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의 절반이 넘게 지나갔다.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많은 계획을 세웠고 이행했는데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계절학기 마저 종강한 후 큰 목표가 사라져 이틀간 붕 뜬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해외로 교환학생을 가보고 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커피를 유난히 늦게 마셔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해외 파견교 리스트와 교환학생 필수요건을 확인했다. 토플 iBT 90점 이상을 요구하길래 홧김에 토플 시험료를 결제했다. 내년 2학기 파견을 희망하니, 다음 학기가 끝날 때 즈음 파견교신청을 해야 한다. 가산점도 받아야 해서 교내 봉사도 해야 할 것이다. 따뜻한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 싱가포르, 호주, 말레이시아 같은.
목표가 생기니 하루하루 힘이 났다. 영어공부가 오랜만이라 도서관에서 영어 단어장만 몇 시간을 보았다. 단어장 예문도 보고 깨알 같은 퀴즈도 모두 풀었다. 학창 시절 한 번도 이렇게 꼼꼼하게 단어장을 본 적이 없는데, 그때 이랬다면 영어 단어를 잘 외우지 않았을까 싶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삼주정도 영어단어만 공부하니 글이 읽혔다. 항상 글을 읽을 때 이유 모르게 긴장했었고 글자들이 튕겨나갔었다. 수능 일 등급을 받았지만 내가 한 것은 시험공부였지 언어 공부는 아니었다. 지금은 글을 읽어도 머리가 아프지 않다. 영문을 읽어도, 국문을 읽어도 모두 잘 읽힌다. 처음 경험하는 감각이다. 이제야 언어 분야에서 뇌가 커졌나 억울하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썼지만 지금은 본문 내용을 모두 지워버린 <트라우마>… 글에 나왔듯 오래된 내 트라우마를 극복해서일까 요즘은 큰 일 아니고서야 머리가 아프지도 않고 이유 모를 불안함도 많이 사라졌다. 요즘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입시 때, 불확실한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부정반응인지 공부를 해야만 불안이 사라졌고, 공부를 적게 하면 더욱 불안해졌다. 나를 더욱 옭아맸었고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물론 알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결과에 집착했다. 마음속 찝찝함은 공부를 마치고 난 후에 응어리로 남아있었고, 공부를 하는 중에도 내가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했다. 그동안 나를 둘러싼 것들이 모두 평온한 상태에서 진정으로 공부에 집중했던 날의 빈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초등학생 때 선행에 급급해 자존심에 울며 숙제를 했고 중학생 때는 그 덕분인지 공부를 잘해 3등으로 졸업도 했는데 고등학교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했고 점점 오르지 않는 성적을 보며 쏟은 시간과 노력은 부정할 수 없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많이 자책했었다. 나는 찝찝함이 없어야 공부를 즐길 수 있는데 찝찝한 일들을 그대로 두었으니 온전리 즐기며 깊이 있게 흡수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신의 일부가 다른 곳으로 향해있으니. 공부하는 것을 즐겼던 것도 사실이지만 늘 이런 찝찝함이 있었어서 재밌다는 생각보단 버틴다는 감정이 컸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방황하지 않는지 아니면 방황해도 내색하지 않는지 이미 방황의 시기가 지나간 것인지. 다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을 갖추고 있는지. 나는 겉은 멀쩡해 보일지라도 속으론 싸우는 날이 많았는데.
그런데 방학이 되어 한동안은 버티며 공부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공부하는 게 힘들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스스로를 많이 혹사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밀어붙이고 목표를 이루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자 자랑이었고 내가 당당할 수 있던 이유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입을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고, 성적대가 비슷한 학생들로 구성된 대학에서는 성적에서 큰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방황도 많이 했다. 궁금한 걸 알아가는 건 좋은데 내가 왜 경쟁을 해야 하지? 언제까지 해야 하지? 이 생각들이 항상 머릿속을 맴돌았고 높았던 1-1 성적을 뒤로한 채 1-2와 2-1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브런치이기에 꾸며내는 말음 적지 않겠다. 성적이 괜찮았을 때는 그 좋은 성적표 사이에서도 개선점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절대 만족하고 칭찬받으려 하지 않았다. A+가 아니고 A0여서 재수강도 못하고 내 성적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A0도 잘한 건데(이번 학기는 A0가 가장 높은 성적이다. 일 년 사이에 이렇게 상황이 변하다니). 성적이 안 좋으니 기분은 잡치고… 몸이 망가지도록 노력한 내 한 학기가 부정당하는 기분을 두 학기 겪었다. 성격이 많이 변했다. 전보다 유연해졌고 원하지 않았던 실패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릴 때는 내가 특별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평범하니 고고하게 떠다 먹여줄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이것저것 찾아 돌아다니게 되었다. 평범하다는 건 오히려 좋은 것 아닐까. 나를 평가절하하는 건 아니고, 내가 실수할 수도 있고 다시 하면 되지 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거다.
그래서 생각이 크게 바뀐 이 말랑말랑한 상태이서 스스로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이 젊은 이십 대 초반에 해외에서 살아봐야겠다.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겪을 수 있지 않을까? 대학 타지 생활을 한 것이 내가 안전지대를 벗어난 첫 경험이었다. 전적으로 자의는 아니고 타의가 조금 섞였지만, 지금은 본가만큼 익숙해진 이곳에서 그럭저럭 잘 지내는 나를 보며 꽤 나약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학교도 나의 안전지대가 되어가니,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야겠다. 가장 좋아라는 소설인 <데미안>에는 새가 성장하기 위해선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뉘앙스의 구절이 있다. 안전지대를 어떻게든 깨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 2026년을 마무리하고 2027년을 맞이하는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있겠지. 2025년의 22살인 내 정답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깨달음으로부터의 방황이 24살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가 된다. 순간적이고 작은 선택들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몇 번 해봤기에, 즐거운 나비효과가 되길 바랄 뿐이다. 결과가 이상적이든 바닥을 치든, 긴 인생에서 내 의지로 충만하게 낭비해 볼 만한 6개월, 아니 2년이다. 오히려 삶에 활기도 생겼으니!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교환학생을 신청하기 위해서 다가오는 학기에 4.1/4.3 이상을 받아야 하며 동시에 iBT 90점 이상 (희망 점수는 100점)을 달성해야 하기에 내 생활이 매우 제한적이게 될 것이라는 거다. 하고 싶은 동아리가 있어 친구에게도 하겠다고 이야기해 뒀는데 실현 가능할지는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대부분일 만큼, 외로움을 즐겨야 할 것이다. 원래 혼자 지내도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이었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의존적이게 된 것 같다. 밸런스를 맞추는 연습을 해야겠다. 아니 이제 연습이 아니고 실전이다. 외로움을 외부와 내부 모두에서 채우며 스스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 책 <고독>과 <노르웨이숲>을 읽어볼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우울한 한 주이다. 지친다는 기분은 들었지만 최근에 우울한 적은 없었는데 근래 우울했다. 지난주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잘해드리지 못한 것들이 생각난다. 바쁘면 안 와도 괜찮다는 말에 자주 찾아뵙지 않았는데 시간은 나를 위해 멈춰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스레 삶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자취를 시작하며 본가에 정말 가지 않았는데, 이번 학기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갖도록 해야겠다. 큰 일을 겪어 대면대면하던 아들이 어머니 껌딱지가 된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내가 그렇게 될 것 같다. 앞으로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 슬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하면 안 될까. 그동안 불필요한 곳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속한 곳이 변하면 일부를 제외하곤 바뀌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떠날 인연은 떠난다는 것을, 시잘인연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나는 왜 실낱같은 인연마저 모두 붙잡으려고 노력했는지. 나를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편안하다는 핑계로 신경질적이었다는 걸 정말로 반성했다. 뭐가 되었든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더 쏟아야겠다.
방황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깨닫는 중이다. 지나온 시간 속 나는 방황과 불안, 만족과 권태를 반복했다. 사이클 속에서 방황에 올라탄 거고 언젠가 방황이 끝날거란걸 안다. 방황 이후 잠시 달콤함을 느껴도 다시 권태에 빠져 무기력하다 방황할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방황을 충분히 즐길 것이다. 언젠가 이 방황은 끝이 날 것이라는 걸 알기에. 방황은 권태에서 벗어나도록 세상이 준 선물이다.
마음이 해이해질 때 이 글을 읽어야겠다.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방황하는 중이라면 즐겁게 방황하시고 방황이 끝나셨다면 축하드립니다. 방황에 대한 어떠한 코멘트라도 달아주시면 감사히 읽도록 하겠습니다. 충만한 한 주 맞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