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션

자리와 관계, 인정받고 싶은 마음

by 추지원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모두 실제가 아닌, 설정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목차

프롤로그 | 포지션

자기 자리와 관계,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포지션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제1장 | 자리가 없는 아이

어린 시절 자리와 인정받음에 대한 갈망과 불안


제2장 | 자리를 원하는 어른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되는 자리 찾기, 관계 속 갈등과 관찰


제3장 | 자리를 떠난 사람

관계 속에서 자리를 잃거나 떠나야 했던 경험


제4장 | 흔들려도 서 있는 나의 자리

흔들려도 자신을 놓치지 않고 서 있는 자리, 자기 내면과의 약속



프롤로그 | 포지션

포지션. 이 단어는 축구에서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는 기술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감정일 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는 자리가 주어진다. 자연스럽게, 사랑받고, 기대받고, 환영받으며.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자리를 쟁취해야 한다.
때로는 설득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떠남으로.


1장 | 자리가 없는 아이


윤채는 내가 한 말을 자꾸 되묻는다.


“선생님, 근데 그때 제가 이랬다 그랬잖아요. 맞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또 묻는다.
“그러니까 제가 그때 그렇게 한 거는 잘한 거죠? 그렇죠?”


그 아이는 확인이 필요하다. 단 한 번이 아니라 반복해서.
그 확인 속에는 단순한 칭찬 이상의 것이 들어 있다.


여름이 오면 교실에 날파리가 날아다닌다.

아주 성가시다. 교실이 1층이라 날파리는 흔하다.
다른 아이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윤채는 다르다.


“선생님, 여기 또 있어요! 왁—!!”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소리 지르고, 옆 친구에게 소매를 휘두른다.

눈에 띄고, 귀에 거슬리고, 분위기를 뒤흔든다.


이제 겨우 4학년이 된 윤채는 공부도 잘하고 착하다.
숙제를 안 해온 적도 없다.

하지만 한 번 뭔가에 예민해지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날파리를 어떻게든 없애보려고 교실을 오가며 온갖 방법을 썼다.
하지만 윤채는 날파리에 완전히 집착한 상태였다.
목소리는 점점 날카로워졌고, 말은 끊이지 않았다.


“선생님, 우리 미술학원도 1층인데 날파리 없어요.”
“여기 책상 이 부분이 찐득거려요. 그래서 날파리 있는지도 몰라요.”


아이의 말은 곧 ‘내가 괴롭다’는 항의이자, ‘나 좀 도와달라’는 외침처럼 들렸다.
그러나 나는 점점 인내심이 낭떠러지를 향해 흘러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윤채를 다독이고, 아이들의 집중력을 붙잡으며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수십 개의 과제가 동시에 어깨 위에 얹혀 있는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말하고 만다.


“정말 미안해, 윤채야. 선생님이 날파리 없애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
근데 한두 마리가 계속 없어지는 것 같지가 않아.
여기는 학원이잖아. 공부하러 오는 곳이니까,
미안하지만, 네가 날파리 없는 곳을 스스로 찾아야 할 것 같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채는 금세 조용해졌다.
혹시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교실 분위기를 회복시켜야 했고, 짧은 시간 안에 효과가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수업은 곧 다시 집중을 되찾았다.
윤채는 “이젠 괜찮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웃었고, 나는 쇼맨십을 발휘해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날 퇴근길, 마음이 묵직했다.
나는 안다. 윤채가 왜, 가끔 사소한 일에 몰두해서, 도무지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윤채의 어머니는 베트남인과 결혼하셨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함께 살았지만, 윤채가 다섯 살이던 해, 가족은 베트남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부모님은 깊은 갈등 속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셨지만, 여러 상황과 문제들이 겹쳐
윤채는 저녁 아홉 시까지 어린이집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 어린이집은 낯선 곳이었다.

윤채는 베트남어를 알지 못했고, 엄마와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 긴 시간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그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참지 못하셨다.
다행히도 윤채는 한국에 돌아와 외할머니와 엄마의 사랑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하지만 그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많은 필요(needs)를 안고 있었을까.
낯선 땅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들으며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윤채는 그때부터 자신의 ‘자리(Position)’가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선생님도 엄마도,
그 낯선 땅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한다.
윤채는 아직도 자기 자리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