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중 제 2장
1. ‘모른다’는 특권
“전 그냥… 몰랐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동그랗고 물기 어린 눈동자. 마치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자기는 순수해서 뭐든 잘 몰랐다는 듯했다.
처음 전세 계약하던 날부터, 이미 뭔가 이상했다.
말끝마다 깔리는 묘한 권위감, 뭔가를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알게 됐다.
아는 건 없었다.
‘무식한 공주’.
그녀에겐 그 별명이 딱 어울렸다.
부동산 아주머니도 말씀하셨다.
나는 두 군데 부동산에 집을 의뢰해 놓은 상태였고, 그녀는 먼저 ‘한길 부동산’에 다녀갔단다.
우리 집에 대해 이것저것 듣고, 거의 계약할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 없느냐고 물었단다.
부동산 사장님은 당황하며 근처 식당을 안내했다.
그녀는 점심을 먹고 와서 계약하겠다고 했지만, 돌아와서는 아무 말 없이 다른 부동산에서 계약을 해버렸다.
나중에야 그 내막을 들었다.
그날 그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음식할 때 냄새 잘 빠져요?”
라고 묻고, 혼자 소파에 앉았다.
갑자기 딸 이야기를 꺼내며 좋은 학원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대부분의 무례함을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사 오기도 전에, 딸 주소를 우리 집으로 옮겨놓았다.
좋은 학교 배정을 위한 목적이었다.
나는 바로 말했다.
“이거 안 되는 거 모르셨어요?
어떻게 저한테 말도 없이 이렇게 하실 수가 있죠?”
그녀는 갑자기 눈빛과 목소리를 바꾸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그 일을 잊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엔 남았다.
‘모른다는 게 저렇게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2. 전세계약 2년과 갈등
나는 내 집을 전세로 내놓고, 다른 곳에 전세를 얻었다.
6개월쯤 지나자 전세값이 떨어졌다.
그 무렵, 세입자 여자가 남편을 시켜 나에게 전화를 걸게 했다.
“전세 시세가 떨어졌으니, 계약 당시보다 내려간 차액만큼 돌려달라.”
나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계약은 계약입니다.”
그녀는 계속 부동산에 험담을 퍼뜨렸다.
나는 직접 전화를 걸어 설명했다.
“제가 전세금을 돌려드리면, 제 집주인도 저에게 돌려줘야 하고, 그 위의 집주인도 또 돌려줘야 하죠?
시장경제에 왜 계약과 법이 필요한지 모르십니까?”
그제야 조용해졌다.
하지만 계약 만료 두 달 전,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딸 방에 에어컨 하나 달고 싶은데, 벽에 구멍 내도 될까요?”
나는 알아차렸다. 다시 전세값이 상승하자 부담이 생긴 것.
“나가시는 줄 알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녀는 솔직히 쉽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냥 “그러세요.” 하고 말했다.
그렇게 또 다른 2년이 시작되었다.
3. 몰라요, 나갈래요
6개월의 이틀을 남기고, 그녀가 이사를 나가겠다고 했다.
묵시적 갱신 후엔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다며 법대로 하겠다는 통보였다.
나는 담담하게 물었다.
“따님은 괜찮으신가요?”
그녀는 말했다.
“어머니가 같이 사시게 됐는데, 집 구조가 마음에 안 드신대요.”
그때 집을 보러 왔던 날, 혼자 소파에 앉아 수학학원 얘기를 꺼냈던 모습이 떠올랐다.
말이 통하지 않았던 그 순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부동산에 전세 의뢰를 넣었다.
며칠 뒤, 부동산 사장님이 말했다.
그녀가 “왜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느냐”, “우린 3개월이면 나갈 거다”라며 위협했다고 한다.
사장님 말로는, 그 집이 거실까지 방처럼 사용되어 어지럽게 정리되어 있어 새로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즉, 집 상태 때문에 계약이 늦어지고, 그 세입자의 태도 때문에 부동산과 나는 곤란을 겪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2년 꽉 채우기 전에 나가셨으면, 저도 집을 미리 옮길 수 있었을 텐데요.”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되물었다.
“왜 저한테 이런 말을 하세요? 저는 몰라요.”
나는 말했다.
“왜 몰라요. 어른이시잖아요. 전세계약을 하셨잖아요. 왜 따님 주소 옮길 때도, 지금 이 상황도 모르세요? 모르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잠시 말이 없던 그녀는 아마 놀랐을 것이다.
나는 한 발 물러서며 현실을 인정했다.
“미안해요. 저희도 전세 구하느라 애쓰고 있어요. 부동산 사장님이 전화를 하실 정도면, 상황이 심각하단 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 어른아이의 슬픔
우연인지, 그녀도 나도 교회에 다녔다.
남편은 처음 본 날부터 단호하게 말했다.
“딱 보면 알아. 저 사람, 수준이 보여.”
나는 그렇게까지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신은, 내가 그런 마음을 품는 걸 기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도 하나님의 소중한 딸이었으니까.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자주 올라왔다.
사진 속에는 사랑이 넘치고 있었다.
색감 고운 주스, 함께 둘러앉은 찻잔, 셀카.
그 모든 장면이 말하고 있었다.
“나, 사랑받고 싶어요.”
나는 문득, 그녀가 내 세입자라는 사실과 전세 현실을 잊고 사진첩을 넘기듯 바라보았다.
사진 속 그녀는 공주처럼 귀하고 소중한 아이 같았다.
세상의 복잡함은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웃고 싶은 사람.
그 안에서 나는 어른아이의 슬픔을 보았다.
자기 자리를 갈망하는 마음.
내가 그리고 싶은 자리와 현실 사이의 괴리.
그 간극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
바보같이, 갑자기 나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