.
하지만 내 가슴속은 텅 비어 있는 겨울 수영장과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 때보다 겨울잠 자는 곰의 긴 겨울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우정은 이른 방학과 함께 서울 고모 집에 머물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우정이가 하고 싶다, 하는 것은 다 들어주었다.
특히 공부에 관해서 후했다.
한창 유행이던 여러 종류의 컴퓨터 자격증에 관한 배움을 우정이는 그 넓은 서울 땅에서 꼭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내내 방을 혼자 쓰며 더 우울함에 빠질 수 있었다.
한 창 유행을 타던 때라 아마도 그 학원비도 어마어마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빠는 빚을 내서라도 우정에 대한 것은 꼭 해주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 난 학교를 가지 못한 일에 관해 우정이 다니는 그 비싼 학원과 비교하지 않았다.
난 둘째니까, 무관심과 홀로, 란 것의 상징이었으니, 한 마디로 그런 것들에 감정이 휘둘리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잠을 자다가 나도 모르게 발버둥을 쳤다면 그 모든 것들을 대표할 감정이 꼭 밤에만 분출된다는 것이다.
나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곳에 오는 손님들에게 원하지 않아도 얼굴이 알려졌다.
나는 누구인지 몰라도 그들은 나를 알았다.
아주 멀쩡하게 생긴 남자에게 또는 멀쩡하지 않은 남자에게 인기가 꽤 있었다.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었지만 난 점점 정상적인 것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조금 위태로웠다.
흔해 빠진 나의 눈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장마철 비처럼 내리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난 결국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이곳에서 일을 하며 번 돈으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내 삶을 시작한다, 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말이지 그 돈은 가당치도 않았다.
그저 집 밖을 나올 수 있는 도구밖에 되지 않았다.
나의 발버둥도 쓸데없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해가 질 때 들어오는 짧은 해도 싫어 그 작은 창문도 닫아 버렸다.
모두가 외출한 후, 다시 할아버지의 발바닥이 거실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이불을 입안에 꾸역꾸역 집어넣은 후 소리를 질렀다. 온몸에 힘을 주어 지른 소리 덕에 나의 귀는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막힌 느낌이 들었고 턱은 누구에게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다.
그리고 나는 또 눈물을 흘렸다.
바깥의 공기는 벌써 따뜻하다.
난 계절의 시작 단계도 아직 느끼지 못한 상태다.
봄 하늘을 감싸는 공기를 맛있게 먹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베란다에서 밑을 내려 보았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느끼던 높이의 공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쯤은 떨어져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인정하지 않으려 애썼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중얼거린다.
“그래 인정하자, 부럽다, 그래 부럽다, 아주 많이, 부럽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이지만 부럽다, 는 말을 뱉고 나니, 솔직한 감정을 뱉고 나니,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부럽다, 대학교 생활을 하는 너희들이 너무 부럽다.
내 삶도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던 가식적인 내 모습을 생각한다.
하,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아닌 척 떠는 나는 참 구제 불능이었다.
난 더 이상 성당을 나가지 않는다.
공포를 느낄 때나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난 저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신을 찾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성당을 나가지 않게 되었고 이제 억지로 그곳을 끌고 다닌다고 내가 따라갈 나이도 아닌 것을 엄마 아빠도 알았던 거다.
성당에 관한 말 한마디조차 내게 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되는 것을 우리는 서로 원하지 않았을 뿐이다.
충현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이다.
물론 우린 메일로 연락을 꾸준히 해 왔지만 만나지 몇 년이 지난 후 오빠를 보려고 하니 여간 싱숭생숭한 게 아니었다. 난 밤새 뜬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그 시간을 맞이했다.
오빠가 말 한 커피숍은 시내 중심에 있어서 찾기가 쉬웠다.
역시 신사 충현 오빠는 들어가지 않고 나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빠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떨군다.
이런 멍청이, 분명 나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오빠는 봤을 것이다.
왜 이런 열기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와 우재”
충현 오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때 내게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손바닥을 누이며 길게 뻗었다.
난 그게 악수를 청한 건지 나를 데리고 들어가기 위한 행동이었는지 가늠되지 않았다.
내가 어색하게 손을 내밀자, 오빠는 손바닥을 세우며 악수하는 자세로 바꿔 잡았다.
“잘 지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충현 오빠는 대학교를 멀리서 다닌다.
지금은 물론 방학을 해서 온 것이라고 한다.
아르바이트하느라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며 오빠는 연신 나를 칭찬한다.
“우재 많이 컸네?”
뭐지? 많이 컸다니, 오빠의 눈에는 내가 아직 중학생으로 보이는 건가?
오빠는 내가 대학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다.
우리가 연락해 온 메일에 모든 것이 담겨 있으니까, 나는 말 보다, 대화보다 글이 편하다.
그리고 글 속에 내 솔직한 감정을 더 자세히 표현할 수 있었다.
충현 오빠는 나의 그런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내가 말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오빠는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라는 식의 질문도 하지 않는다. 충현 오빠는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재밌는 얘기 해 줄까?”
내가 꼭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으면 오빠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난 충현 오빠가 이 말만 해도 고마움에 그저 웃었다.
“얘기 시작도 안 했는데 웃어?”
그렇게 우리는 함께 다시 웃는다.
나는 맛도 잘 모르는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충현 오빠의 손과 얼굴은 태양에 그을려 그늘이 져 있었고 선명한 시계 자국도 남아 있었다.
“오빠?”
오빠는 들이마신 담배를 고개를 돌리며 뿜은 후 나를 보았다.
“응?”
“시계 안 찼네요?”
오빠는 자기의 손목을 내려보며 놀란 눈치다.
“엇? 그러네? 너 만난다고 긴장했나 보다”
“치잇”
충현 오빠는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처럼 나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흩으러 놓았다.
오빠는 건설 현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왜 그것을 노가다, 라 부르는지 이 단어는 성질이 꽤 세어 보였다.
그 일은 전문적이지도 않고 간단하지만 굉장한 노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막노동이라고도 부른다며 한 겨울 방학 동안, 내내 일 해온 터라 강한 빛에 살이 드러난 부분은 몽땅 타 버렸다고 했다. 이제 보니 오빠는 예전보다 부쩍 말라 있었다.
왜 우리는 그때 이렇게 현실이 팍팍했을까,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마음이 좋지 않아도 되는 일인지 괜한 오지랖은 아닌지 그게 의문이다.
오빠는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핏줄이 선명한 팔을 보여주며 자랑하듯 말했다.
“그래서 생긴 근육”
나는 피식 웃어주었다.
“용돈 벌었으니까 우리 우재 맛있는 거 사줄게”
오빠는 그때 한창 유행하던 경양식 집에 나를 데려갔다.
좀 더 근사한 말로는 레스토랑, 이라고도 한다.
어릴 적 가족들과 자주 먹던 돈가스 식당과 아주 다른 곳이다.
처음 나오는 수프에 나는 빵을 찍어 먹었고 오빠는 밥을 시켰다.
알고 있던 이 경험이었지만 오빠와 함께하는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실 난, 오빠 앞에서 뭔가 음식을 삼키려 하니,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이 점은 예전부터 그랬다. 정말이지 내숭을 떨고 있는 거다.
수줍음에 음식을 씹지도 않고 꿀꺽, 하고 삼키기도 했다.
난 아직도 오빠 앞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부끄럽다.
물을 마시려 컵을 들어 올리는 것도,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일어서서 움직이는 것도 갑자기 두피가 가려워 손을 올리고 긁다 눈이 마주치는 것도, 모든 것이 그랬다.
그리고 난 이 레스토랑의 돈가스 맛이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것을 다 먹어 치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맛도 모르는 커피를 마시며 오빠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우재야”
나는 충현 오빠를 보았고 오빠는 그런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우재는 웃으면 눈이 예뻐
그러니까 많이 웃어"
난 솔직히 어릴 적부터 예쁘다, 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성장했다.
연립 아파트에 살 때는 아빠의 회사 동료 아저씨들이 자신들은 딸이 없다며 예쁜 우재를 달라, 또는 내게 직접 아저씨네 집에 가서 같이 살자,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무서운 말일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그때는 흔히 하는 농담거리의 이야기였다.
지금 충현 오빠가 내게 예쁘다, 는 말을 했다.
난 분명 귓불이 발갛게 익어서 오빠의 눈에 들켰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 느낀 부끄러움의 최대치다.
난 괜히 옆을 보며 바닥을 보며 딴청을 부렸다.
그리고 오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될 때, 그때 가 군대”
난 정말 놀라 대답했다.
“어?”
충현 오빠가 말했다.
“어? 하하하하하하하하, 우재 놀랐네? 눈이 더 커졌어”
“왜? 갑자기?”
“갑자기 아니야 이 나이쯤 되면 다 가는 게 군대인데 뭐”
난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뭐 남자아이들이 군대, 군대, 하는 건 들었지만 충현 오빠가 해당하는 일인지 생각해 보지를 않았단 말이다. 맞다, 군대는 이 나이쯤 되면 다 가야 한다. 갑자기 오빠와 메일을 주고받는 일도 이렇게 맛 모르는 돈가스를 먹는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눈앞에 절망이 다시 드리웠고, 난 슬퍼지고 있었다.
오빠는 모를 거다.
메일로 주고받는, 이야기 때문에 내가 조금이나마 씩씩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난 이때, 이 만남이 충현 오빠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기다림은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잊을 때까지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오빠와 나의 관계가 흔한 여자 남자의 관계가 아니란 건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린 무언의 약속 같은 느낌이 있었다. 군대를 다녀오거나, 또는 내가 좀 더 어른이 되면, 이라는 전제로 서로를 이성으로 만나고 싶다는 그런 약속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안다. 오빠도 분명히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분명 우린 그랬는데, 오빠와 함께 지나온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다니 이건 좀 심각한 일, 아닌가. 난 이때부터 가슴속의 분노가 겉으로 표현되는 모양이, 폭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겉잡을 수없이 나는 그렇게 비뚤어져 갔다.
생각만으로도 무서운 아빠의 모습, 키가 크고 어깨가 벌어진 웃을 땐 눈이 보이지 않으나 화가 나면 그 작은 눈 속의 눈동자가 확연하게 보이는, 그 무서운 아빠의 모습도 이제는 두렵지 않을 정도까지 되었다.
나의 완벽한 삐뚤어짐이 시작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절대 외박이란, 있을 수 없는 일로 정해져 있다.
그것이 우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밥 먹듯이 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마치 우정이의 사춘기 시절 닿기만 해도 불이 붙을 것 같던 그때가 내게 옮겨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아빠와 엄마의 잘못, 이라는 단어의 핑계로 나는 이렇게 불구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손을 뻗지도 닿을 수도 없었다.
이내 타서 사라져 버릴 테니까.
내가 머물던 곳은 현아의 자취방이나, 함께 아르바이트하는 친구의 집이거나, 불 보듯 뻔했다.
그곳에서 잠을 청하고 일어나 아침 햇살을 받고 있으면 나 홀로 마치 지옥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그렇게 더러운 기분을 느끼다니, 정말 그랬다.
하지만 난 그 기분을 일부러 더 느끼고 싶은 사람처럼 그 짓을 반복했다.
그렇게 몰래 집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처음 분노를 내비쳤을 때처럼 나를 대하지 않았다.
이제 아빠와 엄마도 나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다,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난 온갖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해치웠다.
나는 일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지 않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수진의 약간의 징징거리는 목소리가 부쩍 그립다.
수진은 남자 친구가 생겼다. 정말 진지하게 만나는 사이였다.
나도 함께 몇 번 만나 적이 있지만 역시 난 잘 어울리지 못했다.
우린 전보다 더 사이가 멀어졌다.
나는 나의 생활에 충실하지 못했지만, 수진은 자신의 생활에 아주 충실했고 그 어느 때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이제 수진의 얼굴은 늘 웃고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붉은 성에서 내게 보이던 수진의 미소가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