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중 제 3장
3월 12일
오늘은 정연이의 생일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웃고, 울고, 견뎠던 사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를 3년째 만나지 못하고 있다.
정연이는 내 어린 시절 친구였다.
민방위 훈련이 있던 날이면 걸상을 모두 책상 위에 올리고, 그 밑으로 들어가 웅크린 채 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날, 내 짝이었던 정연이와 나는 우연히 서로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나는 정연이를 수다스럽고 목소리 큰 아이로만 여겼고, 정연이는 나를 새침떼기, 깍쟁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그 좁고 답답한 책상 아래에서 정연이의 수다에 내가 속 없이 깔깔 웃는 걸 보며, 정연이는 나에게 호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 이후,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에도 정연이는 내 딸아이의 이모처럼 곁에 있어주었다.
정연이는 맞선을 백 번도 넘게 봤지만, 결혼하지 못했다.
유치원 원장이 되고, 참하고 맘씨 좋다는 평을 받는 정연이는 우리 엄마도 예뻐할 정도로 ‘인정받는 아이’였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들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을까.
나는 늘 그게 궁금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묻지 않게 되었다.
3년 전 여름, 정연이는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
유치원을 옮기고,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주말이면 서울 부모님 댁에 들렀고, 우리는 여전히 통화하고, 가끔 만났다.
그날도 그런 토요일이었다.
나는 딸아이를 미술학원에 데려다주느라 바빴고, 정연이는 서울에 온 김에 순대볶음이 너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머리도 안 감아서… 집에 잠깐 들렀다 나오면 1시쯤 될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정연이는 웃으며 말했다.
“머리 감으나 안 감으나,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
익숙하고 편안한 농담이었다.
정연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이사를 갈 때면 자기 일을 제쳐두고 와서 짐을 옮겨주고, 누가 나를 미워하면 본인이 더 화내주던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종종 말을 너무 쉽게 던져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아마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살짝 짜증이 났다.
나도 그날 기분이 별로였던 모양이다.
부랴부랴 머리를 감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빨리 나간다고 나갔는데도, 결국 10분이 늦었다.
나는 뛰어가며 “정연아!” 하고 불렀다.
그런데 정연이가 너무 심하게 화를 내는거다.
그 화는 익숙한 방식이 아니었다.
마치 유치원 원장이 신참 선생님을 혼내듯, 위에서 아래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교육적인 분노’처럼 내려꽂였다.
길에 서서 너무 창피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빛도 어색하게 느껴졌고, 내 안에 어딘가가 꾸깃꾸깃 접혀들었다.
나는 정연이의 팔을 잡았다.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근처에 아는 순대볶음집이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고, 물을 따랐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불판 위에서 순대와 야채를 조용히 섞던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초등학생이 아니잖아. 너도 나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지성인답게 행동하자. 길거리에서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정연이는 머쓱하게 웃으며 순대볶음을 먹었다.
나는 그 말을 하고 나니 감정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정연이 그릇에 순대를 자꾸 덜어주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다음 주, 또 그 다음 주 토요일.
내가 “언제 볼까?” 하고 문자를 보내면, 정연이는 “회의가 있다”, “바쁘다” 이런 식의 사무적인 답만 보내왔다.
그날 일이 아직 안 풀린 것 같았다.
그래서 기다렸다. 조심스럽게.
그러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왜 이렇게 사무적으로 문자를 보내. 이러다 우리 사이 갈라지겠다, 얘..."
그런데 정연이가 대답했다.
"사이는 이미 갈라진 거 아니야?"
나는 충격을 받았다.
겨우 그 일로, 정연이가 이렇게까지 말할 줄 몰랐다.
어릴 적 친구인데.
그 말이 너무 아프고, 동시에 화가 났다.
그럼 마음이 이미 떠나 있었던 거야?
내가 만나자고 보낸 문자들을 보면서, 차갑게 관찰하듯 그렇게 냉정하게 지켜봤던 거야?
며칠 동안 마음이 뒤집혔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괴로운 마음을 정리하고 정연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의 의견을 존중해.
하지만 마음이 그랬다면, 나에게 말을 했었어야지.
앞으로는 서로 연락하지 말자.
나는 그렇게 정연이를 차단했다.
3월 12일.
오늘 아침 산책을 하다가 나는 어김없이 정연이를 떠올렸다.
그리움과 함께, 자책도 밀려왔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정연이도 나도, 잃어버린 자신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는 걸.
정연이는 맞선을 보러 나갈 때마다 약속 장소에서 상대방을 기다렸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다시 만나자”고 말해주길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왜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마음이 나에게 보일까.
그날, 길 위에서 나를 기다리며 정연이는 자기 자리를 간절히 되찾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나를 만나 안심하며, 자신의 품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 원장 선생님처럼 훈계하듯 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나는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 일 년 내내 용돈을 모아 생신 선물을 드려도 “그거 말고…”로 돌아오는 평가에 익숙해진 아이였다.
나보다 공부 못하고 사고만 쳐도 “그래도 아들이지” 하며 자랑하던 내 남동생을 보며 나는 무기력해져 있었다.
그런 내가 정연이에게 “언제 볼까” 문자를 보낼 때마다, 사실은 내 안의 어린아이가 떨고 있었다.
거부당하고, 없어질지도 모르는 내 자리가 걱정돼서, 애가 탔던 거다.
차라리 정연이를 잊어버리는 편이 더 나을 만큼 불안했던 거다.