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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May 28. 2024

나와 비슷한 너, 너와 비슷한 나

여행 후 느낀 바

고등학교 동창들과 홍콩 여행을 갔었다. 지금 홍콩에 대해 되돌아보자면, 향신료 냄새, 습한 공기와 하늘과 맞닿은 건물이 떠오른다. 땅에서 올려다보면 건물의 끝이 아득하게 보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휴대폰에 건물이 다 담기지 않을 정도였다. 홍콩 투어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나는 그런 홍콩의 거대함에 놀랐었다.

홍콩행 비행기를 타고 내리자 밤이었다. 바깥 공기가 변한 것이 느껴졌다. 한국과는 미묘하게 다른 냄새가 났다. 숙소에 짐을 풀고 템플 스트리트 야시장을 갔다. 야시장은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관광객들 사이의 가판대에서는 길거리 음식을 팔았다. 우리는 돼지 부속 볶음과 굴 요리를 먹었다. 또 일행이 먹고 싶어하던 참깨 롤을 먹었다. 기대하던 참깨 롤의 맛은 괴상했다. 마치 설국열차의 양갱을 먹으면 느껴질 것만 같은 맛이었다.




홍콩의 건물


시장 주변 여러 건물들이 보였다. 소위 홍콩 감성이 느껴지는 건물들이었다. 적당히 낡아서 칠이 벗겨진 벽, 한자로 적힌 간판들, 좁은 베란다에 걸린 옷들. 좁고 비싼 홍콩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물들이었다. 아마 좁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역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는 건물들이었다.


길거리 음식 구역을 지나치면 잡화 구역이 있었다. 관광지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법한 기념품들이 가득했다. 중국풍의 족자, 심지어는 마오쩌둥 초상화 모양의 족자가 보였다. 스노우볼과 판다 등의 기념품이 보였다. 가득한 잡화를 보며 우리는 이야기했다. "여기 동묘 아니야?"


이 말은 복선이었던 걸까? 나는 여행이 끝나고 거의 곧바로 동묘로 이사해왔다. 정신 없이 이삿짐을 나르고, 정리하고 나서 동네 구경을 했다. 나는 동묘의 여러 건물을 보고 순간 홍콩을 떠올렸다. 칠이 벗겨진 낡은 느낌과 간판의 느낌이 언어만 다른 홍콩과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참지 못하고 건물의 사진을 찍어 같이 여행을 갔던 친구들과 공유했다. 모두 내 감상에 동의하는 것이 신기했다.


동묘의 건물


동묘는 정말 다채로운 곳이었다. 멋쟁이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공존하는 곳이고, 구제와 핸드메이드, 문화재와 도시가 함께 있었다. 동묘라는 지역의 대표격인 동묘 사당은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모신다. 사당의 문을 통해 들어가면 전통적인 느낌이 확 났다. 네모낳게 돌로 둘러싼 연못과 나무들, 기와를 보면 밖이 북적한 시장이라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도심 속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홍콩에도 도심 속 전통이 있었다. 우리는 홍콩에서 구룡성채 공원에 갔다. 중국 전통 양식으로 지은 담과 정원이 있었다. 십이지신의 동상이 웅장하게 있었고, 이국의 꽃과 새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구역에서 체조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주로 중년을 넘은 사람들이 체조를 했는데, 기를 모으는 것 같은 동작을 진행하는 것이 신기했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공원같이 공공연한 장소에서 체조를 진행하는 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타인의 시선을 너무 신경쓰고, 그들은 줏대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동묘가 다시 떠오른다. 동묘에는 부정적 의미로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동묘 사당 담벼락에서는 오줌 냄새가 난다. 누군가가 문화재에 노상방뇨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낮부터 술을 마신 아저씨들은 욕설을 해대며 싸운다. 주먹다짐이 있을 때도 있다. 어찌 보면 혼란 그 자체이다.


동묘의 시민의식이 남다른 모습은 횡단보도에서도 드러난다. 동묘 시장 초입에는 청계천이 있다.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횡단 보도가 있는데, 횡단보도의 알고리즘이 미묘하다. 하나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면 다음 횡단보도가 초록불이 될 때까지 청계천 위 구역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사실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입장에서는 그 시간이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동선을 위해 두 번의 신호등을 건넌다는 것이 답답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이 횡단보도에서는 무단횡단이 잦다. 특히 동묘시장에 가까운 쪽에서 무단횡단이 잦은데, 사람들은 차가 오지 않는다 싶으면 슬쩍 횡단보도를 건넌다. 한 명이 건너면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다가 같이 무단횡단을 한다. 여럿이 모이면 규칙을 어기기도 쉬워지는 법이다.


홍콩에서도 그랬었다. 홍콩에서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상당히 쉽게 한다는 점이었다. 홍콩의 재촉하는 듯한 신호등 소리를 뚫고 사람들은 길을 아무 때나 건넜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홍콩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였다. 우리는 처음에는 당혹스러워 하다가, 나중에는 즐겼다. 우리도 무단횡단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무단횡단 하면서 말했다. "여기 중국이잖아. 중국 법을 따라야지."


이국에서는 색다른 점이 많았다. 한 밤에 술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야외 테이블에서 술과 안주를 즐겼다. 여행이 거의 끝나가는 참이라 감상에 젖어있었다. 그때 감상을 깨는 향기가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스멀스멀 담배 연기가 몰려들고 있었다. 한 아저씨가 연초를 태우고 계셨다. 우리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홍콩에서는 식당에서 흡연하는 것이 불법이 아닐 것이라 추측했을 따름이었다.


그 담배 연기는 바다를 건너 다시 한국의 동묘로 이어졌다. 나는 등교할 때마다 동묘 시장을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나는 자주 담배를 피우는 노인분들을 마주친다. 소위 '길빵'을 하며 걸어가는 분들이 많다. 나에게는 고역이다. 특히 길빵하는 사람과 동선이 겹쳐 자연스레 뒤에서 따라가게 되면 더더욱 고역이다. 계속하여 담배냄새를 맡으며 인상을 찌푸리다가, 자동차가 추월하듯이 차선 변경하여 앞질러가야만 한다. 동묘는 다양한 만큼, 시민의식도 다양해진 것이다.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동묘가 홍콩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야 우리 홍콩 왜 갔냐." 혹은 "여기 진짜 홍콩 같지 않냐?" 같은 이야기를 자주하여 누군가를 질리게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의 솔직한 감상으로는, 홍콩과 동묘는 언어와 향기만 다르지, 정말로 비슷한 곳이다. 나의 현실에서 둘의 차이는 없다. 나는 매일 홍콩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동묘를 가로지른다.


이 기분은 가끔 나에게 회의감을 느끼게 했다. 이럴거면 여행이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홍콩과 동묘는 비슷한 곳인데, 왜 굳이 비싼 돈과 많은 체력을 들여 홍콩에 간 것일까? 그냥 편하게 동묘 시장이나 놀러가면 되는 일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 감각이 둘의 비슷한 점만 묶어 기억했기 때문에, 둘이 비슷하다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나보다 감각이 섬세한 사람은 둘의 차이를 느끼고 그 차이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감각은 섬세하지 못하여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두 지역을 '비슷하다'는 어휘로 묶어버렸다.


그렇다면 나에게 체험을 위한 여행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네가 여행을 많이 다녀보면 좋겠어.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거든. 네가 그걸 보고 배우면 좋겠어."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한다고 조언해준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가서도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세상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기를 원했다. 그 취지에서는 나의 여행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을 통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덕에 오히려 세상이 더 쉬워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홍콩의 사람들은 좁은 곳에서 살았다. 편의점도, 카페도 비좁아 대개 포장 전용이었다. 아파트 안에서 닭장처럼 산다는 한국과 같은 문제를 공유하는 것이다. 홍콩 청년들의 표정 또한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한국의 청년들과, 그리고 나와 비슷한 문제를 껴안고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의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문제를 지고 산다. 나만 특별한 것도 아니고, 나만 불행한 것도 아니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 책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원체 오만하니까 말이다. 직접 보지 않으면 부정할 것이다.


따라서 나의 여행의 의미는 공감의 체험에서 나온다. 너도 나와 비슷하고, 홍콩도 동묘와 비슷하다. 우리는 지구라는 비행기 위헤 같이 올라탄 친구이다. 같은 목적지를 두고 아등바등 살아갈 뿐이다. 이를 깨달으려면 여행을 해보아야 한다. 당신도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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