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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Oct 16. 2024

고난과 극복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를 읽고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곤봉을 든 경관이 우리의 앞에 있었다. 우리는 그 앞에 줄 서서 그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곤봉이 향하는 방향이 우리의 운명을 지시했다.

"191번! 왼쪽!"

 "안 돼요. 전 왼쪽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전 아직 건강하고 일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제발 저를 왼쪽으로 보내지 말아주세요."

 191번은 무릎을 끓고 애원했다. 경관은 고갯짓으로 수하 둘을 불렀다. 곧 191번은 왼쪽을 향해 질질 끌려갔다.

"그 다음! 192번!"

 경관은 192번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앙상한 몰골에, 다 빠져버린 눈썹, 검버섯이 핀 얼굴을 보면 192번도 왼쪽으로 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는 나의 착각이었다.

 "192번! 오른쪽!"

 "감사합니다. 경관님."

 192번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갔다. 오른쪽에는 군용 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다. 트럭의 뒤에 오른쪽으로 판별받은 죄수들이 앉아있었다.

 오른쪽은 삶의 영역이었다. 오른쪽으로 간 죄수들은 군수 물자를 만들고, 쥐똥만한 배급으로 식사를 때우게 되겠지만, 그들은 살 수 있었다. 그만하면 족했다.

 그렇지만 왼쪽은 죽음의 영역이었다. 왼쪽으로 간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몇 시간, 혹은 고작 몇 십분에 불과한 여생이었다. 그들은 수용소에 끌려가고, 그리고 가스를 마시고 죽게 될 것이었다. 노동력이 없어보인다는 죄목이었다.

 줄은 점차 짧아지고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점점 몸이 떨려왔다. 나는 그의 앞에서 최대한 건강하게 보이려고 애썼다. 앙상한 손목을 죄수복 소매로 가리고, 밝은 표정을 보이려고 했다. 그의 눈에 어찌보일지는 장담하지 못했지만, 나는 살기 위해 애를 썼다.

 "흐음..... 195번...."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195번이라는 번호 뒤에는 어떤 말이 붙을지, 삶이 될 지 죽음이 될 지 불안하였다. 주변이 빙빙 도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195번! 오른쪽!"

 "감사합니다. 나리."

 나는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는 기다리고 있는 군용 트럭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트럭에 올라타 남은 자리에 앉았다. 내 옆에는 192번, 눈썹이 없는 남자가 있었다.

 "축하해 친구."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살 수 있으니 다행이네."

 나는 192번과 악수를 나누었다. 긴장이 풀린 덕인지 잠이 쏟아졌다. 나는 트럭 위에서 졸기 시작하였다. 내 주위의 죄수들도 다 같이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또 다른 수용소로 향했다.

 

 새로운 수용소에서, 우리는 좁디 좁은 방에 다같이 살았다. 발 디딜 틈 없는 방안에서 새우잠을 잤고, 화장실은 공용화장실 1개 밖에 없는 처지라, 방에서 참지 못하고 볼 일을 보는 죄수들도 있었다. 비좁고 지린내 나는 방 안에서 우리는 창밖만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지내는 방은 반지하여서, 창 밖에는 사람들의 발이 오갔다. 눈길을 밟는 군화소리, 차갑게 쌓이는 눈, 호통치는 소리, 채찍질하는 소리 등 모든 것이 창 밖에서 들어왔다. 우리는 창 밖을 보는 것을 멈추지 못하였다.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곳이었으니까,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는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 우리가 잡혀 들어왔단 현실만이 가득할 뿐이니까 말이다.

 192번은 새로운 수용소에 도착한 지 일주일만에 감시자에게 찍히고 말았다. 처음에는 농담도 던지고 콧노래도 부르며 짐짓 쾌활한 척을 하던 그는 그 모든 것이 한 낮의 꿈이었다는 듯이 순식간에 침울해지고는 했다.

 삽으로 땅을 파면서 그는 콧노래를 불렀고, 곧 감시자의 눈에 띄어 채찍으로 몇 대를 맞았다. 그는 그런 결과를 예상도 못했다는 듯이, 채찍에 맞으면 눈물이 고인 눈에 급격히 느려진 손으로 작업하였다. 그런 그를 옆에서 보는 나는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저 남들만큼만 하면, 그래도 맞지는 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괜히 나대다가는 큰일나기 십상이었다.

 내 삶의 지혜, 중간만 하자는 격언은 나의 행동을 지배했다. 나는 밥을 먹는 속도도 남들에 맞추어 먹었고, 짧은 샤워시간도 남들과 비슷하게 쓰려고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씼었다. 이런 나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감시자들은 나를 거의 인식하지도 못하고, 나를 보더라도 금방 눈길을 돌리고는 하였다.

 그렇지만 192번의 사정은 달랐다. 그는 아무리 절망하고, 현실이 좋지 않더라도 영혼만은 굶주리지 않게 하겠다는 듯, 예술을 포기하지 못했다. 192번은 방 안에서 콧노래를 부르다가 덩치 큰 205번한테 맞는 날이 잦았다. 속세에서 읽었던 시를 읊다가 사람들에게 외면받기도 하였다.

 우리 죄수들은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우리는 하루에 14시간 정도 땅을 파고, 공장에서 나사를 조이고, 감시자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하루하루 조마조마하게 살았다. 감시자들의 입맛에 맞는 유머를 해주기 위해 죄수들끼리 생존유머를 공유하였고, 딱딱한 빵 한 조각과 차갑게 식어버린 수프라도 더 배급받기 위하여 수용소 직원들과 말을 텄다.

 그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함이었다. 우리는 '왼쪽'의 악몽에서는 벗어났지만, 오른쪽이라고 해서 왼쪽보다 나은 점이라고는 작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말고는 없었다. '오히려 깔끔하게 종언을 고할 수 있는 왼쪽이 낫지 않을까?'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였다.

 경관 앞에 서서 죽음과 삶의 판정을 그에게 맡겼던 그 때가 떠올랐다. 찬바람이 휑하니 불고, 코가 아릴 정도로 시려서 귀와 코의 감각이 마비되었던 그 날, 그가 나에게 오른쪽을 고한 것만으로도 나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는 그저 일순일 뿐이었다.

 나는 꺾이지는 않았지만. 시들어갔다. 생기를 잃어갔고, 초록빛은 바랬다. 우리는 계속해서 생존하기를 바랐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은 영양과 높은 강도의 노동으로 가끔 죄수 몇몇이 쓰러졌고, 곧 그들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소문이 돌았다. 그들은 이 수용소의 "왼쪽"으로 가버렸다는 말이 돌았다. 그들은 건강을 잃었고, 결과적으로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잃었으며, 폐기당했다는 말이 들었다. 나는 기운이 쭉 빠진채로 반복적으로 곡괭 질을 하다가도 이런 소문만 들으면 다시 힘을 주어 열심히 일하는 척했다. 나는 살아남고 싶었다. 나는 다시 가족을 보고 싶었다.

 192번은 감시자들의 눈 밖에 났지만, 폐기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앙상한 얼굴과는 다르게 체력을 타고 났고, 중노동에도 쉽게 상해버리지 않았다. 그는 채찍을 맞지 않기 위해 콧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지만, 그의 예술혼은 다른 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어두컴컴한 밤, 남들이 잠을 청할 때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고, 경건하게 신에게 말을 거는 그의 모습을 보면 나는 울화통이 터졌다. 결국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그에게 한 마디를 하고야 말았다.

 "이봐, 친구. 신은 없어. 있더라도 우릴 지옥에 쳐박은 작자야. 이제 기도는 그만하고 잠이나 푹 자는 게 어때?"

 그는 내 말을 듣고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다른 모든 죄수들의 눈은 이미 빛을 잃고 변색된 지 오래되었는데, 그만은 아직도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할 수 있었다. 그저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순간 질투를 느껴 그에게 화를 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야? 나한테도 알려주지 그래?"

 그는 나에게 화를 내지도, 표정이 일그러지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다시 기도할 뿐이었다.

 

 하루가 가고, 한 주가 가고, 한 달이 갔다. 달은 바뀌었지만 거센 찬바람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곡괭이질 담당에서 눈 치우기 담당으로 바뀌어 매일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게 되었다. 곡괭이질보다야 편했지만 하루 10시간이 넘도록 땅만을 쳐다보는 작업은 나의 정신을 메마르게 하였다.

 그즈음 나는 그저 생존을 위해서만 모든 에너지를 썼다. 남들과 대화하지도 않았고, 쓸데없이 걸어다니는 일도 없었다. 몸의 에너지를 아껴야 살 수 있었다. 나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내가 수용소에서 빠져나가면, 가족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다시 삶을 꾸려나가야만 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다시 삶을 찾아야만 했다.

 눈을 밀면서 나는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뜨개질을 하며 나에게 잔잔한 농담을 건내던 아내, 유치원에 다녀오면 고사리같은 손으로 인사하며 나를 행복하게 했던 아이들, 모두를 생각하며 나는 두껍게 쌓인 눈과 감시자들의 눈길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에너지를 별 목적없이 쓰는 유일한 때는 192번에게 한 소리를 할 때였다. 그는 기도로 삶을 시작하였고, 식사하기 전에는 기도를 잃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면 분통이 터졌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감사할 수가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나는 그에게 계속해서 비아냥대었다. 신은 없다고, 넌 허상에게 기도하는 것이라고, 그러다가 곧 죽게 생겼다고 말이다.

 "그렇게 신이 없다고 믿어?"

 192번이 나에게 한 번 말을 걸었다. 나는 흠칫 놀라 순간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거세게 반박하였다.

 "당연하지, 난 이제 네가 기도하는 것만 보면 화가 나."

 그쯤의 나는 이제 그를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 어디서든 이상한 짓만 반복하는 괴짜. 막 대해도 아무런 보복이 없는 멍청이. 그 정도가 그에 대한 나의 인식이었다.

 "그럼 한 번 기도회에 와 보는 건 어때? 신의 부재를 증명해 봐."

 나는 갑작스레 괴상한 곳에 초대받았다. 나는 수용소 안에 기도회라는 모임이 있는 지도 몰랐고, 그런 모임이 있다는 것을 들킨다면 감시자들에게 어떤 일을 당하게 될 지 두려웠다. 그렇지만 호승심과, 설마 무슨일이 생기겠냐는 방심이 나를 이끌었다.

 기도회는 이틀 뒤 새벽에 이뤄졌다. 수용소 2층 회의실에서 이루어지는 기도회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감시자 2명과 간부 1명, 그리고 죄수 5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192번은 기도회 안에서 목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내가 등장하자 기도회 안의 사람들은 박수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죄수, 간부, 감시자 모두가 나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을 보며 나는 어리둥절했다.

 기도회는 신실한 곳이었다.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하고, 각자의 삶에 대해 감사할 일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나는 감사할 일이 없어 할 말이 없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그렇다면 바라는 일이라도 없는지 물어보았다.

 "저는 가족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자리에 있는 누구든 가족을 다시 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가족을 다시 볼 수 있도록 기도했다. 나는 기도하는 척을 하며 눈을 뜨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입으로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희구하는 표정을 짓는 그들의 모습이 색다르게 보였다. 그들은 마치, 내가 알던 이들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당황스러워 어찌할 줄을 몰랐다. 무언가가 내 마음 속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것만 같았다. 전쟁이 시작되고 수용소에 끌려가고 나서부터 잊었던 감각, 나중에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를 위해 저장해두고 있다고 생각해두었던 감각, 온기였다. 나는 온기를 느꼈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었다. 나는 당황했다. 나는 이 온기가 두려웠다. 지금은 생존할 때지 온기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차가운 기계같은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지, 괜한 감상을 가지고 사람들과 하하호호 떠들 때가 아니었다. 나는 살아남아야만 했다.

 나는 기도회 이후로 192번을 피했다. 그가 말을 걸려고 하면, 듣지 못한 척하였고, 그의 옆에서 빵을 뜯어먹어야 할 때엔 빵에만 집중해 그를 무안하게 했다. 나는 그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다시 예전의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효율적으로 살고 싶었다. 괜한 감사에 빠져 생존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싶지 않았다.

 

 자유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가을이 어느 순간 찾아와 옷장에서 새로운 옷들을 꺼내야 할 날이 오는 것처럼, 연합군은 밀물처럼 들어와 우리를 해방시키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수용소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나갔다.

 "저기, 친구야"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몰랐다, 감시자들이 우리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금지하였고, 우리도 굳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를 만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누군지는 알았다. 192번, 내 애증의 번호였다. 나는 몇 초간 고민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왜?"

 "저기, 우리 이제 이름 정도는 서로 알면 좋겠어. 우리의 미래를 서로 축복해주는 거야. 앞으로도 너를 위해 기도해 줄게."

 "난...... 그래, 내 이름은 프랭크야."

 "좋은 이름이네, 내 이름은 폴이야."

 "그럼, 잘 가. 그동안 너를 무시한 거 미안해."

 나는 도망치듯이 그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나의 집을 향해 갔다. 내 집이 멀쩡할지, 가족들이 살아는 있는지 궁금하였다. 새로운 왼쪽과 오른쪽이 나에게 주어진 느낌이었다. 나는 열차에 올라 창 밖을 보면서도, 마침내 내가 살던 마을에 도착해서도 가족만을 생각했다. 손에서 땀이 삐질삐질 났다. 길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서, 개천을 지나면...

 내 집을 멀쩡하게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녹슨 문의 '끼익'소리가 들렸다. 나는 앞의 풍경을 보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지가 멀쩡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비록 좀 말라졌지만, 눈가 주름에서 그들에게 주어졌던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 동안 고생했던 시절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행복해 질 수 있을 줄만 알았다. 나는 다시 가정을 찾았다. 겨울에는 불을 뗐고, 여름이 되면 창문을 열고 생활할 수 있었다. 아내와 농담을 나누고, 아이들과 같이 지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뭔가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나만 이를 느낀 유일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내는 내가 변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더는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와주지 않았다. 나는 서글펐다. 나는 그들을 다시 보기 위해 모진 고통을 참아왔는데, 이제 그들은 내가 달라졌다고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당신은, 수용소에서 인간성을 잃고 온 것 같아. 나는 그게 너무 슬퍼,"

 아내는 나를 껴안고 울었다. 나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내가 무엇을 잃었다고? 이렇게 살아돌아온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나의 마음에서 부재를 찾을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이미 완결되어있었다. 원래부터 필요없던 몇 부위를 도려낸 상처는 이미 아물어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을 냈다.

 

 몇 년이 흐르고, 나는 어느 날 신문에서 폴의 이야기를 읽었다. 폴은 수용소에서 기도회를 유지하며 신실함을 유지한 사람으로, 전쟁이 끝난 후에 고아들을 보살피며 지내고 있다고 나와있었다. 흑백 사진 안에 보이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봐도, 그는 똑같았다. 기도회를 이끄는 192번, 괴짜 192번, 고아들을 거두어준 폴. 나는 그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으며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오래 전 아문 상처가 다시 붉게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기사는 이렇게 끝났다.

 '그럼 마지막으로, 수용소 생활 동안 같이 지냈던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있으실까요?'

 '아, 저는 그들이 행복하길 바라요. 그들이 모진 추위를 겪었지만 마음 속에는 온기를 계속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해요. 거센 바람과 비도 인간성을 마모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요.'

 신문 위에 회색 꽃이 피어올랐다.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나는 여전히 수용소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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